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있는 척 여행’을 떠나자!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면 느껴지는 묘한 기분이 있다.
그것은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도, 특별한 경험에서 오는 쾌감도 아닌, 일종의 위화감 비슷한 것이다.
해외여행을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비행기가 이륙해서 공항에 도착하고, 출구로 나가면 아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외국어로 된 가게 간판들부터 사람들의 머리 모양이나 옷 스타일, 파는 물건과 음식.. 어떤 나라든 거리의 모습 자체가 우리나라와는 생판 달라서, 마치 TV를 눈 앞에서 보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TV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스스로에게 위화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현지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데도, 여행자인 우리는 그 풍경 속에 절대 섞이지 않는 기분. 마치 외계인이 되어 지구를 두리번거리며 탐방하는 듯한 느낌이다.
여행을 관두고 싶을 정도로 이 기분이 내게 불쾌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과 여행자인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은 꽤나 다르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아무렇지 않게 걷는 길이 나에게는 인생에 한두 번 겨우 밟을 수 있는 길이라니. 즐거운 여행 중에도 현지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이 보는 풍경을 나는 영영 보지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부터 혼자 여행에 대한 로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도를 든 여행자가 아닌 슈퍼 전단지를 든 동네 주민처럼, 근린 공원을 산책하고, 외국어 메뉴가 없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서점에서 내일 읽을 책을 고르고... 그런 '살고 있는 척'하는 여행을 하며 조금이라도 그 나라의,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엿보고 싶었다. 물론 이런 여행을 꼭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상의 주체를 생각해보면 그건 언제나 오롯이 나 자신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정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이기 때문에, 살고 있는 척 여행에는 혼자인 편이 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선호하는 여행은 관광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어쩌면 조금 지루할 수 있는, 혹은 '실패'할 가능성이 큰 여행을 누군가에게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 여행은 누구나 즐겁고 알차게 다녀오고 싶은 법이니까.
2018년 봄,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았던 나는 일본에서 교환학생을 하는 중간중간 혼자 다른 지역으로 '살고 있는 척 여행'을 떠났다. 후쿠오카, 야마나시, 도쿄... 미리 말해두자면 절대 모든 순간이 만족스러웠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혼자 그 곳에서 살아볼 때에만 볼 수 있는 경치와, 느껴지는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 내가 가장 홀로였고, 부지런하고, 용감했던 그 때의 기억, 그것은 지금도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없는 지금, 내게만 비춰졌던 풍경과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도 비추면서,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함께 제 2의 여행을 떠나는 즐거운 여정을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