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지독하게 습하고 더웠다. 6월 초부터 벌써 더워서 잠을 설쳤던 것같다. 늘 더위가 싫긴 했지만 잘 넘어갈 줄 알았는데, 너무 더워서 정신을 못차렸던 것같다. 정신을 부여잡고 싶었는데 늘 정신이 맑지만은 않았던 것같다. 4월에 여행에서 돌아와서 5월은 잘 지내다가 6월부터 정상적인 생활이 죄금씩 어려워졌던 것같다. (9월의 마지막 주말, 낮에는 아직 덥지만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7월에 더위와 맞서 싸우겠다며 호치민에 다녀왔다가 잠시 충전을 한 뒤 8월에 다시 코로나와 함께 완전히 체력이 고꾸라졌던 것같다. 얼굴살도 쏙 빠져서 내가 봐도 반쪽이 됐다. 뒤늦게 한의원을 찾았지만 뚜렷한 방법은 못찾았다.
3개월간 더위 앞에서 몸이 잔뜩 긴장상태에 있었다. 몸이 힘들다 보니 정신도 완전히 번아웃 상태였다. 재택근무도 대충대충 했다. 머리가 과열된 상태라서 집중이 잘 안됐다.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책망하다가 더 깊이 번아웃이 왔던 것같다. 완전한 몰입을 경험하지 못하니 마음둘 데가 없어 더 무기력해졌던 것같다. 앞으로도 계속 더운 여름이 반복될텐데 이깟 더위를 버티지 못하는 게 한편으로 걱정되기도 하고 몰아세웠던 것도 같다. 봄과 여름 사이, 그리고 여름에 있었던 사건들을 좀 나열해 봐야겠다.
일에 대해서
4월 승진발표. 그리고 같이 일하던 보스의 이직. 보스가 바뀌면서 너무 일을 만만하게 봤다. 그래서 지금 된통당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더웠을때는 아무도 쪼지도 않았는데 모든 게 지쳐서 그냥 쉬고만 싶었다. 휴직을 선언하고 싶을 만큼 체력이 바닥나니 마음에 에너지가 없었다. 성실함이 무기였던 나인데. 성실하지 못했다. 일을 우습게 봤던 것도 같다. 내게 월급을 주는 소중한 회사인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하는데. 물론 나를 너무나 힘들게 하는 인간들도 있지만 큰 맥락에서 내가 바꾼 내 소중한 직업. 그리고 얻게된 승진. 다 너무 소중한데 내가 소중함을 모르고 내 일을 경시하고 있었던 것같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손에 잡히는 일을 하면서 회사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이 내게 큰 자긍심, 자신감을 주었던 것같다. 내가 이 사회에서 어떤 것을 직접 만들고 그게 실제 돈으로 창출되는 것을 목격한 경험. 이거 정말 너무 짜릿했던 것같다.
허무
사실 이 허무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더위도 정말 크게 한몫했지만... 돌아보니 승진이후 크게 현타를 맞았던 것같다. 더이상 잔고압박을 받으며 카페를 가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지만 2가지가 불안했다.
먼저 나 이렇게 계속 직장인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었다. 더이상의 승진을 원하지 않은 나.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의문. 이 커리어를 어떻게 이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체력도 점점 나빠지는 게 느껴지면서 다른 도전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불쏙 튀어올랐다. 늘 나는 회사 밖 일을 꿈꿨었다. 다른 나라 사람에게 한식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같다. 그리고 이렇게 몇년동안 크게 월급이 올랐어도 서울에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살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노동해도 그 댓가가 적다는 생각을 했던 것같다. 사업을 할 자신도 없으면서.
마지막으로 열심히 몰입한 후 노트북을 끄고 돌아서면 뇌가 계속 부스팅된 상태가 지속되었고 내 삶에 집중해야할게 필요했다. 그건 요가로도 어떤 취미활동으로도 채워지지가 않았다. 회사 다닐 때는 그냥 사람들이랑 어울려 술을 마셨던 것같다. 나를 충만하게 할게 필요했다. 내 에너지를 다 쏟아버려도 아쉽지 않은 것이 절실했다. 그리고 흔적이 남는것. 체력 저하 이슈와 맞물리면서 아이가 정말 낳고 싶어졌다. (그게 혼자, 말처럼 쉽나) 그래서 아이대신 다른 일에 어떤 것에 집중하고 싶었는데 사실 그럴 에너지가 없었다. 여기서 심한 방황이 시작됐다. 내가 신나게 뛰어 놀면서 충전할 운동장이 정말 필요했다.
사주
몸과 마음이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나는 사주 명리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는지, 태초의 본성을 활용해서 신나게 살고 싶었다. 스스로도 다루기 어려운 뜨거운 성향이었다. 가장 뜨거운 사람.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 가끔 이 폭발적 에너지가 내 스스로를 덮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발산할 곳이 필요한 나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대로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기 힘들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잔뜩 달궈진 양은냄비에 어떤 것을 끓여야 할까. 누군가의 시선을 한번에 잡아 끄는 직업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어떤 것을 잘 판다. 설득을 잘한다. 내 생각에 나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법은 쇼호스트다. 무대 위에서 혹은 화면 안에서 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고 어떤 것을 설득하는 사람. 내 인생에 많은 사람이 없이도 지속할 수 있는 직업. 조금은 외롭지만 활활 태워야 하는 직업.
오랜 재택근무로 말주변이 없어진 것같다. 사람들이랑 교감하는 지면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그게 회사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사람들 속에서 뜨겁게 일하고 싶은데 그게 회사일까. 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찾아왓었는데. 현재 그러한 배움/도움이 필요한 단계인가. 그냥 해봐야하는 나이가 아닐까. 40살이 되어 그대로의 나를 견딜 수 있을까. 실패를 해도 먼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외국에 나가서 떡볶이라도 김밥이라도 당장 팔아보고 싶다. 그럼 내가 외국에 가야하는데. 당장 갈일도 없는데 어떻게 외국에서 한식사업을 당장 할 수 있을까.
그런마음으로 일단 요리릴스를 시작했다. 타깃은 외국인. 한국요리에 관심있는 외국인. 더 한국적인 요소를 가진 요리에 포커싱해야지. 너무 일에 매몰되어 내 요리영상들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지. 나를 믿고 일에서 완전히 로그오프해야지. 그리고 다른 세계로 입장하는걸 두려워 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일단 내가 몰입할 수 있는 그라운드에서는 최선을 다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계속 다른 데에 어떻게 쓸지 고민하도록 한다. 내 그라운드가 더이상 날 반기지 않는다면 그 때 그걸 위기가 아닌 기회로 생각하겠다. 하지만 내 그라운드가 나를 여전히 반겨준다면 일단 열심히 하면서 소프트랜딩하는 법을 찾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