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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래 Dec 06. 2021

학림다방의 애프터이미지는,

에스프레소 콘파냐

4호선 혜화역, 종로구 동숭동에는 다방이 있다. 지도 어플에는 [학림]이라고 되어있는데, 우리는 그곳을 그냥 학림다방이라고 불렀다. 스물두 살에 만난 남자 친구는 나보다 4살이 많은 학교 선배였다. 연상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좋았고, 모든 것이 불편했다. 누구보다 친한 사이인  같지만 말을 아주 놓진 못했고, 하고 싶은 것이나 보고 싶은 것을 말할 때도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겨우   차이였고, 정말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던 그도 스물여섯 어린 남자 어른이었다. (그것보다 열두 살이나  많은 지금의 나는 26 남자를 보면 ‘애기’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서울 토박이인 그는 지방에서 올라온 나보다 서울 곳곳, 특히 종로, 동대문, 이대 등지를 잘 알았다. 지하철역을 기준으로 다니 던 나에게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들을 알려주었다. 그중 한 곳이 대학로였는데, 이제 너무 오래 지나 우리가 대학로에 왜 갔었는지, 가서 무엇을 했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나를 데리고 갔던 낡고 오래된 카페는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난다.


“여기 친구랑 온 적 있는데, 음악도 좋고 괜찮아.”라고 하면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 좁은 계단을 올라가 끼긱 소리가 나는 문을 열었다. 옛날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쇼파와 테이블, 장식들과 창문이 기억난다. 한쪽 벽에 lp가 꽂혀있었다. 전체 층고는 높은 편이지만, 한쪽을 복층으로 만들어 2층은 키 큰 그가 완전히 서면 불편하다 생각할 정도로 낮았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던 그는 메뉴를 한참 보면서 고르질 못하고 있어 옆 테이블과 그 옆 테이블에서 비엔나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 그냥 그걸 시켜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에스프레소 콘파냐를 시켰다.


요즘 자주 가는 작은 카페가 있다. [애프터이미지 | afterimage]라는 동네 카페이다. 부부인지 연인인지 모르겠지만 다정한 두 분이 함께 하는 곳인데, 커피도 좋고 구움 과자들이 맛있다. 단정하고 따뜻한 곳이다. 아직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메뉴가 종종 만들어지고 있다. 요즘 카페스럽게 공지는 인스타그램으로 하고 새로운 메뉴가 궁금한 날엔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 후로 들러 잠깐 시간을 보내고 온다. 아이가 좋아하는 마들렌이나 쿠키도 있어 같이 가기 좋다.

 

애프터이미지에서 에스프레소 콘파냐를 낸다고 해서 다녀왔다.


나에게 에스프레소 콘파냐는 학림다방이다. 언젠가 어느 세련된 여자가 마시던 에스프레소 콘파냐. 나도 언젠가 제대로 어른이 되면 저걸 마셔보겠다 했다. 비엔나커피는 큰 잔에 주는데 콘파냐는 (당연하지만,) 아주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낸다. 긴 손가락으로 작은 잔을 잡고 한 모금 마시면 윗입술에 크림이 살짝 묻는다. 그걸 천천히 살짝 혀로 핥던 여자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시켰다. 무척 적은 양이라 두세 번 마시면 끝이다. 윗 쪽 크림은 차갑고 달콤하지만 아래로 들어오는 커피는 진하고 쓰다. 입 안에서 차갑고 뜨거우면서 쓰고 달콤한 것이 만들어진다. 삼킨 후 입 안에는 어른의 향이 남는다. 22살 나는 26살의 남자 앞에서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 사이 많은 콘파냐가 있었다. 각성이 필요한 날 에스프레소 콘파냐를 마신다. 진한 에스프레소와 기분 좋은 크림을 마시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이상은 각성도 어른스러움도 필요하지 않은 날에도 에스프레소 콘파냐는 맛있는 커피이다. 좋은 원두로  뽑아 내린 에스프레소에 과하지 않은 크림.  번을  갔던 학림다방에서 마주 앉았던 그는 자신이 오래 다닌 이곳에 언젠가 자신의 아이와 함께 오면 신기할  같다고 했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아이는 아빠보다 엄마랑 카페에 가는  좋아한다. 학림은 모르지만 애프터이미지는 알고 있다. ‘엄마가 아하는 커피랑 내가 좋아하는 쿠키가 있는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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