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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작가의 캐비넷 May 03. 2021

캠퍼스 로망, 어디로 간 걸까

억눌렸던 스무 살의 4인 1실 기숙사 적응기

나는 올해 처음으로 내 명의로 된 집을 샀다. 소위 말하는 '영끌족'이다. '영끌족'이 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숙고 끝에 집을 사야겠다 결정하고 나서 많은 곳을 알아보다가 지금의 집을 알게 되어 매수하기에 이르렀다. 내 명의로 된 집을 증명해주는 등기권리증을 보며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동시에 지금까지 내가 거주해온 공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등기가 나오기까지 스무 살부터 13년간 8번의 이사를 거쳐야만 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그 8번의 이사를 거치며 지내온 공간들에는 2년 이상 머무른 곳이 없다. 기구한 운명이랄까. 그럼에도 그 8곳의 공간들은 내 역사를 품고 있고 추억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 집의 등기권리증에는 그 공간들 역시 지분을 갖고 있기에, 내가 거쳐온 '나의 방'에 대한 헌정글을 쓰고자 한다. 

제목은 거창하게 '나의 이사 연대기'라 칭했다.


Chapter. 1 - 대학교 기숙사

○ 체류기간 : 2008년 3월 ~ 2009년 1월

○ 위치 : 교내 최북단 언덕 초입


수능을 마치고 합격통지서를 받아 든 나는 대학생활의 로망에 부풀어 있었다. 고등학교 내내 짧게 친 머리를 방생이라도 하듯 목을 덮을 정도로 머리를 기르고, 신입생임을 어필하기 위해 새 옷도 왕창 샀다. 대학생활의 로망을 이래저래 상상하며 개강만을 기다렸다. 단 한 가지 걱정은 어디서 지낼 것인가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학교는 신입생은 1년 간 기숙사에 반 의무적으로 묵게 해 주었다. 기숙사도 제공되다니 꿈만 같은 대학생활이 펼쳐지겠구나. 기대에 부풀었다.


부푼 마음은 개강 전 주말에 기숙사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족히 20년은 더 돼 보이는 건물 외관은 신입생보다 졸업생 선배들을 위한 모임에 적합해 보였다. 학생회관과 연결된 야트막한 계단을 따라 입구에 들어서 1층 로비에서 배정된 방의 키를 받았다. 건물은 마치 각진 도넛을 층층이 쌓아놓은 듯 복도가 이어져 있었고 그 복도에 방들이 배치돼 있었다. 나는 4층으로 방을 배정받았는데, 빙빙 돌면서 한참을 헤매다 내 방을 찾았다. 조심스레 키를 꽂고 문을 열었으나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퀴퀴한 나무 냄새가 풍겼다. 오래된 원목(으로 추정되는) 2층 침대 두 개가 양옆으로 도열해 있었고, 각 침대 옆엔 옷장이 두 개씩 붙어있다. 침대 뒤로는 무식하게 큰 책상 두 개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바닥과 가구에는 오랫동안 비어있었는지 먼지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나의 캠퍼스 라이프가 시작되겠구나. 

낮은 탄식이 속에서 흘러나왔다. 


방 배정을 선배 두 명과 동기 한 명 이렇게 넷이 받은 거로 알고 있어 눈치껏 2층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릴 때는 2층 침대에서 자는 게 로망이었는데 그 마음이 이 방에 오니 뚝 떨어져 버렸다. 침대에 이어진 가냘파 보이는 계단을 집고 올라가니 계단은 연신 신음을 토해냈다. 삐그덕 삐그덕. 자칫 잘못하다간 실족사를 당하겠다 싶었다. 침대에 깔려있는 매트리스를 팡팡 두드리니 유적지처럼 먼지가 흩날린다. 침대가 붙어있는 벽에는 곳곳에 거미줄이 쳐있기도 했다. 정녕 내가 알고 있는 '기숙사'의 시설이 이게 맞나 혼란이 왔다. 같이 방을 보러 온 엄마도 적잖이 당황하셨다. 


고풍스러운 내 방과 첫인사를 마치고 나니 룸메이트들이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들과 함께할까. 구성은 02학번 경상대 졸업반 선배, 07학번 자연과학대 선배, 08학번 같은 과 동기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1년 간 그들과 많은 추억을 쌓진 못했다. 02학번 선배는 스무 살인 내게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스물여섯에도 학교를 다니는구나. 하며 일종의 경외감과 거리감에 몇 번 말도 붙이지 못했다. (필자는 27살에 졸업했다.) 검은색 뿔테 안경에 날렵한 체구였던 선배는 축구를 잘해 보이는 얼굴상이었고, 실제로도 축구를 잘했다고 얘기했다. 나는 그 선배를 떠올리면 방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자소서를 쓰는 모습이 기억난다. 다른 세 명이 잠들기 위해 불을 껐을 때도 02학번 선배의 노트북은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기 일쑤였다.


07학번 선배는 무척 조용했다. 앞서 소개한 큼지막한 책상을 2분할로 나와 같이 나눠 썼다. 책장과 일체형인 터라 서로 어떤 전공도서가 꽂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남자지만 짙은 쌍꺼풀이 있었고 숱을 친 머리를 항상 유지하며 다녔다. 이 선배와는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을 때를 제외하면 거의 대화가 없었고, 기숙사 밖에서 종종 마주쳐도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다만 자기보다 1살 아래인 '개념 없는 후배'임에도 별 내색 없이 나를 크게 힘들어하진 않았다.


마지막 같은 과 동기 08학번 친구는 구면이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같은 조로 맺어졌던 터라 유일한 대화창구가 되어줬다.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와 서로 공감대도 통했다. 항상 웃는 상으로 광주 사투리를 쓰며 사소한 이야기에도 자주 웃어줬다. 같이 수업을 듣고 시간이 맞거나 하면 밥메이트도 자주 되어줬고 술자리도 그만큼 함께 했다. 동아리도 같은 곳에 들어서 활동하며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함께한 그야말로 룸메이트였다.


이 세 명의 룸메들과 함께했던 스무 살의 나는 꽤 유별났다. 고등학교 3년 간 억눌렸던 자유에 대한 갈망을 풀어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어느 고성(古城)의 첨탑에나 있을 법한 1516호에 나를 묶어놓긴 쉽지 않았다. 내가 기숙사에 있을 때만 해도 통금이 없었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방에 들어오기 일쑤였고 가끔씩 새벽에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당시 내 밑에서 자던 07학번 선배가 꽤나 고생했고, 그런 나를 보며 02학번 선배는 혀를 찼다. 이뿐만이 아니라 무엇에 홀린 건지 패션도 외길을 걸었다. 평범한 옷이 너무 심심해 보였고 특이한 옷들로 개성을 표출하고 싶었다. 사타구니까지 내려오는 맨투맨에 민트색 똥싼바지가 예뻐 보여 입고 다녔으니 말 다했다.


1학년 1학기를 그야말로 휘황찬란하게 보내고 나니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다. 아 이럼 안 되겠다. 옷의 채도들은 조금씩 낮아졌고, 기숙사에서 행실도 얌전해졌다. 내가 독을 빼고 나니 같은 방 동기 룸메이트가 그 독에 빠져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좋아하던 블링블링한 옷들을 찾아 입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나를 더 뛰어넘었다. 지금도 화려하게 물든 그 친구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의 동고동락은 1학년 2학기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퇴거 전에는 어색했던 선배들이지만 마지막 즈음엔 넷이 방 안에 둘러앉아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다. 나갈 때가 되니 이 방에 문을 열고 들어왔던 첫날 보았던 삐그덕 거리던 침대가 앤틱 해 보이기도 했고 책장과 책상에 놓인 내 물건들이 그래도 내가 이곳에 머물렀구나 하며 넌지시 눈길을 보내는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좋던 싫던 간에 내 스무 살이 이곳에 묻어 있다는 생각에 쉽게 정을 떼기 어려웠다.


1년 남짓 머물렀던 1516호를 뒤로 한 채 2009년 1월, 나는 보증금 200에 월세 20의 벽돌집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지내던 기숙사의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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