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복과 털양말 Mar 18. 2024

나태겠지

새털 같이 많은 날들을 새처럼 날려 보내나

  요즘 의심이 든다. 나는 과연 글이라는 것을 쓸 의지가 있는 사람인 걸까? 글을 쓸 때는 집중력이 높아진다. 무엇이 되었든 쓰고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다. 시간이 훌쩍 잘 흘러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게으름이 글을 쓰기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이길 때가 종종,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많다.


  나는 재수하여 대학에 갔다. 7월에 재수를 결심하여 4개월간 독서실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부했다. 물러날 곳이 없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그리하여 4개월을 화장실 가는 시간과 독서실까지 가는 시간이 아깝다며 달려가며 이동 시간을 줄였다. 씻고,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집중해서 공부했다. 해봤으니 아는 것이다. 내가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전력질주해야 할 때 전력질주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대학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엔 막둥이 시나리오 공모전이 있었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거의 잠을 자지 않으며 일주일 안에 장편 시나리오 하나를 썼다. 시나리오를 완성한다는 하나의 목표만 있었다. 생각나는 이야기는 바로바로 기록했다. 그러니 나는 아는 것이다. 작정하면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물론, 공모전엔 떨어졌다.)


  우울증도 벗어났다. 육아도 수월해지고 있다. 살림에도 노력을 투여하여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아들이 유치원에 간 동안 글을 쓸 시간이 주어졌다. 남편도 나를 응원한다. 시간도, 노트북도 주어졌는데, 왜 나는 매진하지 않는 걸까? 나는 할 줄 아는 사람인데, 왜 안 하고 있는 걸까? 안주하고 있나? 나태해진 거겠지? 원래 내겐 게으름이라는 큰 단점이 있으니까. 소설을 써보겠답시고 작년의 반 이상을 한글창 열어놓고 이야기를 마무리짓지 못했다. 욕심부리지 않는데. 처음부터 잘 쓰려고 용쓰지 않는데. 그냥 일단 마침표나 찍어보자고 생각하는데.


  왜 못난 나는 머리를 굴리지 않고 새털같이 많은

날들을 새처럼 날려 보내나.


작가의 이전글 긴장은 엄마의 몫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