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 문득
달리기를 하면서 주로 듣는 건 클래식 FM이다. 93.1 메가헤르츠. 광고가 없고 진행자의 멘트가 적다. 클래식 곡은 연주 시간이 길어 달리기와 호흡이 맞다. 달리기엔 클래식 에프엠 만한 친구가 없다.
낭랑하게 나오는 주파수를 찾아 라디오 안테나를 창문 이리저리 옮기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런 기억이 어색하게 이젠 휴대폰을 열고 방송국 앱을 실행하면 잡음 없이 깨끗한 라디오가 나온다. 안테나가 더는 필요치 않은 요즘이다. 게다가 선곡의 수고도 없다. 이보다 완벽한 달리기 러닝 메이트가 또 없다.
그렇게 나의 러닝 메이트가 정성껏 고른 곡을 들으며 달리던 밤, 대공원을 다 돌고 아파트 단지와 대공원 길을 잇는 굴다리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고층 아파트 불빛을 가로등 삼아 멈춰 서서 달리기 기록을 확인할 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가 흘러나왔다.
달리기 완료 버튼을 누르려다 말았다. 달리기 종료와 함께 기록을 읽어주는 기계음 대신 짐노페디를 조금 더 듣고 싶어졌다.
아주 오래전, 삐삐로 연락하던 시절. 그의 번호가 찍혔고, ‘이 노래 제목 알아?’ 라며 어딘가에서 겨우 녹음해 다시 내 삐삐 음성 메시지로 보낸 곡이었다. 테트리스였던가, 컴퓨터 게임을 하는데 배경음으로 깔렸다면서 너무 궁금하다고, 무슨 곡인지 아냐고 그가 물었고, 나는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비슷한 음악이 흘러나올까 싶어 예민하게 귀를 세웠다.
아마 해를 넘겨서야 이 곡의 제목을 찾아냈던 것 같다. 에릭 사티, 짐노페디래.
배철수의 음악캠프였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고 나는 워크맨의 녹음버튼을 눌렀다. 클래식 에프엠을 들었더라면 더 쉽게 빨리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클래식을 즐겨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따분하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에릭 사티를 찾아 헤매다니. 에릭 사티가 19세기 프랑스 작곡가라는 것도,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게 짐노페디란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가 찾아 헤맨 게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나 뉴트롤스가 아니고 스탄 게츠나 조 빔도 아니고 서로의 세계에선 무명에 다름없는 클래식 음악가였다니.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친구는 나에게 에릭 사티의 음반을 보내줬다. 우리가 발견한 곡 ‘짐노페디’ 외에는 사실 크게 감흥이 있지도 않았지만, 붉은빛이 도는 표지의 그 음반만큼은 꽤 소중했다. 그건 안부였으니까. 그해 그는 휴학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갔고, 나는 그가 없는 서울에서 심심한 방학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여름은 더웠고, 젊음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게 가고 있었다. 막막함과 더위가 뒤섞인 후덥지근함이 나는 가 본 적 없는 도시에서 보내는 그의 여름을 상상하기 어렵게 했다. 그러던 중에 그가 보내온 음반이었으므로, 나는 짐노페디를 반복해 듣고 또 들었다. 잘 지내고 있지? 나도 잘 지내. 굵은 피아노 소리는 선풍기 바람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다 사라지다 했다.
이 음악이 흘러나오면 부유하는 먼지 속에 친구의 안부를 묻는다.
연락은 서서히, 예고 없이 끊어졌다. 나는 재수학원에, 그는 연애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된 서로의 안부. 우리는 엘지 트윈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를 앞두고 신문을 펼쳐 이상훈과 임창용의 방어율을 이야기했고, 전화로 야구 게임을 하던 사이였는데. 서로가 듣는 음악을 권하고 하루를 묻는 사이였는데. 주고받은 몇 년의 시간 동안 숱한 이야기들이 있었을 텐데 지금 기억나는 건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가 전부다. 자신의 음악이 일상에서 발생하는 소음처럼, 집안 가구 같은 배경음처럼 쓰이길 원했던 에릭 사티의 음악을 그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 그는 어느 시절의 배경이 되었고, 짐노페디가 흘러나올 때면 나는 덩그러니 놓인 의자가 되어 음악을 듣는다. 그의 안부는 묻지 않아도 떠오르는 무엇이 되어 찬 공기와 함께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