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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잎 Oct 08. 2024

(인터뷰편지)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궁금한 당신에게

섬유브랜드 호티타카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일의 방식을 압니다. 혼자 일 하는 것이 잘 맞고, 잘 할 수 있다면 '나만의 일'을 직접 만들기도 합니다. 나만의 일을 만들기 위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을 기릅니다. 내가 만든 책을 읽도록, 음식을 먹도록, 물건을 사도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거든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강제로 움직여지지 않아요. 심지어 모든 물건은 포화 상태. 물건에 목말라 있는 시대는 지났고 소비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심드렁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여야할까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에는 항상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의 의미를 찾고, 내가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있다면 사람의 마음은 움직입니다. 오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물건을 만드는 섬유브랜드 ‘호티타카’의 작업자 호정의 집에 놀러 갔어요. 인형에 역할을 부여하고 작업물에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자신의 얕음을 고민하는 호정의 삶을 따라가봅시다.



www.hotitaka.com

@hotitaka

유호정 : 호티타카로 활동하며 섬유와 재봉틀로 작업하는 사람. 인형을 만들어 역할을 주기도 하고 판매도 하고 있다. 요즘은 역할을 가진 인형들을 토템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나만의 일'은 작은 세계를 깨트려야 시작된다. 


호정은 3만 명이 사는 작은 도시, 경북 왜관에서 태어났어요. 혼자 틀어박혀서 잠도 안 자고 몰두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영화, 자수, 방 꾸미기, 미니홈피 꾸미기 등 한 가지에 일에 흥미가 생기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죠. 그중에서 무언가의 메커니즘을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물건 안쪽의 메커니즘이 궁금해서 볼펜이나, 글루건, 마우스 같은 주변의 사물을 직접 뜯어봤죠. 뜯어보고 다시 붙여보는 기질 때문이었을까요. 학교행사에 필요한 노래를 편집하는 일을 맡아서 했어요. 노래를 반토막 내고, 1절 다음 바로 2절 후렴이 오도록 갖다 붙이고. 호정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사운드로 이어집니다.


“ 휴대폰에 주변의 소리를 녹음하러 다녔어요. 녹음한 걸 집에 와서 다시 편집하곤 했죠.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사운드와 관련된 커리큘럼이 있는 학과, 세 곳에만 원서를 넣었죠. 지금 생각하면 참 겁 없는 선택이었네요 ”


 작은 도시 왜관에서 대학교를 선택할 때 대체로 가까운 대구를 선택해요. 하지만 다른 지역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과 사운드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얽혀 예술대학교에 원서를 냈어요. 사운드 커리큘럼이 있는 단 세 곳에만요. 성적에 맞춰 여러 대학교에 상향, 하향 지원을 하는 입시 전략에 비해 위험한 선택이죠. 세 곳 모두 떨어지면 다른 친구들이 앞을 향해 나아갈 때 나 혼자 멈춰야해요. 두려운 일입니다. 


“ 다행이도 계원예술대(*이하 예대)에 붙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잘한 선택이에요. 작은 도시에서 공부만 하다가, 큰 도시의 예대에서 지금껏 겪은 적 없는, 전혀 다른 사회와 언어를 배울 수 있었거든요 ”


 입학한 학과는 표현할 수 있는 매체에 제한이 없었어요.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거나, 퍼포먼스와 음악을 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죠. 그러다 보니 태어나서 접해본 적 없는 전혀 다른 언어와 몸짓, 가치관에 작은 도시에서 온 스무 살의 호정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해할 수 없는 낯선 것들에 둘러싸였어요.


“정말 이게 뭐지?’ 이 생각밖에 안들었어요. 제가 겪어본 적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되니깐 처음에는 거부감이 강했어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어요. ”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나와 다른 것에 거부감부터 가졌던 호정의 작은 세계가 깨졌어요.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는 그릇이 커지면서 호정의 세계도 넓어졌어요.




삶은 가지치듯 뻗어가는 것


넓어진 세계에는 우연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우연한 만남은 우리를 예상하지 못한 어디론가 나아가게 하죠. 메커니즘을 보는 것을 좋아했던, 사운드를 배우고 싶어 했던 호정은 현재 섬유를 다루는 일을 해요. 서로 연관 없는 구슬 같지만, 하나의 실에 잘 꿰어져 ‘지금의 호정’이라는 보배가 되었어요. 섬유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들은 ‘수초이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 워크숍’입니다.


“예대를 졸업하고 기술적인 툴을 배우는 것 자체는 이제 소용없을 것 같았어요. 툴을 잘 만졌다는 뜻이 아니라, 표현하고 싶은 게 있어야 툴을 적용할 텐데 저는 무엇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어요. 내 안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을 꺼내는 능력을 가지고 싶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스스로 묻는 것부터 시작하는 일러스트레이션 워크숍을 신청했습니다. 어느 날은 과제로 조명과 그림자를 그렸어요. 선생님께서 ‘조명과 그림자를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해주셨죠. 조명에 오브제를 걸어 그렸더니 다양한 그림자의 형태가 만들어졌어요.(그림자친구들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부터 가지치기가 시작되었다고 해요. 그림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태로 가지를 쳐봐야겠다고, 직관적으로 느껴졌다고 해요. 그림자 친구들의 실체화를 위해 재봉틀을 배워보기로 했죠.


“아주 처음에는 그림자 친구들을 그렸었는데 그때부터 제 가지치기가 시작된 것 같아요. 저의 작업과 삶의 흐름이 늘 가지치기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인드맵을 그릴 때 주제의 말풍선에 가지를 쳐서 다음으로 넘어가잖아요. 그 가지치기요.”


 밤새 재봉틀을 돌리고 섬유들을 만지다 보니 하나였던 재봉틀이 한 개가 더 생기고, 또 한 개가 생기더니 지금의 호티타카까지 왔다고 해요. ‘창업해야겠다!’고 따로 결심한 적은 없고 작업물을 판매까지 연결하다 보니 브랜드라고 불릴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전에 살던 작은 오피스텔에 커다란 접이식 탁자를 장만하고, 반은 컴퓨터 반은 재봉틀을 놓던 순간이 기억나요. 자리가 좁아서 바닥에 원단을 두고 쪼그려 앉아 재단했는데도 지치지 않고 밤새 재봉틀을 돌렸어요. 문래에서 쉐어 작업실을 얻고, 그 다음으로는 동인천의 작업실로 옮기며 집에 있던 짐이 한가득 빠졌었는데 그때 ‘이렇게 작은 집에서 도대체 어떻게 일을 했던 거야’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나네요.”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면 우선 ‘어린 시절의 나’에서부터 가지를 쳐보는 건 어떨까요.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것을 좋아했고, 무엇을 재미있어했는지. 메커니즘을 보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학교행사의 노래를 편집하는 것을 재미있었던 내가, 어떻게 재봉틀을 다루는 것까지 연결되었는지 호정의 삶을 따라가 보면서요.


“저는 구조나 골조가 노출된 것을 좋아하고 결론을 도출 내기까지의 과정을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것들은 설득이라는 단어의 시각화에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위에 대한 설득이 되니까요. 재봉법에 창구멍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이 있어요. 원단을 이어 박거나 덧대거나, 겹쳐 박고 창구멍을 통해 뒤집으면 실로 연결된 구조들은 안으로 숨고, 아무것도 모르는 겉면이 나타나요. 저는 이 원리가 마음에 들어요.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는 과정같아요.”




수많은 물건속에서 사람의 시선을 끄는 

오리지널(original)함


호티타카의 작업물은 귀엽기만 하지 않습니다. 작업물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마음이 끌렸던 걸까요.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나만의 의미를 찾을 때 감동하고 행복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죠. 호티타카의 작업물에는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침대 머리맡에는 늘 인형이 잔뜩 놓여있었다. 수납장과 책상은 물론, 심지어는 가장 마음이 잘 맞는다고 느껴지는 인형을 가방에 담아 피아노 학원이건 소풍이건 가리는 곳 없이 데리고 다녔다. 자신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도 없이 이리저리 굴리는 대로 굴려지는 솜뭉치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목욕물에 함께 몸을 담그고, 줄곧 이야기를 나누고, 듣지 못할 대답을 기대하기도 했다. 때로는 친구였던 사람에게 받은 인형을 보고 있노라면 애꿎은 기억이 떠올라 등을 돌려놓기도 했지만, 일방적으로 바라본 까만 눈에서 알 수 없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 역할이 주어지고 살아가는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머리맡에 놓인 너희들에게 그래도 태어났으니, 최소한 내 곁에 존재하는 이유만이라도 만들어주어야 할 것 같다.  <토템이야기 중 일부> ” 호티타카 홈페이지 발췌



내 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는 인형들을 만들어 내는 것. 그럼으로써 인형이 토템(totem)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 호티타카를 운영하는 호정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예를 들면요. 혼자 생각하다보면, 한 곳으로 매몰될 때가 있어요. 그때가 되면 인형들이 제 역할을 해내는 순간이에요. 곁에 있는 인형을 보며 인형이 주는 메시지를 떠올리고, 매몰되던 가치관을 한번 환기하는 거예요. 인형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는 직언을 들어도 기분이 심하게 상하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은 물건에 담긴 이야기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으면 오리지널(Original)하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물건이 싸게 나와도, 혹은 더 좋은 물건이 나와도, 나에게 오리지널한 것이 가장 특별한 물건이 됩니다. 비슷하고 수많은 물건이 쏟아져도 대체되지 않죠. 나만의 일을 만드는 것도 비슷합니다. 나만의 일을 만들겠다는 것은 그 누구와도 대체되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사람에게도, AI와 같은 기술에도. 자신이 가진 이야기를 일속에 녹여내 오리지널함을 보여주는 것. 오리지널하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야 합니다. 그래서 호정은 일을 하면 할수록 ‘얕아짐’에 대해 고민하고 경계해요.


“이야기하려고 할수록 얕아짐이 느껴질 때 힘들어요. 그럴 때는 내가 봐도 내 이야기가 재미없더라고요. 그래서 더 필요한 게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를 때 힘들죠. 꺼내든 이야기에 따라오는 호응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끊기지 않기를 바라고 얕아지지 않기를 바라요.”


 더 멋지게, 더 화려하게 꾸미면 순간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깁니다. 눈에 쉽게 띄니깐요. 하지만 비슷한게 나타나면 금방 흥미가 식고 더 멋지고 화려한 것이 생기면 사람은 금세 눈을 돌립니다. 오리지널없는 겉치장은 일을 지속할 힘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내 일이 오리지널하게 지속할 수 있도록 얕아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깊숙한 곳에 있는 나만의 것을 꺼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나를 가늠할 수 있는 친밀감


호정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습니다.


“준비하고 있고, 앞으로 준비할 것들을 재미있게 꺼내고 싶어요. 과정을 풀어내거나 흥미로운 설득을 이야기하는 일이 어려운 것을 알아요. 그래서 지금 무엇이 더 필요한 것 같은데 아직 찾지 못했거든요. 찾아내는 게 우선의 목표입니다.야기하려고 할수록 얕아짐이 느껴질 때 힘들어요. 그럴 때는 내가 봐도 내 이야기가 재미없더라고요. 그래서 더 필요한 게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를 때 힘들죠. 꺼내든 이야기에 따라오는 호응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끊기지 않기를 바라고 얕아지지 않기를 바라요.”


 나만의 일을 하다 보면 뭐가 더 필요한지 잘 모를 때가 있어 힘들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자신에 대한 가지치기가 멈추지 않는다면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는 호정. 자신에 대해 가지치는 방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선천적으로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고 봐요. 집요함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 우표를 수집하더라도 우표면 다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기준에 해당하는 우표만 수집하는 사람이에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수월하게 해내죠. 반대로 자신을 표현하기가 어렵다면 나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친밀감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옷을 보고 친구에게 ‘이거 네 옷장에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서로를 잘 아는 사이 같은 거 있잖아요. 나를 떠올렸을 때, ‘이거 나한테 잘 어울리겠다.’, ‘이거 잘할 수 있겠다.’, ‘나는 얼마큼 해낼 수 있겠다.’ 이렇게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나와 친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나를 가늠할 수 있는 친밀감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찾아낸 데이터들을 좋음과 싫음 폴더에 분류해서 기억을 저장합니다. 좀 더 세부적인 폴더에는 점점 데이터가 쌓이면 넣을 수 있죠. 이렇게 머릿 속과 마음속을 정리하면 '나'를 정리하는 일도 편해질 수 있다는 호정의 답변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관찰한 적 있나요. 친구와 애인, 부모님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생각해 본 적은 많지만, 자신을 대상으로 생각해본 일은 잘 없습니다. 작가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의 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다시 태어났다. 글을 쓰기 전에는 거울 놀이밖에 없었다. 한데 최초의 소설을 쓰자마자 나는 한 어린애가 거울의 궁전 안으로 들어선 것을 알았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어른들의 세계에서 벗어났다. 나는 오직 글쓰기를 위해서만 존재했으며, ‘나’라는 말은 ‘글을 쓰는 나’를 의미할 따름이었다. 그런들 어떠랴, 나는 기쁨을 알았다. 공중의 노리개와 같던 어린애가 이제 자기 자신과 사적인 데이트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165p, 말, 장폴사르트르, 민음사)"


사르트르는 어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을 거짓으로 꾸며낸 어릿광대였다고 자서전 <말>에서 어린 시절을 회고합니다. 어른들의 눈에 비쳐진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봤기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 속에 살았어요. 진짜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 채요. 그러나 글쓰기를 통해 자신과 ‘사적인 데이트’를 즐기게 되면서 어른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나’로써 존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호정의 이야기를 읽고 나 자신과 ‘사적인 데이트’를 해보며 자신을 관찰해봅시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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