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신 Sep 19. 2021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사소해서 어쩌면 비범할지 모르는 사람과 일상에 대하여

 

 밥 먹을 때 넷플릭스를 켜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를 때, 새로운 영화나 드라마를 볼 기력이 없을 때, 다시보기 추천에 뜰 때, 매년 새해 마다 생각나는 영화<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를 본다. 

 처음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우에노 쥬리와 아오이 유우를 좋아해서 보게 되었다. 좋아하는 배우 두 명이 나오니 두 배로 재밌겠다! 해서 6년 째 보고 있다. 해가 거듭할수록 영화 주인공은 스즈메만이 아닌 모든 인물들이라 생각한다. 너무 평범해서 배경 같은 사람, 어딘가 이상해보이지만 그 자리에 늘 있는 사람, 다채로워 어디든 흡수되는 사람. 

 스즈메는 버스 정류장 앞에 ‘저 이 버스 타요’하고 서 있어도 쌩 지나가버리고 공중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으면 아주머니가 자리를 밀치고 들어와 자리를 뺏기고 덤으로 시원하게 방귀 소리를 듣는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희미하게 보여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스즈메는 남편의 반려 동물 거북이에게 먹이를 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먹이를 주고 나면 해외 출장 나가 있는 남편이 전화 와서 스즈메의 안부가 아닌 거북이 먹이를 줬는지 확인하고 뚝 끊어 버린다. (스즈메랑 결혼한 이유는 거북이 먹이 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게 아닌지)

 거북이에게 먹이를 준 후 거북이집을 베란다에 내놓고 물을 받다 태어날 때부터 친구인 쿠자쿠 연락을 받는다. 통화를 하다 물이 넘쳐 거북이 먹이로 하수구가 막힌다. 하수구 기사님이 오셔서 시원히 뚫어 준 후 어떤 가정에 방문했는데 하수구에서 오징어 순대를 발견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스즈메는 못 믿겠다 하니 기사님이 못 믿겠으면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얼떨결에 보러 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스즈메는 끝없는 계단을 보고 30초 이내에 올라가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자기만의 규칙을 정하고 열심히 올라간다. 계단 위 사과가 가득 담긴 리어카를 끌다 무게를 못 이겨 사과들이 계단으로 무자비하게 떨어진다. 무시무시하게 내려오는 사과로 부터 지키려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는 와중 코딱지만한 ‘스파이 모집’ 공고를 보게 된다. 


 

 쿠자쿠와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에 나오질 않아 줄넘기를 사서 공원에서 줄넘기를 한다. 공원에는 7년째 똑같은 벤치에 앉아 개미에게 먹이를 주는 할머니가 계신다. 

 줄넘기를 해도 오질 않는 쿠자쿠. 스즈메는 공원에 나와 걷다 ‘영구파마’ 미용실을 보고 기분 전환하려고 파마를 한다. 롯뜨를 말고 기다리는 동안 춤을 춰도 되냐고 묻기만 하고 대답은 듣지 않으시는 사장님. 본업보다 춤을 더 잘 추신다.


 ‘영구 파마’라는 간판처럼 당분간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짱짱한 컬이 나왔다. 머리를 하고 쿠자쿠를 만나게 되었고 스즈메가 좋아하는 라멘집을 가게 된다.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는 어중간한 맛이 난다. 라멘집인데 후식으로 나오는 에스프레소가 맛있는 ‘사루타나 라멘’가게. 

 

 스즈메는 일상이 무료해 스파이 면접을 보러간다. 일반 가정집에 쿠기타이씨와 에츠코씨 부부가 스파이로 살고 있다. 이름이 실명인지-일본어로 스즈메(すずめ)는 참새를 뜻한다-평범한 외모와 키, 분위기에 놀란다.

 “너무 평범해서 반대로 비범한 거 아니야?”라며 바로 합격한다. 활동자금 500만엔을 받고 활동임무는 가능한 한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얼떨떨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 온 스즈메. 평범해서 지겨웠던 일상이 갑자기 스파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에 활력이 돋는다. 매일 아침 거북이에게 먹이 주는 것, 청소, 빨래, 밥 먹기 모든 것이. 이불을 널다 문득 평범하게 이불을 널어놓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고 평범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의문이 든다.

 스파이 부부와 만나 첫 미션으로 레스토랑에서 점원이 기억하기 어려운 메뉴 주문하기와 오후 3시 슈퍼에서 3천엔 장보기가 있다. 

 여러 명이서 밥 먹으러 갈 때 ‘이 메뉴는 어떤 분이죠?’하고 기억이 안 날 메뉴를 고심해서 고르고 평범한 장을 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적이 있었나. 일상에서 의식하지 않던 행동들이 미션이라니 너무 귀엽고 신선하잖아.

  영화 중후반에 들어가면 쿠자쿠가 뽑기에서 당첨된 어망끌기 행사에 참여하다 고기가 아닌 시체를 건지게 되어 스파이 활동이 시작된다. 긴장할 건 없다. 말랑말랑한 분위기에서 ‘오, 흥미로운데!’ 정도의 긴장감 정도다. 

 10년 넘게 일상에서 평범하게 지내던 스파이 요원들이 공원에 모여 본부로 돌아간다. 엄청난 실력과 신분을 숨긴 채 일상에서 평범하게 생활을 정리하고 본업을 하러 가는 전문성. 너무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았거나 어딘가 조금은 모자라 보이고 이상했던 것 모두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뭐야’했던 인물들이 영화를 보다보면 정이 든다. 너무나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없다고 하니 아쉬웠다. ‘다음에 또 봐’라는 인사가 아닌 ‘안녕’이라니.

‘생각해 보면 이별은 대부분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한쪽이 죽은 후 처음으로 ‘그때가 마지막이었구나’ 생각하는 것뿐.’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미키 사토시, 2006.10.19 中

 
 스스로가 하찮게 느껴질 때가 많다. 생각의 흐름이 부정의 궤도에 달릴 때면 모든 생명체에는 다들 자기 역할이 있고 그 역할들을 해내고 있는데 나만 멈춰 있을 것 같을 때. 그럴 때 이 영화를 보면 ‘스파이 면접에 참여했다면 프리패스상인데!’  

 아무도 지시하지 않고 시키지 않았지만 스파이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활동 업무는 최대한 평범하게 살기!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서 양치도 하고 밥을 챙겨 먹고 씻고 나가야 한다. 평범해야 하니 옷도 지저분하거나 냄새 나면 안 된다. 가게에 갈 때 ‘저 사람 왜 저래’라는 인상을 남기면 안 되니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라고 꼭 인사를 한다. 평범하기 위해서는 아프면 안 된다. 아프지 않기 위해 건강하게 먹고 운동해야 한다. 

 평범한 생활을 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하찮게 느껴지던 스스로와 지겹던 일상이 제법 활력이 돋는다. 활력이 돋으면 손 놓고 있던 것들을 다시 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스파이 활동중이라 생각하면 ‘저 사람도 혹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 큰 소리로 ‘문!열!어!줘!’를 외치는 꼬마(또는 본인이 ‘띵! 동! 띵! 동!’ 초인종이 된다), 산책 갈 때마다 자전거로 주변을 뱅글뱅글 도는 꼬마2, 몸이 도화지 마냥 문신으로 가득한데 이름은 순둥순둥한 아저씨, 딸기라떼에 씨 빼달라고 요구하는 사람, 전화 주문하고 1분 만에 와서 음료 언제 나오냐고 재촉하는 00샵.

 ‘아니, 왜 저래’하며 불쾌하다가도 저 사람은 어쩜 자신의 엄청난 능력과 신분을 가리기 위한 컨셉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함부로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욕할 수 없게 된다. 

 누군가는 정신 승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자꾸만 지는 기분이 들 때 정신 승리라도 하자. 그러면 기분이 좋쿠든요. 

작가의 이전글 전생 보다는 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