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가방을 버렸을까?
안녕,
명절에 갔더니 엄마가 가방을 식탁에 올려놓고서 기억나는지 묻더군. 기억나지. 그걸 고를 때가 특히 잘 기억나지.
너의 유복함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끝났잖아. 흔히들 쓰는 표현 “부족할 것 없이 자랐다”는 시절은, 뭐랄까, 멋이나 명품이란 걸 알기 전에 끝나서 너는 아는 게 없었어. 독일에 출장 가서 들른 몰에서 파는 가방이 좋은 브랜드인지 아닌지 몰랐지. 어차피 고가의 명품은 살 수 없는 얇은 지갑을 가졌으니 뭘 알았어도 아무 영향도 없었겠지만. 그때가 간신히 셋이 사는 반지하방을 탈출한 다음 방에 살 때였나.
네게 엄마는 두꺼운 서양미술사 책을 읽고 멋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었고. 검은색이나 회색 가방을 고르면 흔해빠진 칙칙한 색이라고 할 것 같아 불안했고, 아무 무늬가 없으면 밋밋하고 심심하다고 할 것 같아 불안했고, 좀 큰 가방은 쓸데없이 크다고 할 것 같아 불안했지. 얇은 지갑 털어서 사가는데 받자마자 핀잔 들을 물건을 고르긴 싫었어.
불안함에 이 디자인 저 디자인 다 피하니 붉으죽죽한 색상, 어정쩡한 크기, 자수가 섞인 (그것도 금박의 C가 서로 비스듬하게 마주 보는) 가방을 골랐어. 이 정도면 “역시 넌 나보다 안목이 없다”는 (엄마 혼자 웃을 수 있는) 농담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계산대 앞에 선 줄도 못 보고 바로 계산원 앞에 섰다가 새치기하면 안 된다는 소리나 들었지. 엄마에게 내밀었을 땐 당연히 뭐 이런 걸 골랐느냐는 소리를 들었고. 실망한 얼굴을 볼까 봐 불안해하며 고른 가방은 심하게 실망한 얼굴을 보여주었어. (시간여행이 불가능한 게 맞을까?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넌 분명 그 순간으로 복귀했다가 현실로 돌아왔는데.)
침침한 조명 아래 가방 모양을 한 네 불안이 식탁 위에 드러누웠어. 엄마는 한 번도 안 들었다고 했지. 어쩐지 그 세월이 흘렀는데 가방이 쌩쌩하더라. 너더러 가져가라는 거야. 마음에 안 들면 버리면 될 걸 뭐 하러 가져가라고 하냐고 너는 심드렁하게 응수했어. 버릴 수는 없었다고 하시더군. 너는 에코백이나 드는 사람이니 안 쓰시면 버리시라고 하니 엄마는 그럼 네가 직접 버리라고 했어. 너는 바로 쓰레기봉지에 넣어버렸지. 살 때도, 드리고도, 돌려받을 때도 기뻐본 적 없는 가방이 부스럭거리는 반투명의 종량제봉지에 처박혔어. 너는 눈길을 돌렸어.
다음날 집으로 출발할 때 엄마가 쓰레기를 버린다며 주섬주섬 챙겨서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어. 살펴보니 음식물쓰레기뿐이더라. 너는 문득 궁금해졌어.
엄마는 가방을 버렸을까?
… 또 편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