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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신 Sep 28. 2018

슬픔이 슬픔에게

김사월의 (슬픈 생각은) 달아

슬픈 생각이 지겨워

나는 제멋대로 지냈네

사랑하는 미움들과 지냈네

9월의 어느 저녁에

나는 문득 생각이 났네

사랑하는 미움을 멈추고 싶어

스스로를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 달아

그걸 끊을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1. 오전의 슬픔

 더위를 많이 타기 보다는 추위를 많이 타고, 외향적이기 보다는 내향적이고, 손발이 차가우며 행복한 생각이 편하기 보다는 슬픈 생각이 편안한 체질이라고.

 종종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들을 하지 못해 후회를 많이 해. 후회는 언제나 사람을 구질구질하게 만드는 것 같아. 이미 지나간 일인데 스스로를 비난하고 비하하고 지나간 사람, 상황에 대해서 화를 내고. 내가 잘못한 상황이 아니라 내가 피해를 입는 상황이어도 상대방 보다는 나 자신에게 비난하는 것이 쉬우니 지독하게 나 자신을 미워해. 나는 왜 하고싶은 말을 하지 못할까, 괜찮지 않는데 왜 괜찮다고 말했을까 비겁해. 이해 받지 못하는데 왜 내가 이해하려고 하는 걸까, 나는 왜 하필 나여서 이렇게 나를 미워하는 걸까. 하지만 나를 미워하고 슬퍼하는 것이 편안하니까. 구질구질해보이고 지겨워도 이게 난데. 

 외로움을 숙명이라고 생각했어. 아무리 떨쳐보려고 해도 떨치면 떨칠수록 몸집이 커져만 가더라. 외로움도 외로워서 그런거였는데. 외로운 존재들끼리 함께 해보자고 했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라디오를 듣고, 메모를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것들을 사서 방 안에 가득 채워도 허전했어. 그렇게 그저그런 지루하고 시시한 날들을 보내다가 두 달에 한번 씩 지독하게 찾아오는 슬픔이 오면 책의 모든 문장이,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영화의 어떤 한 장면, 라디오 진행자의 멘트, 카페에서 바라본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리고 이상하게 넉넉했어. 모든 것들이 내 슬픔을 건들여 눈물이 나고 위로가 되고 또 슬픔에 잠기고 그것을 토해내듯이 글을 쓰고. 그 시간들 만큼은 외롭지 않았으니까.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살아가는 나에게 슬픔이 없었다면 이 지루하고 지독한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2. 오후의 슬픔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입으로 내뱉지 못해 손가락으로 꾹꾹 내뱉어.  

 체질이라는 것이 있잖아,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 내향적인 체질, 손발이 차가운 체질, 예민한 체질 그리고 슬픔체질. 슬픔에 자주 빠져드는 사람은 슬픔이 숙명이자 체질인가봐.

 화가 나서 슬프고, 억울해서 슬프고, 내 약점이 드러나서 슬프고, 나약해서 슬프고,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해서 슬프고,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슬프고,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슬프고, 가진 것이 없어서 슬프고,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나라서 슬프고, 날씨가 추워서 슬프고, 외로워서 슬프고, 견디기 싫은데 견디는 것이 가장 편해서 미련하게 견디는 것이 슬프고,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 슬프고, 슬픈 사람이 또 슬픈 일을 겪어야 해서 슬프고, 항상 이해하는 쪽인 사람들을 보면 슬프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뼈를 때리는 말과 시선이 슬프고, 늘 항상 밝은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안녕할까 걱정이 되어 슬프고, 부끄러워서 슬프고, 만족하지 못해서 슬프고, 체념해야 해서 슬프고, 계절이 바뀌어서 슬프고, 마음은 불에 데인 것처럼 아픈데 그런 내 마음과 달리 달리는 창밖이 너무 예뻐 슬프고, 나를 숨겨야할 때 슬프고, 나보다 더 나약한 사람을 볼 때 슬프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다리는 것 밖에 없는 상황이 슬프고, 매일 밤 불안과 걱정, 허무함을 끌어안고 자야 해서 슬프고, 어김없이 눈을 뜨는 것이 슬프고,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내 마음을 알아줬을 때 슬프고, 유난히 길고 어둡게만 느껴지는 집 가는 길 전화할 사람이 없을 때 슬프고, 전적으로 이해받고 싶은 날에도 내가 이해해야 할 때 슬프고, 기대를 하는 동시에 실망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슬프고, 기대한 만큼 실망이 컷을 때 슬프고, 누군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이해해줄 때 슬프고, 아프지만 아픈 내 마음을 내가 다독여야할 때 슬프고, 미래를 생각하면 한 없이 슬퍼지고, 과거를 생각해도 역시나 한 없이 슬퍼지고……자기연민에 빠져있는 내 모습이 지겹도록 슬프고 지겹도록 벗어나고 싶다. 

 슬픈 생각을 멈출 수는 없어. 

 슬프기 때문에 책 속에 문장,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 팟캐스트의 진행자 멘트, 영화의 한 장면, 움직이는 풍경을 보며 울컥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 감동이 되어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싶어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종종 나를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애증의 슬픔. 



김사월의 달아는 올해 봄부터 지금까지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곡이었습니다.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 이 노래를 들으며 노래 속 화자는 밝기 때문에 그림자가 있는 여자가 아닐까라는 상상이 모여 쓰게 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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