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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15. 2024

천 원짜리 빵가게를 습격하다 2/2

아웃 오브 마이 라이프

천 원짜리 빵가게를 습격하다 1/2


CCTV가 없는 시장 입구에 차를 대고 10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우리는 복면과 장갑과 무기를 들고 내렸다. 그리고 천 원짜리 빵 가게로 찾아가 계획대로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들어가자고!” 아내는 복면을 얼굴에 쓰며 당돌하게 외쳤다. 나는 면장갑을 끼고 덜렁거리는 수류탄통을 들고 아내의 뒤를 따랐다.


빵 가게 안에는 어스름한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기세 좋게 안쪽으로 들어섰지만 노인네는커녕 빵조차 식별하기 힘들었다. 대각선 끝에 사람의 형상과 비슷한 형체가 보일 뿐이었다. “그냥 나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내가 자신 없는 투로 말했다. “잔말 말고 따라와. 저 끝에 허깨비 같은 노인네가 안 보여?” 아내가 노인 쪽으로 이동했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지옥에서 들려오는 쇳소리 같은 것이랄까. 가래를 삼키며 노인이 느긋하게 말했다. “빵은 얼마든지 있어. 단팥빵부터 조각 케이크까지 없는 게 없지. 물론 망고 시루는 없네. 다만 실컷 먹어도 괜찮아. 기껏해야 천 원짜리 빵 아니겠나.”


의외의 기습 공격이었다. 오히려 우리가 예상치 못한 습격을 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내는 굴하지 않고 노인에게 강하게 맞섰다. “닥쳐, 이 낡은 대나무 지팡이 같은 노인네야. 빵을 먹든 안 먹든 그건 우리의 자유야. 당신은 저 구석에 새색시처럼 곱게 앉아 있으라고! 그렇게 하는 게 치매 예방에 좋을 거야. 벽에 똥칠하며 살고 싶지 않으면! 엉?” 아내는 노인을 빠루로 위협하며 말했다. 대체 저 녹슨 빠루는 언제 들고 왔을까?


“생긴 건 하루키하고 똑같이 생겨가지고… 왜 분신이라도 되는 거야?” 아내가 노인을 조롱하며 말했다. “그런 말은 좀 심하지 않아? 우린 빵만 먹고 가면 되잖아. 굳이 상처까지…” 내가 말하자, “당신은 입 닥치고 코카콜라 곰처럼 거기 주저앉아서 빵이나 챙겨”라고 말하며 시장바구니를 나에게 툭 던졌다. 빵 가게 바깥에선 황량한 바람이 간혹 불어올 뿐 인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집 잃은 고양이만이 무심하게 가게 앞을 서성였다.


“여기다 넣으라고? 먹고 가는 거 아니었어?” 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되묻자, 아내는 “일단 넣고 봐. 먹고 집에 가서 굶주림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잖아. 챙겨!” 아내가 명령했다.


“잠깐, 먹는 건 좋은데, 그렇게 내 허락 없이 마음대로 시작하면 안 될 텐데…”라고 하루키를 빼어 닮은 노인이 말했다. “저주라는 게 그리 쉽게 풀리는 게 아니거든… 홋호”라고 하루키를 닮은 노인이 침을 흘리며 웃었다.


“저주를 풀고 싶다면 내 조건을 일단 들어야 할 걸세. 아무리 내 가게를 습격해 봤자, 자네들에게는 저주에 새로운 저주가 추가될 뿐이지. 1+1은 2가 되는 게 진리라고. 내 요구 조건을 차근차근 들어봐” 하루키를 닮은 노인이 헤겔의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빵을 계속 주워 담고 있어. 조건을 듣고 협상은 내가 해볼 테니까,”라며 아내가 나를 졸개 취급하며 말했다. “조건이란 게 뭔지 들어나 봅시다.” 아내가 하루키를 닮은 노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조건은 아주 간단하네. 바그너를 듣는 것보다는 조금 더 '계몽적'인 걸 생각해 냈지. 가게 구석에 프로젝터와 스크린이 있는 작은 공간이 있어. 거기엔 전함 포템킨뿐만 아니라, 안드레이 루블료프, 8과 1/2, 이방인, 저수지의 개들 같은 지루한 예술 영화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 벽이 있지. 도대체 누가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어. 자네들도 저 의자에 앉아 <전함 포템킨>을 포함해 몇 편, 아니 한 편만 감상해 보면 되는 것이야. 다른 조건은 없네. 영화가 끝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건 나도 모르겠지만 말일세.”


“영화를 보면 된다고?” 아내가 말했다. “영화가 아니라 전함 포템킨이라고…” 빵을 황급히 주워 담던 내가 말했다. “닥쳐! 시끄럽다고!” 아내가 짜증을 부렸다. 아내의 문장이 내 가슴에 수류탄처럼 박혔다.


나는 시장바구니를 넓게 펴고 빵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지만 도대체 무엇을 담아야 할지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단팥빵 개수를 헤아리다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담았다. 나는 가지런하게 놓여 있던 빵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였다. 천 원짜리 빵 삼십 개를 주워 담는다고 해도 이 가게는 아무래도 무탈하지 않을까.


“다만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에는 절대 졸아서는 안 되네. 눈썹을 들썩거려서도, 눈동자가 아래로 쏠려도, 고개를 까딱거려서도 안 되네. 만약 그렇게 되면 저주가... 너희를 찾아올 거야." 하루키를 닮은 노인이 낮고 기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지하세계에서 올라오는 듯한 한기를 품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어둡지만 날카로운 그림자처럼, 무엇인가 감추고 있는 듯이 반짝였다.


아내는 바구니에 되는대로 빵을 쓸어 담은 후, 잠시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초점이 흐려지고,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단팥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그녀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천히 제로콜라를 찾으려 했지만, 노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내는 마치 자동인형처럼 내 손을 잡고 무심하게 스크린 앞에 앉았다. 그녀의 움직임은 사이보그처럼 기계적이었으며, 나는 그녀가 정말 여기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침묵이 흐르고, 전함 포템킨이 시작되었다. 나는 단팥빵을 다섯 개째 꿈꾸듯 먹고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아내는 여전히 어딘가 다른 곳에 빠져 있는 듯, 그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저주는 마치 악성 바이러스와도 같다. 한번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끝없는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재앙의 씨앗을 뿌린다. 그 씨앗은 어느새 자라나 우리 삶 곳곳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저주는 마치 프랙털 구조처럼 끝없이 자기 복제를 감행한다. 그런데 이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함 포템킨'이 필요하다니, 이 이야기는 과연 희극으로 끝날까, 비극으로 막을 내릴까? 나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에 앉아, 신들린 시인의 독백을 듣는 관객이 된 듯한 기묘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화면에 펼쳐진 것은 바로 그 유명한 '오데사의 계단 장면'이었다. 헝겊을 기워 맞춘 듯 어설퍼 보이는 그 장면이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정확한 기억은 안갯속에 묻혀 있었다. 다만 시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계단에 쓰러진 여인의 절망적인 얼굴, 깨어진 안경의 파편, 그리고 계단을 따라 아비규환의 굉음을 내며 구르는 유모차의 모습만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나는 늘 이 장면에서 의식의 끈을 놓쳤던 모양이다. 유모차가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 나의 의식도 함께 추락했던 것일까.


그때였다. 하루키를 닮은 노인이 《빵가게를 습격하다》책으로 내 뒤통수를 세게 가격한 것은… 물론 하늘에서 별이 반짝거리진 않았다. 섬광이 터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정신이 번쩍 환기되었을 뿐이었다. 인셉션처럼 저주 그물망에 엮인 저주의 사슬에 말려들고야 말았다는 섬뜩한 느낌이…


아내는 얌전한 숲 속의 공주처럼 쌔근쌔근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하루키를 닮은 노인도 여자에게 손을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이 내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며 흰 턱수염을 매만질 뿐이었다.


“학창 시절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한 명 있었지. 레이 브래드버리라고 아마도 모르겠지? 알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겠네. 그의 장편 중에서《화씨 451》이라는 작품이 있었어.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인데, 그 시대는 책 읽는 것을 금지했다네.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려다 고개를 대신 좌우로 까딱거렸다. 그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이라는 듯이.


“역시 자네는 상상력이 부족하군. 알 거라는 기대도 없었네. 책을 금지한 이유는 바로 시민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통제하기 위해서라네. 책은 비판적인 사고를 촉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지. 시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사회에서 비판의식을 조장하고 시민 간의 의견 충돌을 일으킬지도 모를 위험한 책을 허가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래서 몬테그와 같은 인물이 탄생한 걸세. 좋은 책이든 나쁜 책이든 책이란 책은 모조리 색출해 내서 불태워버리는 방화수의 역할을 맡을 인물이 필요했던 거지. 하지만 그런 몬테크도 점차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네. 책이 가진 의미를 깨닫게 된 거지, 외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중요한 결정은 우리의 내면에서 발화되어 시작되는 거라네. 몬테그는 그래서 자신의 베개 밑에 책 한 권을 숨겨두었지. 나중에 몰래 읽어볼 심산이었네. 그러나 결국 아내가 그 사실을 알고 당국에 몬테그를 밀고하고 말았지만…”


“그래서 몬테그는 어떻게 됐습니까?” 내가 호기심 가득한 고양이 같은 얼굴로 물었으나, 하루키를 닮은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자네는 대답을 얻으려고만 하는군. 내가 자네의 과외 선생인 줄 아나? 자네는 문제를 스스로 찾아볼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아. 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은 하지 않는가? 게다가 내가 주장한 것이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는 있는가? 내가 만약 자네를 현혹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레이브래드 버리도, 화씨 451이라는 책도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대륙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거라면? 우리를 감당하는 이 든든한 중력이 모두 허상이라면? 자네는 지금 어떤 결정을 내리겠나? 지금처럼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화면에 상영되는 영화나 실컷 구경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낼 텐가. 팝콘이든 빵이든 즉각적인 만족을 얻어낼 수 있는 맛에 취해 앞으로도 삶을 방만하는 자세로 계속 살아갈 텐가?”


나는 이 노인이 정말 하루키인지, 아니면 그저 동네 목욕탕에서 방금 목욕하다 나온 가짜 철학자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우주가 다른 우주에 비친 잔상이거나 잔상이 남긴 그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온갖 비현실적인 현상들이 나타난다. 현재도 아무 이유 없이 책들이 무더기로 금서로 지정되고 우리는 그 사실에 의심 없이 납득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쉽게 설득당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있다. 그 사실은 내 생각과 생각이 조종하는 행동이 증명한다. 내 뇌가 설마 유리관 속에 담겨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확신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이니까. 어쨌든 인생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건 사실이다. 그 인생을 내가 주도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그것도 착각일 뿐이다. 그리고 어디서 노인네가 훈수질이란 말인가.


아내는 여전히 의자 위에 힘없이  뻗어있었다. 마치 세일 중인 가구점 쇼윈도의 전시용 마네킹처럼 우아하지만 축 처져있었다. 어쩌면 아내는 말린 오징어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내에게 이런 모욕적인 발언을 하다니! 그래서였을까, 아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움찔거렸다. 그럴 때면 즐거운 꿈을 꾸고 있는 몰티즈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내를 깨워야 할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영화 상영이 끝나면 관객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깨울 필요는 없을 듯하네. 하루키를 닮은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은 태도로 말했다. 깨어날 사람은 언젠가 깨어나겠지. 만나게 될 사람이 언젠가 만나게 되듯이…”


머릿속에는 화씨 451의 몬테그와 그를 밀고한 아내, 그리고 옆 의자에 축 늘어진 채 잠든 아내가 보였다. 책 속의 두 명과 나와 아내는 어떤 관계를 갖는 걸까.


“갖기는 뭘 가져? 그런 식으로 억지로 개연성을 만들려고 할 필요는 없네. 몬테그는 몬테그고 자네는 자네일 뿐일세. 두 존재의 일치성은 오직 원자의 갯수일 뿐이야.”


“나는 먼 과거에 소설가라는 저주에 빠지고 말았지.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 <어서 와, 잘 가>를 한 여름 작은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읽었지. 그 소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오네. 주인공이 떡갈나무 그늘에 서서 아이들이 던지는 야구공을 구경하는 거야. 눈처럼 새하얀 야구공이 따뜻한 여름 하늘로 날아가는 멋진 장면이었지. 야구공은 여름 하늘로 끝없이 날아가고 그 밑의 그림자는 검은 새처럼 풀밭 위를 날아가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야구장 잔디밭에 누워 하얀 야구공이 하늘 높이 날아가는 걸 쳐다봤다네. 그때 문득 결심했지.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레이브래드 버리의 소설과 야구공이 어떤 계기를 만들어줬는지는 잘 모르네. 다만 인생의 불규칙한 조각들이 모여 어떤 선택을 만들어나간다는 사실, 내 결정이 그런 조합을 지지한다는 결론을 맺게 됐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고 하지 않나. 야구공이 소설가를 만든 거야. 그걸 유추라고 한다고!”


“B와 D라… Birth와 Death는 알겠는데, C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퍼즐 게임에 나는 꽤 취약한 편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라고! 자네에게 소설가가 되라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겠네. 어쨌든 내 역할은 여기까지 일세. 나머지 해답은 자네 스스로 찾아보게나. 나는 이제 레이 브래드버리적인 화성으로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네. 아내가 저기서 짜증을 내는군.”


하루키를 닮은 노인 밑으로 옅은 구름이 두둥실 밀려왔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노인은 상영이 끝난 스크린 속으로 구름과 함께 스르르 빨려 들어갔다.


그 후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갔냐고? 물론 나는 아내를 등에 업고 싶었지만… 심한 약골이라서 그렇게는 못하고 빵 운반하는 기계에 아내를 태우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시장은 여전히 한산했고 드나드는 것은 먹이를 찾아다니는 얌전한 들고양이뿐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우리가 걸린 저주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상상해 봤다. 그리고 아 맞다. B와 D 사이의 C가 무엇인지도 검색해 봤다. C는 Choice 즉 선택이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언제나 선택이 있었다. 배가 고프면 빵을 먹고 빵이 없으면 빵가게를 턴다. 저주에 걸리면 인생이 불행해진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모두가 선택이다. 작은 선택이 모여 큰 선택을 만들고 큰 선택은 재앙을 만든다. 이것이 내가 내린 저주의 형태랄까. 내 삶은 재앙일까?


아내는 3일간의 수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꿈속에서 그녀는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첫 만남 순간을 다시 목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살짝 비틀어놓고 왔단다. 어떻게? 혹시 지금의 현실이 그녀가 변경한 타임라인의 결과는 아닐까? 나는 그럼 아내가 선택한 결과일까? 아내는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멋진 왕자의 키스를 받고 일어난 것처럼 일어나더니, 자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긴긴 터널을 헤쳐 나오기 위해 꿈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을 한 것 같다고, 입구를 찾았을 때, 잠에서 깨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빵과 얽힌 사건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고. 나는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 얽힘 상태에 빠져버렸다. 아내의 말을 믿는다고 해서 관찰이 사실로 확인되는 건 아닐 테니까. 이런 선택은 인생에서 내리기가 가장 곤란하다.


아내의 식습관이 180도 바뀌었다. 이제 그녀에게 밥은 마치 크립토나이트를 대하는 슈퍼맨처럼 기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배가 고프면 일단 빵을 먼저 찾는다. 밀가루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소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이 이 지구에서 밀가루뿐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듯했다. 화성으로 보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밀가루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음식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나. 뭐라나. 아, 그리고 아내의 예민함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아내는 내가 멀리 있어도 내 상태를 즉각적으로 감지한다. 마치 무언가 보이지 않는 끈이 우리를 묶고 있는 것처럼. 아, 아내가 부른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마도 이번엔 또 어떤 빵집을 습격하자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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