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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신 Dec 09. 2020

민에 관하여

루틴이 주는 안정감


 민은 B.C(Before COVID) 자발적 집순이였다면 A.C(After COVID) 강제적 집순이자 세대주가 되었다.
 그녀의 하루는 전 날 밤부터 준비한다. 다음 날에도 쓸고 닦 을 것이지만 쾌적한 수면을 위해 방을 닦고 샤워를 한 후 경건 하게 잠옷을 입은 후 알코올 스왑으로 휴대폰을 깨끗이 닦은 후 침대로 올라간다. 한참 휴대폰을 보다 눈꺼풀이 무거워질 쯤 알람이 잘 맞춰져 있는지 확인한다. 월, 화, 수는 8시 30분, 9시, 9시 30분 3개를 맞춰두고 목, 금은 7시 10분, 20분, 30 분, 40분, 45분 5개를 맞춰둔다. 혹시 오전이 오후로 되어 있 는 건 아닌지 요일 하나가 빠져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눈꺼풀이 2/3이 감길 때까지 확인 후 잠든다. 모든 장기들이 잠들 때에도 불안한지 힘겹게 눈을 떠 제대로 맞춰 져 있는 것을 확인한다.


 민의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잡힌다. ‘왜 알람이 안 울리는 거 지? 설마..?’하고 일어나면 대부분 월, 화, 수는 7시 목, 금은 6 시 45분쯤 일어난다. 알람보다 일찍 일어난 사실에 흡족해 하 며 침대에 일어나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열고 이부자리 정리부터 한다.
 화장실로 가 양치를 하고 걸레를 빨아 침실인 복층부터 아래 층 순서로 닦는다. 하루에 두 번 많을 때는 3~4번도 닦는 1인 가구인데도 먼지가 나오는 게 신기하면서 그냥 넘어갈 먼지도 닦아낸 것에 야릇한 쾌감을 느낀다.
 청소를 끝낸 후 요가매트를 켜 스트레칭 또는 요가를 보통 10분 길게는 20분 정도 한다.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하고 안하고는 차이가 꽤 크다. 덜 예민해지고 몸이 덜 무겁고 덜 짜증이 난다. 아침에 몸을 가볍게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덜 힘든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 귀찮아도 밥을 거르지 않듯 하게 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꽤 땀이 난다. 화장실에 들어가 씻고 나 오면 서늘해진 공기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부엌으로 가 전 날 씻어 둔 그릇을 정리하고 아침을 먹는다. 아침은 보통 전자렌지에 데워 먹기만 하면 되는 볶음밥, 파스 타, 카레를 미리 해둬 먹는다. 넷플릭스를 보면서 먹는 밥은 시각적으로도 즐겁고 청각적으로도 즐겁고 후각적으로도 즐 겁고 미각도 즐거운 4感만족의 식사이다. 간편한 식사라 설거 지도 간편하다. 설거지를 미뤄두는 건 어쩐지 밥 먹고 양치를 안 하는 찝찝함이라 제때 해버린다.
 커피를 내린 후 창문을 활짝 열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켠 후 책을 읽는다. 출근하기 전 읽는 책은 마치 시험기간에 공부 외 에 모든 것이 다 흥미로워 벽조차 흥미로운 기분이다.
 10시 50분쯤 되면 슬슬 정리를 하고 이를 닦은 후 카페 출 근 준비를 한다. 12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하고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빨래/재료 손질/청소 중 한 후 샤워를 한다. 민의 마무 리이자 다음 날 준비를 마치면 눈꺼풀이 무거워 진 채 어제와 마찬가지로 알람을 여러 번 확인 한다.
 

 민은 자유로운 것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규칙을 매우 중요 시 한다. 어쩌면 자유로워지고 싶어 규칙을 만들고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외부의 구속도 얽매이는 것도 싫지만 고삐 풀 린 망아지처럼 산다면 과연 즐거울까. (그리고 망아지의 나이 가 지났다) 외부가 아닌 민이 만든 규칙에 따라 사는 건 순간 순간 끌리는 것에 사는 것 보다 안정감을 준다. 살아가다 보면 내 통제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수 없이 일어난다. 빨강 머리 앤 은 그래서 삶은 흥미롭다고 말하지만 민은 통제 할 수 없는 일 들 중 좋았던 일들 보다 힘들고 괴로웠던 일들이 더 많은 것으 로 기억한다.

 

 민은 통제되지 않는 새 해, 환한 보름달, 울창한 나무, 유성, 간절한 마음들이 쌓아 올린 돌탑을 볼 때마다 소망이자 소원 들을 빈다. 모든 것을 통제하며 살아갈 수 없지만 오늘, 지금 만큼은 민이 만든 규칙에 따르고 싶다. 그 순간들이 쌓여 다 음 날이 되면 눈을 뜨고 일어나고 씻고 먹이고 노동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통제에 벗어나는 일들을 해보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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