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친지가 문자 그대로 로또 대박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러움 반 기쁨 반의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 들려오는 소식으로 부부 사이가 매우 나빠졌다고 한다. 그친지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다. 그 뒤의 스토리는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그 소식을 들으니 한 편으로는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맘도 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아니다. 그저 인간의 본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진실’을 앞에서 과연 인간의 도리, 윤리·도덕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확인하는 쓸쓸한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니 혼인과 바람 그리고 이혼에 관한 생각이 새삼 떠오르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부 관계인데 그것이 돈 때문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종교와 철학의 전통에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다양하게 제시된다. 유대·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신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어 그 본질이 신적이기에 위대하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른바 imago dei 이론이다. 관련 구절이 구약 창세기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그런데 창세기 2장에는 전혀 다른 창조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어느 것이 맞는 이야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철저한 가부장제 종교인 유대·기독교 전통에서는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에서 나온 존재라는 2장의 이야기를 더 선호한다. 그리고 부부의 의미에 대한 신적 정의를 내린다.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0~24)
그리고 예수는 이런 부부가 신이 맺어준 관계에 놓여 있기에 절대로 갈라설 수 없다고 단언한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마태 5,31~32)
여기에서 말하는 ‘불륜’은 먼저 신명기 24장에 나오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유대교에서는 남편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여러 이유로 아내를 내보내도 된다고 규정되었다. 그런데 가부장제 종교답게 구체적인 것은 남편의 판단에 맡긴다. 다음으로는 문자 그대로의 ‘간음’이다. 셋째로는 레위기 18장 6절 이하에 나오는 ‘불법적 관계’이다. 여기에는 근친상간, 동성애, 수간이 포함된다.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동방정교에서는 전통적으로 둘째 해석을 받아들여 법률적으로 이혼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톨릭교회마저 이혼 불가에 관한 전통을 재해석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가톨릭 신자로 성사혼을 했음에도 불륜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한 신자들이 차고도 넘치는 현실 때문이다. 그들을 죄인으로 몰고 가면서 영성체를 금지하는 것을 다름 아닌 프란치스코 교황이 반대했다.(참고: https://www.joongang.co.kr/article/15887566#home)
사실 십계명에서도 간음은 살인죄 다음에 나오는 중죄다. 그리고 남의 아내를 탐내는 것도 중죄에 속한다. 그리고 예수도 아내를 버리거나 다른 자의 아내와 간통하는 것은 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야훼 신과 예수가 엄명을 내려도 기독교 신자도 얼마든지 간통하고 이혼한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마저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는 현실을 개탄할 것은 없는 일이다. 어차피 시대정신은 모든 것을 지배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런데 영국의 헨리 8세가 사실상 간음과 이혼 문제로 교황청과 대립하다 못해 아예 성공회를 세우고 자신이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 되어 버린다.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이 이혼, 정확히는 첫 번째 아내인 캐서린과의 혼인 무효를 인정하지 않으니 자기가 교황이 되어 토마스 크롬웰에게 혼인 무효를 선언하게 했다. 그러나 첫눈에 빠진 앤 불린과의 두 번째 결혼도 오래가지 못했다. 헨리 8세의 바람기를 앤 불린이 못 견딘 것이다. 게다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 그래서 앤 불린을 근친상간의 죄목으로 사형에 처하고 제인 시모어와 결혼한다. 그러나 출산 후유증으로 제인이 죽자 클레페의 앤과 정략 결혼했으나 너무 못생긴 것을 알고 나서는 박대하고 혼인 무효로 처리해 버렸다. 그러고는 네 번째 아내로 캐서린 하워드를 맞아들였지만, 이 여자가 상당히 남성 편력이 심한 것을 알고는 혼인 무효 선언을 받아냈다. 이후 남편과 사별한 돈이 엄청나게 많은 캐서린 파와 마지막으로 재혼하였다.
헨리 8세의 여성 편력은 워낙 유명한 일이기에 새삼스럽지는 않다. 사랑에 빠져 성공회라는 새 종교를 만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돈과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이 종교적 계율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헨리 8세가 이미 16세기에 잘 보여주었다. 그가 성공회를 세운 것이 유럽 대륙에서 종교개혁이 들불처럼 퍼지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사랑을 위해 종교를 바꿀 정도의 사랑꾼이었던 헨리 8세가 보여준 행적을 보면 남자는 돈과 권력이 있으면 맘대로 사랑을 하는 존재라는 흔한 이야기가 꼭 편견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 보인다. 그리고 헨리 8세 정도가 아니라 주변에 흔히 보이는 ‘평범한’ 남자도 돈과 권력이 있으면 바람을 피우고 더 나아가 불륜도 서슴지 않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남자는 원래 그런 ‘짐승’이라서 그런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간 남자는 인간 여자와 마찬가지로 ‘짐승’이다.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가장 근본적인 생물학적 이유는 바로 종족 보존이다. ‘왜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는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그냥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20만 년 정도 해 온 대로 인간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결혼해서 애를 낳고 기르고 그 애가 다시 ‘짝짓기’가 가능해질 나이가 되면 지구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종교와 전통에서는 그런 삶에 신성한 의미까지 부여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특히 선진국일수록 아이 낳는 것을 기피하는 풍조가 정착되고 있다. 어차피 지구는 언젠가 사라진다. 그런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가 종족을 보존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말이다. 더구나 인간이 물질욕을 충족시키고자 지구 자원을 남용하고 쓰레기를 양산해서 환경을 파괴하여 지구의 멸망을 재촉하는 상황에서 굳이 후손을 볼 이유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부부 정조의 의무가 지닌 종교적 윤리적 의미도 퇴색하고 있으니, 가정을 지키는 의미가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닌가?
어차피 지구는 반드시 망할 것이고 인간의 탐욕으로 파생된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로 그 종말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 것이라면 굳이 종교나 윤리 원칙에 얽매여 일부일처제에 따른 정조를 지킬 필요가 어디 있는가 말이다. 더구나 그 원칙이 자연의 순리와 어긋나는 것처럼 보일 때는 더욱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돈과 권력을 지닌 지배층은 일부다처제를 그렇지 않은 돈과 권력이 없는 피지배층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피지배층에 속한 사람이라도 돈과 능력만 있으면 축첩을 얼마든지 했다. 지역과 시대를 불문하고 말이다. 한국에서도 1894년 갑오경장 때 비로소 일부일처제를 제도화했을 정도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자연계에서는 약 5%만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조류에서는 90%가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 그러나 영장류는 27%만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이 이런데도 인간이 굳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생물학적인 것보다는, 사회적인 요인이 더 강하다. 일부일처제의 최대 장점은 사회적 갈등과 분노를 최소화한다는 데 있다. 동물의 왕국처럼 강한 소수의 수컷이 다수의 암컷을 차지하는 식이라면 많은 약한 수컷들의 분노로 사회 질서가 무너지기 쉽다. 그래서 법과 제도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종교적 교리나 윤리·도덕적 원칙을 내세워 일부일처제를 강제적으로 유지해 온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개인의 행복과 자유가 최고의 가치로 선언되고, 성적 자기 결정권이 인간의 기본권으로 여겨지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종족 보존의 본능에 따라 최대한 많은 암컷에 씨를 뿌리고자 하는 수컷의 본능이 인간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사회적 통제로 억제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억압 기제에도 불구하고 돈과 권력이 있는 남자는 지금도 다수의 암컷을 차지하려는 본능을 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십계명에서도 금하는 다른 남자의 아내에게도 종종 그 본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 들어와서는 여자도 성적 자기 결정권, 행복추구권, 자유권을 근거로 바람피우는 것을 꺼리지 않는 시대정신을 따라가고 있다. 그런 추세에 맞추어 한국에서조차 간통죄마저 더 이상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남녀의 성관계는 사생활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남의 배우자라고 해도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매우 개인주의적인 해석은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간통죄 폐지 이후 민사 소송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위자료가 줄어들고 개인적인 복수가 느는 부작용이 초래되었다.
결국 사회가 발전할수록 성에 관한 문제는 좀 더 ‘자연스러워지는’ 예상치 못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듯이 위에서 언급한 ‘로또 맞은’ 친지도 바람이 난 모양이다. 신이나 예수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성에 관한 문제인 세상이 되었으니 그러려니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왜 돈과 권력이 생기면 바람을 피워야만 하는 것인지 아무래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위에서 말한 대로 어차피 세상은 망하게 되어 있고 인생은 한 번 뿐이라면 실컷 쾌락이나 즐기다 죽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깟 쾌락에 빠져봐야 뭐 그리 대수라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것도 한평생 사랑하며 살자고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맹세한 배우자의 마음을 아프게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인데 말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수컷끼리 경쟁해서 암컷 무리를 차지하는 것은 가장 강한 종자를 남기려는 자연선택의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돈과 권력이 있는 수컷이 가장 좋은 씨를 남긴다는 보장이 과연 있나? 오히려 인류의 진보와 공동선의 차원에서 볼 때는 온갖 비열한 권모술수를 써서 많은 돈과 권력을 차지한 자들로 넘치는 사회가 덜 바람직한 것 아닌가? 물론 정당한 방법을 동원해서 돈을 많이 벌고 권력의 정점에 오른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본주의가 득세한 세상에서 이른바 올바른 사람이 많은 돈을 벌고 엄청난 권력을 누릴 수 있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그렇다면 돈과 세상의 권력은 예수가 말한 대로 신과 대립하는 악에 가까운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악에 물든 자가 바람을 피우고 심지어 간통해도 된다는 법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세상이 워낙 수상해지니 별생각을 다 해보게 된다. 그저 돈과 권력이 있어도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많아지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