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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16. 2024

팥빙수 1/2

아웃 오브 마이 라이프

내가 그 남자를 처음 본 곳은 구립 도서관의 문헌정보실이었다. 사실 '봤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내가 그를 발견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는 끝없는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를 혼자 독차지하려는 탐욕스러운 인간처럼, 6인용 테이블을 독차지했다. 그는 마치 연체동물처럼 축 늘어져 따사로운 가을 산들바람을 만끽하며 평온하게 낮잠에 빠진 듯했다. 물론, 마동석 같은 근육질이 책을 읽기도 하고, 전종서처럼 생긴 미녀 킬러가 조용히 공부에 몰두하는 것도 도서관만의 특색이 아니겠는가. 도서관에는 각양각색의 인간이 출몰한다. 물론 돈 냄새에 킁킁거리는 나와 같은 작가 부류도.


어느 날, 나는 그 남자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남자 옆에 중세 인물이 그려진 책이 한 권 보였는데, 제목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책은 펼쳐져 있었지만 제목을 확인하기는 불가능했다. 마치 답을 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5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남자의 외양을 관찰하는 것은 쉬웠지만, 겉모습만으로 그 이면의 더 깊은 진실을 파악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더 가까이 가야 했다. 왜 매일 도서관에 와서 잠만 자는지 직접 물어보고 싶은 직업적인 작가 정신도 물론 존재했다. 책을 읽는 척하며 두 손으로 떠받쳤지만, 시야는 새근새근 평화롭게 잠든 남자의 옆얼굴에 온통 쏠려 있었다.


그런데, 남자가 마치 수술 도중 각성한 환자처럼 눈을 번쩍 떴다. 갑작스러운 순간이었다. 내 날카로운 눈초리가 그 평온한 공기에 작은 균열이라도 일으켰던 걸까? 남자의 눈썹이 추켜 올라간 것을 보니 꽤나 놀란 듯했다. 하지만 이내 공포를 잊은 듯, 남자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평화로운 꿈의 세계로 돌아간 것이다. 그와 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잠시 흘렀다. 나는 마음속의 동요를 숨기며 책에 집중하는 척했지만, 남자에게 향한 관심은 멈추지 않았다. 슬쩍 그의 책을 들여다보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있었고, 그 위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자서전과 낡은 노트 한 권이 보였다. 마키아벨리와 도스토옙스키라니, 그 조합의 의미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내 손에는 지금 남자의 노트가 들려 있다. 남자가 잠든 사이에 어떤 경로를 통해 내 손에 입수된 것이다. 혹시나 책상을 집은 손끝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까 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떨리는 손을 겨우 뻗어 노트를 펼쳤을 때, 심장이 두근거렸다. 들켜서는 안 될 못된 짓을 나는 한 것이다. 노트를 손에 차지하고 난 후에도 조마조마한 마음은 결코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카프카의 꿈 일기장이라도 된 듯, 그것이 나를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읽어보니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이 이야기를 혼자 간직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어떻게든 세상에 공개하고 싶었다. 물론, 작가로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적당히 손볼 테지만…. 욕은 나중에 먹기로 하고, 일단 노트에 적힌 남자의 기록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급선무다. 물론, 내가 비도덕적인 짓을 하긴 했지만 독자의 반응이 좋다면 괜찮지 않을까?


그 남자의 일기? 혹은 소설? 아무튼 그것을 공개해 본다.




제목 : 살인 보고서


1.

나는 50대의 평범한 남자다. 몇 달 전 직장에서 쫓겨났고, 지금은 직업도 없이 집에서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국장에 투자했던 퇴직금과 적금을 모두 잃고 말았다. 이젠 가정에서조차 바퀴벌레만도 못한 존재다. 출판사에서 인정받는 출판 편집자인 아내에게 하루 용돈 2만 원을 받아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생존이 우선이다. 아내 눈치를 보며 매일 8시에 도서관에 출근하고, 6시에 몰래 퇴근하는 그림자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2.

내 백팩 안엔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로 그득하다. 보통 대여섯 권씩 책을 잔뜩 빌려오는 편인데, 물론 읽는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그건 전적으로 폼을 위해서다. 나는 열등생이던 고교 시절처럼 책가방에 책만 잔뜩 짊어지고 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능력 없는 나의 허물을 씻어내기 위한 진지한 과업일지도 모르겠다.


3.

8시 무렵에 집이라는 소굴에서 탈출할 때쯤이면 아내는 이미 출근한 상태다. 텅 빈 집은 진공 같은 상태에서 내가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느지막이 7시경에 일어나서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꼼꼼하게 해 놓고 샤워를 대충 마치고 나오는 편인데, 밖에 나갈 복장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도서관으로 매일 출근하는 별 볼일 없는 사내가 아무런 복장이면 어떠하랴. 대충 손에 잡히는 검은색 계열의 티셔츠나 청바지를 걸쳐 입고 나오는 편이다.


아내는 식탁 테이블 위에 만 원짜리 두 장을 늘 반으로 접어 물컵 밑에 깔아놓는다. 물컵 속엔 물 한 방울 없이 몇 년을 묵었을 먼지만 수북이 가라앉아 있다. 그 모습은 마치 내가 얼마나 가치 없는 존재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았다. 아내는 이 돈을 던지며 나에게 최소한의 생존만을 허락하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만 원짜리 두 장을 집어 티셔츠 왼쪽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 순간, 아내의 차가운 시선이 등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창밖에서는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세상마저 나를 버린 것처럼.


구립 도서관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반납할 백팩에 쌓인 책들은 나를 죄인처럼 찍어 누르고 나는 고행하는 자세로 묵묵하게 도서관까지 걸어간다. 최대한 느릿느릿 보행하며 주변에서 펼쳐지는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려 노력하지만, 나는 세상을 품어낼 재주가 없다. 가끔 스마트폰을 들고 의식 없이 세상에 렌즈를 들이대는 게 전부다.


4.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는 내 지정석이 준비되어 있다. 물론 이곳의 테이블과 좌석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지만, 내가 앉는 창문 옆자리는 마치 나를 위해 예비된 것처럼 느껴졌다. 며칠 전, 누군가 그 자리에 앉아 건방지게 다리를 꼬고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감정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눈을 크게 뜨고 시선을 내리깔며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는 처음엔 나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 듯했지만, 강렬한 기운을 느끼고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 분명했다. 왜소한 그 남자는 결국 투덜대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 이후로 아무도 내 자리를 탐내지 않았다. 마치 이곳이 내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된 듯했다. 필요하다면 바닥에서 발광이라도 할 기세였지만, 다행히 그럴 일은 없었다.


5.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계속 내렸다. 소박하고 얌전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옷을 축축하게 만들기 딱 좋은 후줄근한 비였다. 마치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지만 수줍어하는 어린아이처럼, 우산을 쓰기엔 애매한 정도로 내렸다. '굳이 이런 수증기 따위에게 신경을 써야 하나?' 싶어 우산은 내던져버렸다. 도서관 앞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었다. 그 나뭇가지 끝, 초록색 잎에는 빗방울이 간신히 매달려 있었고, 마치 '나 지금 떨어진다!'라고 위협이라도 하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참을성이 부족한 나는 그 마지막 빗방울이 떨어지는 장면을 결국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지정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몸에서 빗방울과 먼지가 동시에 튕겨 나가며 습기가 감돌았다. 축축한 옷감이 의자에 닿을 때의 불쾌한 감촉이 피부로 전해졌다. 고독한 마음이 마치 바람처럼 창밖으로 흩날려가는 듯했다. 나는 잠시 창밖에 시선을 던지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백팩에서 무거운 책들을 꺼내 반납기에 올려놓고, 완료 버튼을 누르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책들이 반납되자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자리에 돌아와 노트를 꺼냈다. 도서관에 드나들며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이 노트에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처음에 내가 의도한 것은 단순한 일기가 아니었다. 마치 내가 안네의 일기를 쓰는 것처럼. 하지만 여긴 전쟁도 없고, 그저 평범한 도서관일 뿐이다.


나는 진지하게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써야 할 소설에는 갈등이 생략되어 있었다. 주인공도 없고 그럴듯한 화제도 없는 모든 개념이 사라진 시공간을 어찌 인간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을까. 나는 무의 세계를 글자로 표현해 낼 재주가 없었던 것이다. 딱히 그렇다고 나의 빈약함을 메꾸려고 소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적당히 생각나는 것들을 노트에 적으면 그만인 것이다. 따라서 이 노트엔 제목이 없다. 공백으로 시작해서 공백으로 끝내는 게 이 노트의 소임인 것이다.


6.

오늘은 세상이 말끔하게 개었다. 미세먼지조차 완전히 사라져 세상은 온통 파란색으로 일렁거리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저 푸르게 빛나는 파란색의 세상에 도달할 수 없다. 내 주머니 속에 있는 2만 원은 내 반경을 도서관 이내로 제한했다. 나는 신용카드는커녕 교통카드조차 없다.


나는 오늘도 도서관 내 자리에 앉아 소설의 세계란 무엇일까 공상하려고 노력했다. 머릿속엔 그 어떠한 캐릭터도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오직 나의 무능함, 미래의 뿌옇고 어두침침한 지하실 같은 빛깔들뿐이었다. 그렇다고 들고 온 책들과 씨름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도서관에 출입한 목적을 다시금 새겨야 했다. 나는 이곳에 책을 읽으러 온 것이 아니다. 또한 할 일이 없어서 시간이나 때우려고 온 것도 아니다.


“가서 차분하게 소설이나 한 번 써봐, 오빠 예전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잖아”


아내가 나에게 내민 가벼운 충고였다. 하지만 그 속에 감춘 매정한 진실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 그러니까 주식이나 코인에 돈을 꼬라박아 가족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의미 없는 짓은 그만두고, 소설이라도 쓰라는 것이다. 소설을 쓴다는 건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고 도서관 테이블 앞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말이었다. 가족을 위해, 집안을 위해 그저 방해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그 말. 가장으로서 실패한 나를 향한 냉소와 무력감이 그 충고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7.

소설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결국 이 두꺼운 노트에 일기나 끄적이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 아내는 내가 도서관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줄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미래에 등단이라도 할 거라 기대하는 걸까? 아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아내는 내게 1%의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그건 집안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열등감의 기운 때문이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닿는 모든 곳에 그 냉소와 실망이 서려 있었다.


왜 아내와 나는, 아니 아내는 나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걸까? 아내는 내가 소설가의 꿈을 지닌 사람인 것에 매력을 느꼈다. 나는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줄기차게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가 될 거라는 사실을 주입시켰다. 말하자면 소설가는 일종의 종교인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와 결혼 생활을 유지한 10년 동안 단 한 편의 소설은커녕 글자조차 쓰지 못했고 심지어는 소설책조차 가까이하지 않았다. 내 서재 책장엔 빈자리만 가득했고 그곳엔 먼지만 쓸쓸하게 나뒹굴 뿐이었다.


8

오늘 아내가 챙겨준 하루 용돈 2만 원으로 무엇을 했는지 적어보려 한다. 9천 원은 도서관 옆 백반집에서 점심값으로 쓰고, 3천 원은 저렴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리고 나머지 8천 원은 중요한 곳에 써야 했는데, 그 시작은 한 영화 때문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DVD 한 장을 들고 내 방에 찾아왔다. 아내는 일본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었고, 특히 오기가미 나오코의 열렬한 팬이었다. 평소엔 혼자서 영화를 보는 아내가 그날은 기묘하게도 내 방 문을 두드렸다. 아내와 함께 <안경>을 본다면 중간에 멈추는 일 따윈 없었다. 이미 거의 100번은 본 듯했다. 그것은 어쩌면 내 허물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게 만드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푸른 해변과 작은 민박을 운영하는 주인, 그리고 그곳을 찾는 낯선 여행자들의 의미 없는 일상이, 끝없는 해안길처럼 지루하고 느리게 이어졌다.


다만 그 영화에는 단 하나 주목할 만한 장면이 있었다. 고요한 해변을 풍경으로 둔 백사장 끝에는 허름한 팥빙수 가계가 있었다. 주인공들은 매일 그곳에 모여 잔잔한 파도 소리를 벗 삼아 나무로 만든 벤치에 앉아 무심하게 팥빙수를 즐기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유독 좋아했다. 팥빙수의 시원한 맛과 해변의 고즈넉한 분위기의 조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영화에 어떤 정서가 흐르는지, 그것이 전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팥빙수에 완전히 꽂혀버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나자고 할 수는 없었다. 아내는 출판사에서 잘 나가는 베테랑 편집자였던 것이다. 바쁜 그녀에게 휴가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그 영화 이후 나는 동네 카페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팥빙수에 전염이라도 된 듯, 영화 속 팥빙수 가게와 비슷한 장소를 찾아 헤맸다. 최대한 <안경>의 팥빙수 가게처럼 보여야 했다. 마침내 도서관 근처의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벤치는 없었지만,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 벽과 그 앞의 의자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날부터 퇴근길마다 무의식적으로 그 카페로 향했다. 8천 원짜리 팥빙수를 시키고는 오랜 시간 그곳에 앉아 있었다. 사실 팥빙수의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영화 속 그 작은 팥빙수 가게에 있었고, 눈앞의 풍경은 바닷가라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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