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수저 논란'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너도나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는 '금수저'는커녕 '동수저'도 어렵고 '흙수저'가 아닐까" 하는 자조 섞인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벌써 5-6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수저 논란'은 여전하고 심지어 '다이아몬드 수저'라는 말도 생겨났다.
'수저'로 대표되는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세습은 사실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고 오래된 사회 문제였다.
빈 손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10억 이상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출발선이 다르면 그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평등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돈이든, 기회이든, 경험이든 어떤 방면에서든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시작부터 평등하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차이가 극복 가능한 정도인지에 관한 것이다. 2021년 통계청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19세 이상 인구 중 노력한다 해도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올라갈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 사람이 60.6%로 조사됐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어. 만약 누가 실패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회의 불평등이 문제가 아니라 노력의 부족일 거야"
나는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성공에는 많은 노력이 필수조건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에 부딪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벽을 느끼고, 출발선이 다른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그 벽을 쉽게 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이 사라지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포기해 버리고 잘못된 길로 빠져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얼마 전 호주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호주라는 나라는 처음 가보는 것이었고 가기 전에도 호주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사실 여행을 할 때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 문화보다는 맛집, 쇼핑에 더 관심이 많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시드니의 맛집, 관광명소,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열심히 찾은 나는 도착하지 마자 찾아둔 식당으로 가기 바빴다.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 첫 느낌은 '날씨가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하늘은 구름도 없이 정말 맑았고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우리나라에서 1년에 2-3번 정도 느꼈을 만한 선선한 초가을 날씨였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인지 기분도 좋았고 마음이 여유로웠다.
평소에 땀이 많아서 날씨가 덥거나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가면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걱정이 앞섰는데 시드니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주일 간 호주에 있으면서 단 하루도 날씨가 안 좋은 적이 없었다.
내가 날씨 요정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현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같은 날씨가 1년 중 꽤 오랜 기간 유지된다고 하였다. 낮에 더울 때는 24-25도 정도이고 밤에 선선할 때는 17-18도 정도이니 얼마나 쾌적한가.
사람들이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이유가 날씨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길을 걸을 때,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아주 여유로워 보였다. 우리나라가 특히 '빨리빨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호주는 특히 더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였다.
지하철을 탈 때도 뛰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버스를 탈 때도 모든 승객이 다 타고 앉기 전에 출발하는 법을 못 봤다.(심지어 사람들은 버스를 내릴 때 기사님에게 큰 소리로 Thank you 를 외치고 내렸다!!!)
식당을 가도 음식이 천천히 나오고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었으며 심지어 밥도 떠들면서 천천히 먹었다.
가이드와 함께 일일투어를 하는 날이 있었다.
시내와 거리가 조금 있는 블루마운틴을 가는 투어였는데 차로 이동시간이 편도 2시간 정도 되어 가는 길에 가이드님이 호주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호주는 자원이 정말 많은 나리이다. 철광석, 석유, 가스, 금, 석탄 종류도 많은 데다가 그 양도 적지 않아서 전 세계로 수출하는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다. 광물자원뿐만 아니라 땅이 넓어서 육류자원도 많다고 한다. 가이드님 말로는 호주 인구 수인 2600만 명 정도와 비슷한 숫자의 소를 키우고 있다고 할 정도로 소가 많다고 한다.(그래서 호주 사람들은 거의 소고기만 먹고 가격도 싸다!)
인구밀도도 얼마나 적었는지 크기는 우리나라의 76배가 넘는데 인구수는 우리나라의 절반 밖에 안된다.
호주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땅도 넓고 자원도 풍부한 것이다.
다시 말해 뭔가를 개발하거나 개척할 필요가 별로 없다.
그냥 땅에 있는 자원과 그 위에서 자라는 동물들이 호주의 자산이다.
태어나 보니 금수저라는 말이 이런 것이 아닐까.
어쩌면 금수저도 아니고 호주 정도면 다이아몬드 수저가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와는 정말 다르다.
부러웠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있어서 해외 사례들과 비교해 보는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는 OECD 평균과 비교해서 평균보다 적으면 늘리고 많으면 줄인다.
쉽긴 하다. 평균이 제일 적당해 보이니까. 그리고 평균이면 중간은 간다는 것 아닌가.
호주에 사는 사람들을 보니 항상 여유롭고 행복해 보여 우리나라는 왜 그러지 못할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우리나라도 일 열심히 안 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여유롭게 살면서 여가활동을 충분히 즐기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 같다. 호주와 우리나라는 출발선이 다르다. 남이 잘 산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 한다고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각자가 잘하는 것이 있듯이 국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몇십 년 동안 쌓아온 삶의 방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고 부러워하며 똑같이 따라 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출발선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때까지의 노력으로 이 정도의 성과를 낸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가진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나아가는 방향이다. 출발선은 다르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빨리 도착하는 나라도 있고 늦게 도착하는 나라도 있다.
그런데 중간에 지름길로 빨리 가려다가 다른 길로 빠져버리면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가는 모습을 보면 영원히 못 갈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