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교회
여름 동안 나는 그때의 순간을 수없이 많이 되감아보곤 했다.
나는 정말로 문제를 발견하고 싶었다. 세상에 답이 없는 일이란 없으니까.
마음을 거절당하고 난 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여겼건만 나는 괜찮아지지 않았다. 심해를 뚫고 더 깊이, 빛 한 줄기 투과하지 못하는 어둠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것만 같은 느낌, 꾹꾹 참고 있던 무기력이 몰려왔다.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활동적으로 지냈던 지난 상반기 동안 나는 내가 지닌 에너지보다 몇 배는 높게 신경을 쏟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의 마음은 결국 탄성력이 있어서 본래의 성질로 되돌아가려는 힘이 있는데, 나는 가늘게 찢어지듯 늘어난 슬라임처럼 너무나도 멀리 온 것이다. 도저히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나는 내가 나를 아는 만큼 타인의 마음도 잘 알고 있다고 자만했다. 어쩌면 그들 자신보다도 내가 더 사람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내밀한 속내를 관통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니까.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자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을 내 손아귀에 쥘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얼마 동안은 내가 생각했던 대로 사람들을 단정 지을 수 있었다. 인간의 직감이란 틀리지 않고, 나는 사람을 꽤 잘 보는 편에 속하니까. 그러나 사람을 ‘잘 보는’ 것과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 사람의 마음이 지금 어떤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런 것들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으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타고난 재료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엔 이해가 필요하다고 헤프게 말하고 다녔다. 정작 그 사람에 대한 이해는 하지도 않은 채 나는 세상 너그러운 척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보이길 원했다. 나는 끝내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내게 연락을 줄 것처럼 연락을 주지 않았던 그 사람의 눈앞에 나타나 몇 번이고 따져 묻고 싶어 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너도 내게 호감이 있었던 것 아니었냐고.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내게 그렇게 비밀스러운 웃음을 보여주고, 미묘한 말들을 지껄였던 것이냐고. 끝내 쓸어내지 못한 생각들은 때로 분노가 되기도 했다. 야 이 새끼야. 내게 감정이 없었던 거라면 처음부터 나를 만나지 말았어야지. 내가 또 보자고 할 때, 또또 보자고 할 때 거절했어야지. 거절해도 된다고 했을 때 거절했어야지. 그 사람은 내게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나는 그 사람을 멋대로 빌런으로 캐스팅해버렸다. 그렇게 마음은 끝없이 검게 물들어갔고, 나는 내 안에 차오른 녹진한 슬픔을 쳐내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할 수 없었다.
아, 그런 뒤 정말로 그에게 따져 묻기 위해 그를 만나러 가긴 했었지.
넥슨 컴퓨터 박물관에서 나와 피자와 파스타가 주요 메뉴인 근처 레스토랑에 방문할까 하던 차, 동생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곧바로 택시를 잡았다. 예약해 둔 일정이 있는데 지금 출발해도 빠듯하게 도착할 것 같다는 것이 그 애의 변명이었다. 니가 뭘… 예약이라는 걸 했어? 내 물음에 동생은 대답 대신 택시의 한쪽 문을 활짝 열고 탑승하더니 내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드넓게 초록이 펼쳐진 대지. 그곳이 어디였는지도 모르겠다. 오는 동안 나는 택시 안에서 전날 부족했던 잠의 양만큼 꾸벅 졸았고, 아무렴 잘못된 곳에 내리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별장으로 보이는 주택가와 너른 들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식물들을 심어놓은 밭이 펼쳐졌다. 하늘은 한순간 희고 푸르게 빛나더니 다시 두터운 구름으로 채워졌다. 그림자와 햇빛이 번갈아가며 우리 두 사람을 감쌌고, 동생을 따라 한참을 걷던 길에 결국 다시 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꺼내 젖은 머리와 가방을 툭툭 털며 걷던 길의 끝에는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곧 건물의 끝에 세워진 십자가를 보고 그곳이 교회임을 알 수 있었다. 동생은 건축을 전공 중인 대학생이기도 하고, 평소 내게는 별 의미 없어 보이는 특별한 구조의 건물을 보러 가는 일을 즐겼다. 동생은 그곳이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작품이라고 했다.
제주에 있는 ‘방주교회’는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 2009년에 설계한 교회로 노아의 방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노아의 방주”란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로, 지상의 모든 생물들이 멸망에 이르기 전 신이 ‘노아’에게만 은밀하게 일러 준 구원책이었다. 노아가 커다란 배(일각에서는 ‘궤’라고도 부른다)인 ‘방주’를 완성해 소수의 생물만을 태우자마자 대홍수가 일어나고, 다시 평화가 찾아온 뒤 방주 안에서 몸을 피하고 있던 노아와 몇몇 생물들이 다시 세앙을 일궈나간다는 설화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교회의 외관은 커다란 배를 연상시키는 교회 건물과 그를 둘러싼 얕고 넓은 인공 수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낙엽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던 인공 수조에 가까이 다가서자 좀 전까지 맞았던 비에 머리카락과 옷이 푹 젖어 있는 내 모습이 투명하게 비춰졌다. 그 순간 잠시 비가 그쳤고, 잔잔하게 이는 물결 사이로 내 모습은 마치 물에 빠진 생쥐꼴 같았다. 나는 웃고 있지도, 울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신기한 얼굴로 물속에 비친 내 모습을 끊임없이 바라보았다. 교회 건물 지붕에 반짝이듯 비쳤던 은박 장식은 마치 신에게 방주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쉽게도 교회 내부를 들어가 볼 순 없었지만 옅게 안개가 낀 풍경을 뒤로하고 동생과 나는 교회를 크게 한 바퀴 비잉 돌았다. 부드럽게 자라나 있는 잔디를 소복하게 밟으며 걷는 동안 나는 조금씩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한층 차분해짐을 느꼈다. 동생이 건물의 이곳저곳을 찍으며 내게서 멀어져 있는 동안 나는 그제서야 다리에 힘이 풀리며 조금씩 울음이 터져 나왔다. 고요히 새의 울음소리만 들려오던 너른 들판 한가운데에서 나는 나의 못난 모습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더 솔직하게는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는지를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을 마주하는 일로부터 도망만 치고 있었으나 이제서야 더 이상 뒷걸음질 칠 수 없는 벼랑 끝에 서게 된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살아남아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선 벼랑 너머가 아닌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만 했다. 도피는 당장의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그 사람의 속마음을 투명하게 꺼내어 보고 싶다고 내내 생각해오고 있었으나 실은 나는 실망감으로 가득했던 그 자체의 내 모습을 투명하게 꺼내어 볼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한참을 고개를 숙인 채 울다 보니 다시금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동생과 나는 예약해 둔 ‘수풍석 박물관’ 투어를 앞두고 잠시 근처 카페에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너른 공간에 드문드문 앉아 있던 사람들 너머 투명한 통창에는 산방산과 몇 개의 섬을 본뜬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카페 내부에는 축음기나 오르간 같은 엔틱한 소품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동생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나는 한라봉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는 부족한 배터리를 충전했다. 동생은 챙겨 온 노트북을 열어 뭐가 바쁜지 작업을 하기 시작했고(허영같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한쪽 팔을 괸 채 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다 눈썹과 눈썹 사이로 쏟아지는 잠을 받아들였다. 30분 남짓한 시간이었을까. 잠시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꿈속에서 나는 바다 한가운데 발을 딛고 서 있었다. 뾰족하게 박혀 있던 커다란 바위는 발바닥 만 한 크기의 너비만큼 물 위로 우뚝 솟아 있었고, 천둥과 번개가 동반한 비에 파도는 금방이라도 나를 덮칠 것처럼 사납게 몰아쳤다. 나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만질수도 느낄 수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자꾸만 지평선 너머 어딘가를 눈으로 좇았다.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무엇이라도 해보겠다고 용을 썼다. 어금니 사이에 힘이 들어갔다. 꿈을 꿀 때마다 종종 있는 버릇이었다.
왜 아무런 말이 없었던 거냐고. 왜 연락을 하지 않았던 거냐고. 아니, 모든 자존심을 다 굽혀서 또 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라고 던져 보겠다고 나는 내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그가 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단지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내가 착각을 한 게 아니라, 네게 사정이 있었던 거라고 믿고 싶었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 거라고. 네가 나한테 솔직한 마음을 얘기만 해주면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들은 눈 녹듯 녹아내릴 거야. 그러니까 제발, 투명하고 솔직하게 말해줘. 나는 내 손에 먼지가 묻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무작정 그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 심장을 꺼내어 확인하고 싶었다. 나의 그런 마음들이 그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따윈 이미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린 후였다.
그러나 막상 그 사람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나는 아무런 질문도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후회했던 것 같다. 그날 그 자리에 나간 것에 대해서. 분명 친구들이 조언해 준 대로. 어차피 안 볼 사이라면 따져보기라도 하자는 담대한 마음 가짐은 그 사람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처참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겨우 2주 만에 마주했던 그 사람의 얼굴은 (또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좀 안돼 보였던 것 같다. 입술 양쪽이 찢어져 있는 모습이 좀 피곤해 보였는데, 얼굴이 영 못쓸 것 같아서 내가 그 자리에서 모퉁이로 불러내어 괴롭힌다면 정말 나쁠 것 같아서, 나는 멀어져 가는 그 사람을 잡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도 못하고 그저 푹푹 후회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다음날부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 자신을 원망했다. 후회를 정말 많이 했어. 그냥 끝을 볼 걸. 진탕을 볼 걸.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마자 내 눈앞에는 주황색의 커다란 모자가 놓여져 있었다. 동생은 열고 있던 노트북을 닫으며 내게 그 모자를 건넸다. 이게 뭔데? 내 물음에 동생은 내가 자는 사이 카페 한쪽에 마련되어 있던 굿즈샵에서 기념품으로 모자를 사 왔다고 했다. 자기가 쓰려고 했는데 막상 써보니 끔찍해서 환불도 할 수 없고 누나한테 버리는 거라고. ‘여행지에 왔는데 감귤 모자 정도는 써 줘야지!’ 나는 그날 아침 동생에게 무심코 던졌던 말을 떠올렸다. 짜식, 서프라이즈도 할 줄 알고 말이야. 다른 사람 마음은 몰라도 네 속마음 정도는 투명하게 보인다 뭐. 나는 동생이 준 모자를 쓴 채 잘 어울리냐고 물었고, 동생은 역시나 못난 오렌지 같다며 킬킬거리며 웃었다.
“이거 써. 누나 이런 거 좋아하잖아.”
“이게 뭔데.”
“모자잖아. 감귤장수모자.”
“이거 어떻게 쓰는 건데.”
“설마 지금…”
“사랑? 그게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아, 됐어. 이제 진짜 가야 해. 일어나 얼른.”
“헤헤.”
“사연 있는 여자처럼 제주도까지 와서 추하게 울고 있지 말고, 이거 쓰고 울어. 그럼 깜찍하기라도 하지.”
“…… 고마워.”
다음 목적지에 가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는 동생의 말에, 우리는 다시 방주교회를 지나쳐야만 했다. 되돌아가는 길에 나는 물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 속엔 더이 상 물에 빠진 생쥐 꼴의 나는 없었다. 화사한 모자를 쓴, 귀여운 감귤 인간만이 투명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