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서 쓰는 글
우울과 무기력이 반복되고 있다.
어느 땐 불안이라는 감정도 불쑥 찾아온다.
우울증이 시작된 기점은 많은 것이 이해되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기도 했던 시점.
즉 소위 '철이 들었다'라고 말할 법한 시점 이후였던 것 같다.
딱 그 시점에는 인생을 좀 더 안 것 같은 느낌에 들떠 있기만 했었다.
그로부터 1-2년 후, 우울이 찾아왔다.
시간이 흘러 좋은 사람을 만났고 덕분에 한동안 우울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우울해지는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 요소들이 작용하기에 딱 뭐 때문이다라고 말할 순 없지만
상태가 다시 안 좋아진 것에 영향을 준 그 일.
그 애는 자신이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아프게 한 줄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지가 순식간에 그려진다.
나도 자신을 우울하게 만든 존재라고 그때 그 마지막 대화처럼 말할 것이다.
오랜 시간 마음을 줬고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나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
절망감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내가 그동안 일궈왔던 세상 하나가 무너졌다.
마지막 대화에서 다시 잘 지내보려고 대화를 먼저 시도한 나의 모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나의 노력 모두 그 애에겐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유일한 관심은 자신에게 절망감을 주는 나를 자신의 세계에서 빼버리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 애는 알까.
그 일은 단지 안 맞는 너와 나라는 사람의 뒤돌아섬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누군가의 한 세상을 무너뜨렸고, 누군가의 어린 시절 한 움큼을 잔인하게 뜯어 갔다는 사실을.
보통 누군가와 다투고 난 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당시 뱉었던 말들이 후회되는 경우가 많다.
'그 정도까지 말할 건 아니었는데.', '사실 그 정도로 심각하게 표현할 필요는 없었는데.'싶어서.
그 일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2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나는 그때 했던 말들 중 후회되는 말이 단 하나도 없다.
내 행복한 모습이 네게 우울감이었냐고 거의 울부짖는 심정으로 했던 내 질문에도
그 애는 끝까지 표면상은 어이없다는 태도를 취하며 그 어떤 진지한 반박도 하지 않았다.
사람은 어떤 해결되지 않은 마음이 알아봐 지지 않으면 그 말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얽히고설킨 마음속 응어리가 계속 마음을 찌르기 때문에 기침처럼, 구역질처럼 튀어나온다.
나는 살기 위해 글에 뱉어내야만 했다.
더 이상 마음속에 묻어두고 혼자 삭히다가는 내가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사실 병원에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하지만 시험관을 곧 시작할 예정이라 갈 수가 없다.
가면 방법이 있겠지만 성격상 작지만 계속 할 걱정을 안고 시작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