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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vol3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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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구의 친구 Jun 15. 2022

나에 대한 애증, 기억을 공유하는 공간

Q. 준석 님 안녕하세요! 쉽지 않으셨을 텐데, 인터뷰를 결심하신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필름 사진 찍는 이준석이라고 합니다. 인터뷰를 결심하게 된 이유라.. 음 저는 자기 PR이 잘 안 되는 사람이에요. 뭐랄까, 항상 저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어요. 특히 포토그래퍼로서의 이준석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서 그런 것 같아요. 아직까지 내 작업물을 보여줄 자신이 없기도 했고, 사람들이 좋게 평가해주더라도 스스로가 부끄러운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마음의 짐을 덜고 좀 깨 보려고요. 나를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든 거죠. 요즘은 잃을 게 없다면 웬만하면 뭐든지 해보자는 마음이에요.


Q.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상봉동에 2020년에 왔어요. 그 전에는 이문동에서 엄청 오래 살았고요. 군대 복무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이문동에서 20살부터 살았어요. 7년 정도 살았네요. 그쪽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사실 어쩔 수 없이 이쪽으로 오게 된 거죠.


 현실적인 이유에서였군요.

 네 맞아요(ㅎㅎ). 사실 다들 그렇지 않을까요. 어쩔 수 없이 온 거지만 이 집에서 재미있는 일이 많이 있었어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친구들이 엄청 놀러 왔어요. 술도 많이 먹고(ㅎㅎ). 제가 사진 작업을 '일'로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곳도 이 집이에요. 침대가 있는 작업실이랄까요?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공간 구조를 일에 최적화된 형태로 바꿔버렸죠.


집을 알아볼 때 가장 중요시했던 점이 있나요?

 해가 잘 드는지가 가장 중요했어요. 사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햇빛이 잘 드는 곳만 찾아다녔죠(ㅎㅎ). 햇빛을 받으면서 앉아있을 때 기분이 정말 좋거든요. 그 생각만 하면서 여기로 결정하게 되었어요. 커튼도 일부러 안 달았고요. 아침에 햇빛을 받으면서 깨는 게 행복이에요.



Q. 포토그래퍼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사진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으려는 마음도 없었어요. 스무 살 때 어머니를 졸라서 700d를 샀는데 그것도 몇 번 찍다가 그냥 박아뒀죠.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흥미로 사진을 찍었어요. 그런데 2019년도, 정확히 기억해요 2019년도. 의상을 전공한 친구 둘과의 술자리였어요. 그때 우연히 민현우 작가와 조기석 작가의 사진을 보게 되었죠. 그때 생각했어요. '아, 사진이란 이런 거구나. 이게 진짜 구나..' 그때부터 진지하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사실 음악을 좀 오래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음악을 하면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더라고요. 그냥 재미있어서 했던 거죠. 그런데 사진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나서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어요.


 순간의 강렬한 감정이 지금의 준석 님을 있게 했네요. 정말 신기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ㅎㅎ). 그때 정말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느껴졌고, '절대 그만두지 않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런 포인트가 몇 없잖아요. 근데 저는 정말 딱 이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평생 해야겠다..'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이 왔다는 건 축복이네요.

축복이자 저주죠. 항상 느끼고 있어요. 사진을 시작한 것은 저한테 정말 행운이기도 하지만 최악의 저주예요(ㅎㅎ). 다른 방면에선 안 그렇지만 사진에 있어서만큼은 굉장히 엄격한 편이거든요. 저도 정말 신기해요. 다른 걸 할 때는 잘 퍼지고 게을러지는데 말이죠. 오늘 정말 마음에 들었던 사진이라고 해도, 내일이 되면 부족한 점이 눈에 너무 많이 보여요. 남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저는 그걸 못 견디는 거죠.




Q. 이 공간에서 준석 님의 성향이 드러난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가장 나다운 공간이라고 하면 이 옷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옷이 진짜 몇 벌 없어요. 저는 뭐든지 잘 버리거든요. 비워내는 것에 익숙하죠. 사진 작업에서도 간결함을 추구하고요. 포토그래퍼 방 치고는 되게 뭐가 많이 없는 편이죠. 인간관계도 사실 좀 그래요. 저는 가는 사람 안 잡고 오는 사람 안 막는 스타일이거든요(ㅎㅎ).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 자체가 좀 미니멀한 것 같아요. 지금 보니 그런 성향이 이 방에도 드러나있네요.

 

깨끗한 벽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저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어떤 사진인가요?

최근에 했던 폴라로이드 작업이에요. 제가 폴라로이드를 좋아하거든요. 폴라로이드라고 하면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감성적으로 찍을 수 있는 즉석카메라? 정도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폴라로이드의 세계는 어마어마해요. 사이즈도 굉장히 다양하고요. a4용지보다 더 큰 폴라로이드도 있어요. 저는 폴라로이드의 톤이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래서 폴라로이드를 저의 시그니쳐로 가지고 갈 생각이에요.



 준석 님이 원하는 톤을 구현할 수 있는 게 폴라로이드군요.

맞아요. 저는 이런 톤을 오랫동안 갈망해왔거든요. 이런 톤을 만들어내고 싶은데 어떻게 내는지 이때까지 몰랐던 거죠.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고요. 그래서 한 2년 정도를 방구석에서 '아 이런 톤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좋은 기회로 어떤 워크숍을 참여하게 되었고, 거기서 고민이 한방에 해결됐죠. 제가 원하던 톤은 암실 작업을 통해 나오는 거였어요. 그 후로 지금까지 세 달 정도 되었는데, 이 세 달 동안 작업한 게 제가 이때까지 작업한 것보다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폴라로이드에 대한 최근의 경험이 제 인생에서는 되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Q. 이 방에서 준석 님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일단 잠에서 깨면 풀업을 무조건 해요. 그렇게 아침에는 운동을 잠깐 하고, 물을 마시고 햇빛이 드는 책상에 앉아요.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고, 촬영이 있을 때는 촬영장을 가요. 그렇게 한참을 밖에 있다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노래를 틀어요. 그러고 또 앉아있고.. 촬영이 끝나고 집에 오면 잔잔한 노래를 꼭 틀어요. 왜냐하면 저는 촬영이 끝나도 현장에서의 텐션이 내려오지가 않거든요(ㅎㅎ). 집에 와서 까지 긴장해있는 거죠. 예민해 진달 까요? 그래서 좀 진정하기 위해서 클래식을 틀어놓고 앉아있어요. 그러고 나서 잠드는 게 저의 일과예요.



사진 작업을 중심으로 모든 하루가 흘러가시는 것 같아요.

 네, 좀 심한 것 같기도 해요. 삶이 완전히 사진에 맞춰져 버렸죠. 누군가가 보기에는 이걸 '열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느끼는 게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내 일상과 일 사이의 밸런스. 아직은 밸런스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그 균형을 찾아가야겠죠. 사진만이 제 삶은 아니니까요.



 이 방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있나요?

 저에게 이 방은 '고뇌하는 방'이었어요. 너무 힘든 시기를 함께 보냈죠. 앞서 말했던 톤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방으로 들어가는 건 마치 굴로 들어가는 느낌이었고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시간들을 보낸 곳이에요. 이 공간이라서 특별히 했던 경험이라기보다는 제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함께 버텨준 공간이에요. 그 시기에 정말 많이 울었거든요. 이 방은 좀 특별하죠.



Q. '친구의 친구' 커뮤니티, 어떨 것 같아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는 언제나 즐거워요. 서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고요. 저도 충분히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고, 저한테도 기회가 될 수 있으면 더 좋겠죠. 저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니 저를 충분히 잘 써먹으실(?) 수 있는 분들이 많으면 좋지 않을까요(ㅎㅎ). 특히 요즘 우리는 알고리즘에 묻혀서 살잖아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드는 사회죠. 이럴 때일수록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친구의 친구 커뮤니티는 서로에게 유익할 것 같아요.  


 5년 후, 10년 후 등 가까운 미래에 대한 목표가 있나요?

 제가 누군가를 챙겨줄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은 갖추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저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수준? 그리고 일이 끊이지 않고 들어 왔으면 좋겠어요(ㅎㅎ). 커리어적으로 자리가 잡히길 바라고, 내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면 해요.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요즘 진짜 많이 들거든요. 서로 믿고 도와줄 수 있는 내 사람들이 곁에 많아졌으면 해요.


 기억되었으면 하는 지금 이 시절 준석 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사진에 대해 정말 진심이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제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요. 나중에라도 돌이켜 봤을 때 초심을 다시 되새길 수 있도록요. 10년 뒤쯤 나태해져 있을 제가, 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저토록 진심이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해요. 저 정말 요즘 사진에 진심이거든요.



 Q. 이 공간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애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공간에 대한 애증이라기보다는 이 공간에 있는 '나'에 대한 애증이랄까요. 이 방에서 운 적이 많다고 했잖아요. 정말 극한의 희열도 이 방에서 맛봤고요. 패배의 순간도 맛봤고요.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진짜 많았거든요. 나의 모든 작업물로 평가받는 프리랜서분들은 이해하실 거예요.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고요. 그 냉혹한 현실, 힘든 시절을 이 방에서 보내고 극한의 즐거움을 맞이한 곳도 여기에요.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한마디로 '애증'이에요. 그 시기를 함께 해준 이 방이 저는 좋아요. 가족 같은 거죠. 피로 엮인 관계? 물론 임대차 계약서에 의해서 계약된 관계긴 하지만요(ㅎㅎ). 이 방은 가족처럼 당연하고, 내가 결국 돌아갈 곳이에요. 그런 곳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면서 행복이죠.



 '이제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라고 운을 띄우며 나눈 대화에는 이제 까지 흘린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우리 모두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수없이 넘어지고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여정을 통해서 말이다. 그의 여정에는 이 공간에서의 절절했던 기억이 함께 존재한다. 냉혹한 현실에 대한 깨달음에서부터 극한의 행복까지.

화려하지 않아도, 이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방. 그때 그 시절부터 지금의 '나'를 지켜준 곳. 가족처럼 당연한 존재. 결국 돌아갈 곳. '공간'을 콘크리트 덩어리로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함께 나눈 시간이 이곳에서의 또 다른 행복한 기억이 되기를 바라며, 포토그래퍼 이준석의 행보를 응원한다.


준석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22.06.15


vol.3 이준석 님의 인터뷰

글/ 친구의 친구

 @friend__of__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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