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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신 Dec 02. 2018

11월이 가르쳐 준 것들

돈, 말, 의무감, 확인

11월은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 준 달이다.
돈, 말, 의무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기

1. 돈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소식을 들을 때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불행할 수 있을까, 행복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더 이상의 불행은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두 손 모아 소원을 빌 기회가 생기면 종종 그 사람의 안녕을 위해서 기도를 했다. 떠올리거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을 먹먹하게 하던 사람. 이제 더 이상은 불행이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나라고 조마조마해 했는데 그 사람은 이번 년 도에 대장암에 걸렸다고 하였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돈을 빌린 적도 없었으면 있더라도 늘 기한 내에 주던 사람이었기에 차가 고장이 나서 돈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의심 없이 15만 원을 빌려주고 두 번째는 병원비가 없다고 해서 15만 원을 당연히 빌려주었고 당연히 받을 줄 알았다. 그 사람이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아 경찰서에 실종 신고하러 갔더니 수배 중이어서 실종 신고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암도 차가 고장 난 것도 그의 말도 안되는 불행도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불행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가 불행을 쫓아 다닌 것이다. 30만원도 30만원이지만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인생을 거짓 투성이로 꾸미고 다녔을까.

 빌려 준 30만 원은 조만간 칠 국가시험과 필요한 책들을 살 돈이었다. 장바구니에 담아두던 책들을 비우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다시 계획을 세워 처음 장바구니에서 반으로 줄였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빌려 준 30만 원 조만간 칠 국가시험 돈이니 돌려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못받을 돈 같으니 잊기로 했다. 마음이 너무 쓰려 G에게 하소연을 했다. G는 내가 빌려 준 돈의 30배가 넘는 돈과 사람을 잃은 것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리고 인생에서 큰 경험했다고 다독여주었다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돈을 빌려주지 않기로 했다.빌려주더라도 빌려 주기보다는 내가 줄 수 있는 선에서만 주기로 하고 돌려받을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가족일지라도 빌려 주지 않기로 했다. 대신 현금이 아닌 현물로 주기로 하였다. 경험은 언제나 돈과 마음이 쓰이는 것 같다.

2. 말
 사소한 말이라도 말이라는 것은 내가 직접 전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학과 생활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교수들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하거나 어떤 친분이 없다. 매 학기마다 의무적으로 담당 교수와 상담을 해야 했다. 담당 교수랑 2번 정도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매번 불편했다. 1:1이 아닌 다수로 이루어지는 상담이었는데 내가 없어도 될듯했고 상담하는 친구들 사이에 끼인 듯한 기분이었다. 불편했기 때문에 이번 학기는 일부로 가지 않았다. 가지 않았던 날 교수는 나에게 중요한 말을 전달했어야 했나 보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당연히 가지 않았고. 그 교수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왜 안 오냐고 물었고 나는 그 친구에게 그 교수랑 상담하기 조금 불편해서 일부로 가지 않았다.라고 하니 그 친구가 그럼 자기가 교수에게 알아서 잘 전달해주겠다고 하였는데 그게 아무리 잘 전달한다고 했지만 내가 직접 전달하지 않아 오해가 생겼다. 친구가 연구실에 와야 할 것 같다고 다급히 전화와서 급하게 갔다. 연구실에 들어가니 교수는 다짜고짜 자기 얼굴 보기 싫어서 일부로 오지 않은 거냐고 공격적으로 말을 했다. 말이 잘못 전달된 것 같다고 상담에 가지 않은 것에 대해 솔직히 말했다. 교수는 그제서야 공격적인 태도에서 느슨해졌다. 연구실에서 나왔을 때 마음이 상했다. 말을 잘 전달해주겠다고 한 친구가 미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친구는 잘 전달했겠지만 내가 직접 전하지 않아 오해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아주아주 사소한 말이라도 내가 직접 전하기로 했다. 말이라는 것이 분위기, 단어, 목소리 톤이 조금만 달라도 그 의도가 너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3. 의무감
 20살 입학하고 얼마 안 돼서 나는 과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괜찮아지기는커녕 나랑 안 맞는 이유에 대해서 명확이 알아가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특별히 하고 싶었던 것이 없었다. 하지만 꿈이 없다고 하면 말이 길어지니 어른들과 2~3마디에서 끝낼 수 있었던 적절한 대답용의 꿈을 제시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이 늘 착하다,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얼굴에 먹칠하는 것이다,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 헌신해야 한다, 이기적으로 살면 안 된다, 서로 돕고 도우면서 산다 등등 그 누구도 너답게 살아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다. 내 마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고 늘 착하고 바른 사람이 되기만을 강요했다. 많은 어른들의 가르침이 내 뜻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보다는 다른 사람들 마음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상처받고 아픈 건 당연한 거지만 상대방이 상처받고 아픈 건 안된다. 나에게는 아주 엄격하고 남들에게는 관대하여 착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바라봐 주고 칭찬해주는 것이 좋았다. 유년 시절을 불행히 지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유년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동복지학과를 왔다.
 입학하고 얼마 안 돼서 어린이집에 갔었다.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의 표정은 충격적이었다. 찌들어 있고 지쳐 있는 표정, 너무 바빠 머리도 제대로 묶을 수 없어 마구 풀어헤쳐진 모습. 숨이 턱 막히면서 무서웠다. 그 이후로 학교, 학과 생활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2년을 휴학했다. 마음을 잡고 복학하고 그 해 2학기 초반에 또다시 휴학을 했다. 자퇴를 하는 심정으로 했다. 휴학인지 자퇴인지 모를 시간 동안 지겹도록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불안해했다. 일단 졸업을 목표로 복학을 했다. 어떤 목표도 없으니 주어진 것에 열심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흥미가 있든 없든 공부를 열심히 했다. 봉사활동도 하고 취업을 생각해서 네이밍 있는 곳에서 실습을 했다. 전공을 살려서 사회복지사, 상담사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다. 모든 것들이 너무 불편하고 불안했다. 불편하고 불안했던 이유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이 아니었다. 불편하지만 계속했고 해야 한다 생각했던 것은 의무감이었다. 학교 취업센터에 상담 선생님이 ' 민화야, 혹시 의무감 때문에 선택한 거 아니야?'라고 조심스레 물어보셨을 때 머리에 전구가 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선생님께 '네, 맞아요 의무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신나게 대답했다. 의무감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편했다. 과감히 놓을 수 있으니. NGO에서 실습하는 동안 괴로웠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실습 마지막 주에 대리님에게 고충을 털어놓으니 책임감으로 이 모든 것을 해내고 버티고 있는 것 같다고. 그때는 내가 책임감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느꼈는데 그 책임감이자 의무감이 내가 진짜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혼란스럽게 했었다.

4.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기
 당연하기 때문에 확인하지 않는 것들에 꼭 걸려 넘어지게 된다. 당연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당연해야 하기 때문에 또 한 번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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