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없는 믿음과 구름 없는 하늘
항상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친구가 있었다. 10대 시절의 나는 혼자 있는 걸 지금보다 더 좋아했기 때문에 그 친구가 굉장히 신기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도 아닌 것 같은 데다 항상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에 물어봤다. “먼저 많이 다가가는 이유가 있어?” 그랬더니, “10명한테 다가가면 10년 후에 1명이 남을 테니까. 그리고 그 1명이 너인 것 같아.”라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운동장 벤치, 남자아이들이 축구하는 소리가 멀어지더니 기대 없는 믿음과 구름 없는 하늘이 눈앞에 넓게 들어왔다. 그전까지의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경구를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그 후로는 그 친구의 말이 고전을 제치고 1장 1절을 차지했다. 그녀는 내가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의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그 친구 다음이, 삼촌일 것이다. 예전에 일했던 곳에서 만나 지금은 삼촌이라고 부르는 분이 있다. 나는 앞에 나가는 건 좋아하지 않는데 이래저래 하고 싶은 바는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로 따로 연락해서 설득해 보는 방법을 쓰곤 했다. 그때는 삼촌이 연결되어 있어서 만남을 요청했다. 의견을 강하게 얘기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는데 끝까지 들으시더니 “네가 하는 말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나한테만 그렇게 말했으면 감동받지 않았을 거다. 살펴보니 삼촌은 정말 모든,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부 끝까지 듣고 있었다. 특정 영역에서의 경험이 자기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의 이야기는 정리가 덜 되어 있기에 거칠고 투박하다고 느끼기 쉬운데 삼촌은 그 속에서도 배울 점을 찾았다. 그게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가치인지 전에는 잘 몰랐다. 삼촌이 했던 ‘네가 하는 말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다’는 말은,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대하는 기준이 되었다.
나를 바꿔놓은 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알아차리진 못했더라도 많은 것들에서 암암리에 영향을 받고 있을 거다. 그렇기에 되도록 좋은 자극과 영감을 주변에 두려고 의식한다. 그런데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보다 가장 확실하게 나를 변화시킨 말은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의 노고에서 왔다. 그건 아마도 말 하나를 삶 속에서 지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좋은 사람으로 남기까지의 여정이 하나의 에너지로 전달된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말에 잘 취하는 사람이라 좋은 말보다 좋은 말을 건네는 사람을 보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말하거나 쓸 때는 언어가 웃돌고 있지 않은지를 주의한다. 앞으로도 나를 바꿔놓은 말을 건네준 사람을 떠올리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 삶이 녹아든 문장을 건넬 수 있을지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