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애를 가진 게 야쿠르트를 많이 먹어서 그랬나 싶었어."
어머니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 TV를 보는데, 어머니가 또 잔소리를 시작했다. 빨리 결혼해서 아이부터 낳아야 한다는 그런 뻔한 이야기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으면 자신이 다 맡아서 키워줄 것이고, 아이 분윳값이랑 기저귓값도 어머니가 다 부담할 거고, 나한테 따로 매달 생활비도 보태주겠다는(나로서는 거부할 수도 없고, 거부할 필요도 없는) 제안을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나를 임신했을 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심코 듣다가 엄마 몰래 아이폰 음성메모 어플로 녹음을 해봤다. 아래는 1948년 10월 출생의 한 한국 여성이 1978년 대전 괴정동 일대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로 일한 썰이다.
너 가졌을 때, 야쿠르트 배달을 하고 있었어. 한 7개월 정도 했나. 자전거를 타고 배달했는 데, 의사가 위험하다고 해서 그만두었어. 나는 내가 애를 가진 게 야쿠르트를 많이 먹어서 그랬나 싶었어. 그때는 지금처럼 장비가 안 좋아서 여름에는 얼음을 넣고 거기에 야쿠르트를 넣고 다니며 배달을 했어. 그러다보니 안에서 종종 야쿠르트 뚜껑이 터지는 거야. 그걸 센터로 가져가면 교환을 해주는데, 아예 많이 흘린 건 그냥 그 자리에서 먹곤 했어. 아줌마들끼리도 마시곤 했지. 그래서 정말 많이 마셨어.
78년 초 인가부터 했어. 아니다, 1977년 12월 1일이네. 내가 날짜도 기억해. 그때 누나가 7살인가, 6살 때야. 나는 놀지를 않았어. 아빠 벌이가 시원찮으니까, 일해서 돈을 벌려고 했어. 그때 한국 야쿠르트 배달원 모집한다고 해서 센터에 찾아갔어. 아무나 못했어. 나이도 30대여야 하고, 학력도 고졸이상이어야 했어. 야쿠르트 배달하는 아줌마들이 다 얼굴에 화장하고, 유니폼 입고, 하얀색 장갑 끼고 다녔는데 그걸 보니까 그렇게 하고 싶은 거야. 그때 내가 30세인가 그랬어.
센터 가서 시험 보고, 교육도 받았는데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그래서 대기를 하고 있는데, 거기서 하는 말이 빨리 일을 하고 싶으면 자전거를 배우래. 수레 끌고 배달하는 건, 주변만 다니는데 자전거로 배달하는 사람은 더 멀리 다니고 그랬거든. 그런데 자전거 탈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야.
엄마가 처녀 때는 자전거를 좀 탔었어. 그런데 다시 타려고 하니까 못 타겠더라고. 자전거도 없었어. 자전거를 배워도 자전거가 없으면 배달을 할 수 없었어. 센터에서 따로 자전거를 주는 게 아니고, 자기 자전거 가지고 배달해야 했으니까. 아빠가 그때 순경하다가 그만둔 후였는데, 아빠한테 자전거를 하나 사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아빠가 퇴직금에서 3만 5천원 빼서 자전거를 샀어. 대전 유성에 자전거포하는 친구가 있다고 거기서 자전거를 사서 집까지 타고 왔지. 밤 12시마다 나가서 자전거를 연습했어. 아빠가 뒤에서 잡아주고 그러는데 계속 넘어지는 거야. 3일쯤 되니까 후회가 되더라고. 이거 괜히 하자고 했나 싶어서… 그래도 계속 연습했는데 일주일 정도 하니까 할 만했어. 그래서 바로 센터에 자전거 끌고 갔어.
얼마 후에 센터에서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어. 우리 살던 괴정동에 자리가 난 거야. 12월 1일부터 배달을 하래. 배달 전에 먼저 일하던 사람한테 인수인계를 받았어. 어느 집에 누가 살고, 그 집에는 야쿠르트를 몇 개 먹는지 그걸 다 확인하는 건데 그 사람이 딱 하루만 해주고 다른 일을 하러 갔어.
다음날 처음 배달을 나갔는데, 그날 눈이 정말 많이 왔어. 아빠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나 몰라. 자전거도 배운지 얼마 안 됐는데, 첫날부터 눈이 많이 왔으니까. 그리고 나도 첫날이라 배달하는 집이랑, 야쿠르트 개수랑 일일이 맞춰가며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지. 그때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오전에만 일하고 오후에는 집에 돌아왔는데, 나는 첫날이라 오후 늦게까지 배달한 거야. 아빠가 너무 걱정을 해서 센터에 막 전화하고 난리가 났었어. 그리고 다음 날 또 배달을 나갔어. 야쿠르트 배달은 쉬는 날이 없잖아. 내일 쉴 거면 오늘 두 배로 배달해야 하는 거야.
전날 눈이 많이 와서 땅이 너무 질었어. 자전거 바퀴에 흙이 막 껴서 안 나가는 거야. 그래서 그걸 또 나무꼬챙이로 흙을 빼내가면서 배달을 했지. 그러다가 어느 큰 집에 배달을 갔어. 그 집은 야쿠르트를 3개인가 4개 먹었어. 부잣집이라. 자전거를 길옆에 세워놓고, 집에 들어가서 야쿠르트를 주고 나왔는데, 나와보니까 자전거가 쓰러진거야. 바구니에 있던 야쿠르트도 하수구로 떨어졌더라고. 눈이 녹은 물이 흘러 다니는데 거기에 쓸려간 거야.
그래서 내가 털신발 신은 채로 물에 들어가서 야쿠르트를 건졌어. 그런데 웃옷 주머니에 돈 받은 것도 막 떨어지는 거야. 그때 야쿠르트가 하나에 50원 할 때였어. 50원 동전들이 물에 다 빠져서 내가 그걸 막 건졌어. 내가 너무 놀라서 방금 배달한 집에 들어가서 사정을 말했어. 그 집에 총각 한 명이 혼자 있었는데 사람이 착하지, 나와서 나를 도와줬어. 그리고는 집에 난로 있으니까 몸을 좀 녹이고 가래. 그러고 있는데 야쿠르트 쏟은 걸 어쩌나 싶은 거야. 이걸 배달할 수도 없고 다 버려야 하는 거니까. 내가 그때 그걸 다 물어주고 배달을 그만두려고 했어.
야쿠르트를 가지고 센터에 가서 센터장한테 사정말하고 그만두겠다고 했어. 그러니까 센터장이 위로를 해주더라고. 누구 반장도 처음 자전거 배웠을 때 그랬고, 또 다른 아무개도 다 그랬다고. 야쿠르트를 가방에 다시 채워주면서 배달 못한 곳에 마저 배달하고 오래. 나는 덜덜 떨면서 안 하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나를 달래니까 또 배달을 하러 갔어. 그렇게 하다보니까 한 7개월인가 한 거야.
일이 괜찮았어. 오전에 몇 시간 일하면 오후에는 집에 오고. 월급도 한 달에 많이 벌면 10만원 정도인가 했어. 배달하는데 많으면 많을수록 돈을 버는 거야. 많이 버는 사람은 11만원, 10만원 벌었어. 엄마가 일한 데는 시골이라, 야쿠르트 먹는 사람이 아주 많지 않아서 9만원에서 9만 5천원 정도 벌었어. 월급 나온 날에는 자전거에 고기 싣고 집에 가고 그랬어. 그게 그렇게 좋았어. 그러다가 78년 여름인가, 집에 가는데 용두동 시장 과일가게에서 ‘피자두’를 팔더라고. 갑자기 그게 그렇게 먹고 싶은 거야. 가게에서 사서 바로 그 앞에서 먹었어. 입덧하려고 그랬던 거지. 지금도 자두 보면 너때 먹던 거 생각나. 병원에 가서 임신 확인하고, 며칠 후에 일을 그만두었어.
너 가졌을때, 아빠가 택시기사를 잠깐 했는데, 친척 소개로 서울에 한국전기통신공사에 취직이 됐어. 그래서 너 뱃속에 있을 때, 서울 신당동으로 온 거야. 그때 아빠가 일하다가 길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를 보면 엄마가 생각났었대. (웃음) 그래서 한동안 그때마다 아쿠르트 아줌마한테 가서 “우리 마누라도 이거 했었다”고 하면서 하나씩 사먹고 그랬대. (웃음) 아휴… 진짜 생각해보니 추억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