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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19. 2024

아웃 오브 마이 라이프

아웃 오브 마이 라이프

첫째 날


사람은 태어나고 (…) 죽는다. 다만 괄호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예측할 수 없다. 그 불확실성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 역설적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아니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삶을 포기하게 되는 걸까. 그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면 삶은 어떻게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결론을 내릴 자신이 내겐 없다.


어느 날,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괄호 안의 내용이 어떻게 펼쳐질지 예측이 가능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알게 된 것은 바로 내가 죽을 날, 그래 언제 죽을지 일기예보처럼 전달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이 67%, 혹은 98%가 아닌 퍼펙트 한 100% 라면? 장난 같았던 그 통보가 현실로 판명된다면 우리는 그 결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그 불길한 소식은 모두에게,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든 인간에게 전해졌다. 그 소식은 기묘하게도 스스로 의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죽을 날이 언제인지 불현듯 알게 된 것이다.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인간의 뇌에는 다양한 영역이 존재한다. 단기기억이나 장기기억을 처리하는 부위부터 의식이 발현하게 되었을 거라고 믿는 뇌간, 시상, 시상하부를 연결하는 어딘가 본질적인 부위도 존재한다. 860억 개의 뇌세포 중에서 특정 부위는 그 사실을 은폐하고 있었다. 알려봤자 득이 될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이다,라고 나는 추정하고 있다. 나와 나를 이루는 복잡한 신경계의 활동은 별개의 개체로서 작동하는 건지도 모른다.


엄마는 오늘 나를 위한 관을 하나 맞춰왔다며 그 사실을 전화로 알렸다. 관! 평상시 나라면 끔찍한 반응을 보였겠지만, 그날은 비교적 침착했다. 관이든 화장이든 어차피 죽음을 상징하는 단어가 아닌가.


어차피 나는 엄마보다 먼저 세상을 등져야 한다. 그것이 나의 얄궂은 운명이다. 나에게는 앞으로 3일, 엄마에게는 5일이 남았다. 내가 먼저 관으로 들어가면, 엄마는 남아서 나의 뒤처리를 책임진다. 그 이후에 엄마는… 거기까진 상상하기 힘들다. 나에겐 엄마가 있으나, 애석하게도 엄마에겐 엄마가 없다. 엄마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엄마, 나 앞으로 살 날이 삼일 남았대. 삼일이라는데, 실감 나지는 않아. 그날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그래, 그건 순리가 어긋나는 일이겠지. 인간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어디로 갈까? 죽음이란 건 그저 시공간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 같아.  잠시 잊혔다가 영원히 잊히는 거지. 물속에 잠수해서 잠깐 숨을 참듯이 그냥 끝나는 거야. 다만 조금 오래 참아야 할 거야. 죽음이란 건 그저 스위치를 내려버리는 일이면 좋겠어. 나중에 다시 스위치를 올려 버리면 그만이니까. 올렸다가 내렸다가 딸각! 딸각인 거야.”


엄마는 스마트폰 너머에서 숨을 꾹 참고 내 말을 잠자코 들었다. 내 손을 꼭 잡는 듯 차분하게 듣기만 했다.


“삼 일 후에 죽는다는데, 어떻게 죽는지는 몰라. 죽는 날은 알려줘도 어떻게 죽는지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고. 어딘가에 홀린 것 같아. 아버지를 따라서 15층에서 뛰어내릴지, 지나가는 자동차에 뛰어들지, 욕실에서 자빠져서 뇌진탕으로 죽을지, 아니면 그냥 침대에서 눈을 감고 영영 깨어나지 못하든지, 아무튼 알 수 없다고. 그냥 삼 일 후에 삶이 연극무대처럼 커튼이 훅 내려가는 거야. 무대 위에서 배우가 대사를 끝내고 커튼이 내려오는 거지. 그리고 어느 순간 시야가 깜깜해지는 거야. 아무런 경고도 없이.”


엄마는 자신의 파국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엄마의 침묵은 마치 무대 뒤편 여주인공의 맥박처럼 고요하게 내 귀에 다가왔다. 그 소리는 공간을 잠재웠다. 마치 이 세상을 포옹하듯 침착하게 울렸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 속으로 걸어가, 엄마가 나보다 더 오래 살게 될 거라고 이해했다. 그 침묵이 판결을 내리는 듯했다. 엄마의 마지막 날은 그럼 누가 지쳐주지? 그래, 엄마는 아이를 낳고 아이의 마지막을 책임진다. 씨를 뿌린 사람이 열매도 거둔다. 엄마는 농부고 나는 그 손에서 자라난 씨앗이다. 그러나 나는 열매가 되지 못한 채, 영원히 씨앗으로 봉인될 것이다.


“엄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난 아직 결혼도 못 했어! 이제 겨우 30 중반이라고! 시작과 끝이 동시에 오는 기분이야! ‘너는 여기까지야, 이제 집에 들어가서 영원히 푹 쉬라고, 넛 아웃이야!' 이런 거야.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고! 내 인생을 누가 그렇게 쉽게 정할 수 있어?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줬다면서, 왜 그 자유를 펼칠 시간을 주지 않는 거야? 엄마! 왜 나야, 왜 하필 나냐고!”


삼일이 지나면 파국이 찾아온다. 죽음의 사신이 내 옆에서 어슬렁거리는 중이다. 


나는 지금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누워있다. 칼날 같은 바람을 머금은 것 같은 물결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숨이 턱 막힐 만큼 소름 끼쳤지만, 점차 온몸의 감각이 무뎌 갔다. 마치 내 모든 신경이 서서히 잠들어가는 것처럼. 거기에 누워 나는 차갑게 얼어붙어가는 몸을 느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주변에서 모든 소리가 무음으로 변해갔다. 온몸을 따라 무거운 감각이 퍼져나갔다. 머릿속에선 다가올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무자비한 심판이 여기로 다가오고 있었다. 


참지 못하고 욕조 밖으로 탈출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몸이 스스로 떨었다. 나는 완전히 무력한 존재가 됐다. 삼일을 기다리는 것보다 삼 분을 버티는 것이 더 어렵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제 감각을 찾지 못했다. 


나는 확실하게 죽을 것이다. 삼일이 지나면 모든 게 끝이다. 내 머릿속에선 고요한 카운트가 곧 시작된다. 삼 일째가 되면 내 몸 안에서 뭔가가 일어난다. 온몸의 세포들이 하나씩, 천천히 설자리를 잃고 무너진다. 세포는 더 이상 재생되지 않는다. 내 몸이 점차 축소되고, 피부는 맹렬하게 식어간다. 혈액이 돌지 않는 팔다리는 푸르게 변해가고, 근육은 경직되어 굳어간다. 아버지가 어느 날, 생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것처럼, 나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서서히 그 길로 끌려간다. 


“엄마, 그런데 관은 대체 뭐야? 대체 왜 그런 걸 준비하는 건데? 그런 건 상조 회사에서 준비하는 거 아니야? 내가 그 관을 본다고 달라질 게 뭐냐고! 어차피 그 안에서 뭘 느끼려는 것도 아닌데! 내가 차가운 나무속에 들어가는 게 편안할 것 같다고?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이런 거 원하지 않아!”


“네가 잠시라도 누워있게 될 것이잖아.” 엄마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말했다.


“느끼지는 못해도 아마도 네 의식은 한동안 지속될지 몰라. 그러니 편안하게 마지막을 보낼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 엄마가 너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해 줘. 관이라는 나쁜 이미지만 생각하지 말고, 그걸 편안한 이불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너를 위해 엄마가 준비한, 따뜻하고 푹신한 이불 말이야. 마지막 순간에, 그냥 거기에 누워서 이불을 덮고 눈을 감으면 되는 거야. 엄마가 네 옆에 누워서 너를 꼭 안아주면 좋겠지만… 너무나도 안타까워. 내가 너와 끝까지 함께할 수 없을 것 같구나. 마치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이 관이 널 감싸줄 거야.”


“글쎄, 눈을 감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관속에 누워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긴 힘드네. 삼일밖에 안 남았지만 굳이 그런 광경을 그려볼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근데… 어쩌면 그게 더 편할지도 모르겠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덜 무섭게 느껴지기도 해. 그냥 모든 걸 내려놓으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겠지.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뭘 할지, 엄마도 잘 지내고 있는지, 그런 생각들을 해야 할 것 같아. 끊을게. 또 연락할게.”


나는 한 달에 한 번, 아니 거의 분기에 한 번꼴로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아들이었다. 그런데 이틀 연속으로 엄마와 통화를 한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서른 살 무렵 직장에 들어가게 된 후 바로 집에서 독립했다. 경제적인 능력이 생긴다면 부모의 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내 상식이었다. 그 후 5년 가까이 그런 삶의 방식을 스스로 지지해 왔다. 


둘째 날


나는 엄마에게 가지 못하고 있다. 죽음을 선고받고 나니 온몸이 마비될 듯했다. 그건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이 감옥에서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이미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이다. 내가 그동안 해온 모든 일이 다 무의미했다.


관 속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자꾸만 상상했다. 내가 갇힐, 그 관 속을 이미지화했다. 두 팔을 휘두를 만큼, 양다리를 벌릴 만큼 충분히 넓을까. 숨 쉴 만큼 공백은 충분할까. 아니, 죽은 이후에 숨 쉴 공간을 왜 찾을까. 나는 왜 그런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걸까. 


차가운 나무로 만들어진 그 관 속에 들어갈 것을 상상하니, 뼛속까지 서늘해졌다. 그 속에서 느껴질 차가운 감촉, 딱딱한 바닥, 그리고 온몸이 굳어가는 느낌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누울 곳이라면 차라리 평온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고통과 불안을 내려놓고, 그 차가운 나무 상자 속에서 편안히 눈을 감고 싶었다. 인간은 정말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구나, 하고 스스로를 비웃었다. 모든 것이 끝날 텐데, 그 끝이 어떻게 찾아올지조차 나에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무거운 몸을 어디에 둘지, 어떻게 놓을지조차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마지막을 기다리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엄마에게 편지를 남기기로 했다.



1/3

엄마, 그런 생각이 들어. 나에게 왜 삼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걸까,라는 생각 말이야.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른 지점에서, 그 운명에 이런저런 근거를 들이대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타당한 설명이 나에겐 필요할 것 같아.


신을 믿지 않는 나에게 신이 내린 대가일까. 아마 생각해도 생각하지 않아도 결론은 같은 향방으로 진행되겠지. 그래도 나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그래야 수긍이 갈 것 같아. 


문제는 단 하나야. 내게 시한부라는 타이틀이 주어진 이유. 그게 설명되지 않으면 나는 눈을 절대 감을 수 없어. 오늘 침대에서 누워 내가 태어난 날부터 오늘까지를 들춰봤어. 필름처럼 기억이 자동으로 재생되더라. 넋을 놓고 구경하는데 그 기억이 내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더라? 뭔가에 꽤 집착했던 것 같긴 한데,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어. 


아빠는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렸어. 새벽 5시에 남몰래 일어나서 계단을 기어서 15층까지 올라갔지. 그 새벽에 아빠는 왜 15층까지 올라가야 했을까. 아빠는 무엇을 버리고 체념하고 싶었을까.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며 15층 옥상으로 향하게 만든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래 우리 모두는 아빠를 원망했어. 아니, 원망을 넘어서 참담한 저주라고 하는 게 맞을 거야. 아빠는 단 한 번도 가족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었어. 회사 공금을 내기 바둑으로 날리고, 그걸로 모자라 기원에서 바둑에 빠져 월급까지 다 털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기원에 기웃거리는 모습은 마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짐승 같았어. 아빠는 실업자로 반평생을 살아가며 어마를 학대하고, 자식들은 방치시켰어. 아빠는 우리에게 한 번도 진정한 아버지였던 적이 없었어. 골방에 틀어박혀 죄인처럼 굴었던 것도 다 연기에 불과했어. 엄마한테 용돈을 받아 다시 기원에 가려고 했던 얄팍한 속셈이었지. 마음 약한 엄마는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해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와 동생은 더 이상 아빠를 사람으로도 볼 수 없었어.


아빠는 오히려 더 당당했지. 나중에는 즐기는 거 같았어. 자식들에게도, 아내에게도 염치가 없었어. 우리가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었어. 나는 분노와 배신감에 매일 치를 떨었어. 


그날 나는 다짐했어. 절대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아빠 없는 나로서 살아가겠다고. 아빠를 내 인생에서 깨끗하게 지워버리기로 했어. 아빠는 우리 삶의 오점일 뿐이야. 나와 동생의 인생에서 깨끗하게 치워졌어. 누가 아빠에 대해 물으면, 그냥 "우리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했어. 그것이 차라리 우리에게는 더 나은 선택이었을 거라고 믿어.


여기까지 쓰고 멈췄다.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남은 시간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정이 멀지 않았다. 이제 이틀이 남았다.


엄마에게 편지를, 아니 유서를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마지막 생각을, 삼 일간의 기록을 어떻게 보냈는지 남겨주고 싶었던 걸까. 글쎄, 그런 이야기를 굳이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내 안에 깃든,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인격들이 충돌하는 듯했다.


나는 스스로 살을 깎아내리며 살아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 누군가를 지독하게 원망하며 저주해 온 기억들, 지워버리고 싶다며 스스로를 부정했던 과거들이 제살을 갉아먹고 만 게 아닐까. 그런 번민의 시간들이 내 종말을 더 강력하게 끌어당긴 건 아니었을까.


모든 건 결과가 증명한다. 내가 정의한 종말의 가설은 그저 죽음을 앞두고 제멋대로 지껄인 헛소리일 뿐이다. 내가 아빠를 오랫동안 미워하고 그의 부재를 희구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내 생의 열기를 잠재웠다고 보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저 나는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을 갖다 불일뿐이다.



2/3


엄마, 아빠를 원망하고 그의 죽음을 바랐던 그 시간이 결국 내 남은 생을 짓밟아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 모든 원망과 미움이 내 삶을 조금씩 침식해 들어가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거라면, 난 정말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질 것 같아. 나도 몰랐던 그 분노와 저주가 내 속을 파먹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지금 나는 아무런 의욕도 없고,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하게만 느껴져. 그럼에도 이 미움의 고리를 멈출 수가 없어. 절대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에 타고 있는 것 같아. 이 기차는 종착역에 닿기 전까지는 절대 속도를 줄일 수 없을 거야. 멈추고 싶어도, 이미 그 경로를 떠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같아.


나 스스로 나를 망쳐버렸다는 사실을 이해해도, 그걸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후회란 결국 생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누구나 맛보게 되는 거잖아. 그리고 그 후회의 맛은 참 써. 그건 넘길 수 없는 더러운 맛이지만, 결국엔 참고 넘길 수밖에 없어. 쓴 약을 삼키듯, 꿀꺽 삼켜야만 하는 거야. 후회의 맛은 계속 남아 있고, 나를 따라다니며 내 마음을 더럽히고,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지.


요즘 난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뿐이야. 더 이상 꿈도 희망도 없어. 아빠를 미워했던 그 시간들이 내 삶에서 너무나도 큰 부분을 차지했나 봐. 이제 와서 그 미움을 떨쳐내려고 해도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아. 그 미움이 내 뼛속까지 스며들었어. 지금의 나는 그 미움과 함께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 그저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 내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 내가 어떤 선택을 했든, 그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지금은 그저 이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어. 그저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야. 그렇게 후회의 쓴맛을 참고 넘기면서, 그 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오늘은 관을 머릿속에 침착하게 떠올려봤어. 마치 무대 위에 놓인 오브제를 관찰하듯, 내 마지막 안식처가 될 그 관을 생각했지. 거기에서 편안하게 잠든 내 모습도 상상해 봤어. 무표정한 얼굴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누워있는 나, 그 모습은 나에게 묘한 평온을 가져다줬어. 오직 인간만이 죽음을 사유할 수 있고, 그 이후의 세상을 멈춰 생각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철학자처럼 그것을 사유하려는 나 자신을 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죽음을 목전에 둔 이 긴박한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아빠가 밉고, 아빠와 화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래도 엄마가 만약, 정말 만약에 말이야. 모든 걸 털어버리고 그러니까 아빠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훌훌 털어버리라고 한다면, 노력은 해볼게. 아빠를 용서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 쌓인 짐들을 덜어내고 나 자신을 위해서 평온을 찾아보려고 말이야. 


셋째 날


이제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택배 기사에게 문자가 왔다. 관이 오전에 배송될 거라는 메시지였다. 관이 택배로 배송되는 세상이라니, 정말 죽음이 일상화된 것 같았다. 사람들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제는 그저 상품처럼 죽음을 준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메시지를 읽으며 나는 잠시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벨이 울렸고, 택배 기사가 도착했다. “여기 사인 부탁드립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마치 전자제품을 배달하는 듯한 태도로 말하며 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사인을 하고 그가 가져온 커다란 박스를 확인했다. 커다란 박스, 그것이 내 마지막 침대였다. 그는 무겁게 느껴지는 박사를 현관에 두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내가 다시 그 문을 닫고, 나는 그 상자를 한동안 바라봤다.


관을 직접 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묘했다. 관은 예상보다 단단하고 차가웠다. 손을 얹어보니 나무의 거친 질감이 느껴졌고, 그 안에 들어갈 내 몸의 무게를 떠올렸다. 봉인을 풀고 뚜껑을 열었을 때,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왔다. 


죽음을 통고받으면 개인은 당국에 신고 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실을 숨기면 다른 가족에게 피해를 끼친다. 장례식이라도 간소하게 거치려면 신고는 필수다. 삼 일 전에 신고를 마쳤다. 앱에 접속해 날짜와 시간을 입력하면 끝이었다. 구청에서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평범한 관을 제공했지만, 나는 엄마가 준비해 준 오크 관을 선택했다. 엄마의 마음이 담긴 마지막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관을 거실로 옮겨 놓았다. 묵직한 물건을 이동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것이 마치 내 죽음을 준비하는 마지막 의식처럼 느껴졌다. 관을 자리 잡고 나서, 나는 거기에 들어가서 눈을 감고 오래도록 잠을 잤다. 이 차가운 나무 상자 안에서 나는 비교적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건 고작 나무 냄새와, 차갑고 단단한 나무 바닥의 감촉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안에서 편하게 잠들고 깨어났다.


관에는 생명을 감지하는 센서가 부착되어 있다. 숨이 멎게 되면 그 상태가 기관에 전송된다. 그래서 관 속에 누워 숨을 멈춘다는 것은 그저 마지막 절차의 시작일 뿐이었다. 모든 것이 명확하고 철저하게 설정된 시스템 속에서 내 죽음은 단지 하나의 과정, 매끄럽게 처리되는 절차일 뿐이다. 센서가 내 죽음을 감지하면, 담당자가 관을 들고 지하주차장의 운구차로 옮기게 될 것이다. 이후 화장장으로 조용히 이동하고, 불구덩이 속에서 나는 재가 된다. 그렇게 모든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로 돌아간다. 이 세계의 기본 질서를 이루는 원자 단위로 나는 분해된다.


모든 절차는 철저하게 기계적으로 진행된다. 인간의 죽음조차 이렇게 체계적이고 기계적인 절차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냉담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순서에 따라 적당한 타이밍에 따라 무대 뒤로 퇴장하는 조연이다. 관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며 나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차분했다. 아니, 어쩌면 차분하다 못해 무덤덤했다. 나 자신이 죽음을 무관심한 태도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쩌면 모든 것이 끝났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빨리 수긍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 냉정함 속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그저 하나의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오는 단순한 직관이었다. 그 직관 속에서 나는 마치 이 모든 것이 남의 일인 양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걸까?' 관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치 그 답을 관이 알고 있는 것처럼. '왜 나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까지 담담할까?'


떠오르는 질문들이 폭포수처럼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갔다. '왜 하필 나일까? 내가 살아온 삶은 과연 의미가 있었을까? 죽음이란 건 대체 무엇일까? 나는 정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로 돌아가는 걸까? 그럼 지금까지의 기억과 감정은 어디로 가는 걸까? 삶이 이렇게 기계적이고 단순한 절차로 끝나도 괜찮은 걸까? 나는 그저 시스템의 일부로 사라지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걸까? 왜 아무도 내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까?'


그 질문들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그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나는 묵묵히 그 질문들을 떠올리며, 내 앞에 놓인 마지막을 바라볼 뿐이었다. 현재는 죽음이 일반화된 세상이라 독거사는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되지 못한다. 개인이 감당해야 할 자그마한 사태일 뿐이다. 아빠가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것보다는 고통이 덜할 거라고, 내 마지막은 비교적 조용하게 끝날 거라고 믿는다. 의미 없이 우연하게 생명을 얻은 것처럼, 힘을 놓으면 나는 늦가을 마지막 잎새처럼 바닥에 떨어진다. 그것이 죽음이다.


3/3

엄마가 마련해 준 관이 도착했어. 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왜 누군가 강제로 설정해 둔 규정을 따라야 하는 거지? 이런 의문이었어. 단테는 신곡에서 이런 말을 했어. 자살을 하게 되면 그 망령들은 최후의 심판의 날에도 육체를 회복할 수 없다고. 그 말은 그저 소설이 만들어낸 가짜 믿음일 뿐이지만, 어쨌든 자살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 거야. 육체가 없는 영혼은 얼마나 부담이 없을까?


어쩌면 자살은 유전적인 대물림이 아닌가 싶기도 했어. 아빠가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렸듯이 내 운명도 그쪽으로 강하게 빨려 들어간다고 할까. 운명이란 건 세상의 아주 강한 진공청소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 빨려 들기 시작하면 절대 그 기세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거야.


15층에 올라갔어. 나도 모르는 다른 존재가 그곳으로 나를 끌어들인 셈이지. 아파트 복도에 서 있다가 난간 위에 올라앉아봤어. 두 다리가 난간 밑으로 불안하게 흔들거렸어. 서늘한 바람이 등을 타고 허리를 지나 허벅지를 지나가더라. 꽤 시원하고 신선했어.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듯한 깨끗한 바람이었어. 아래쪽을 내려다봤지. 엄마가 마련해 준 관 속의 작은 침대처럼 포근하고 아늑해 보였어. 당장 뛰어내려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들었어. 고통조차 느낄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모든 게 종결되어 버릴 것 같았어. 마침표를 찍고 새로 시작하는 느낌.



엄마에게, 아니 엄마의 소식이 병원에서 날아왔다. 뇌동맥류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왔다는 당직 의사의 다급한 문자 메시지였다. 그러나 나에게 남은 건 단 삼십 분이었다.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여기, 관짝에 편안하게 누워 시간이 흘러가는 걸 구경하고 있을 수도 없다.


엄마의 소원은 내가 여기에 눕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응급실에 누워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싸움을 엄마는 외롭게 펼치고 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삼십 분이다. 택시를 타도 병원까지 20분 이상이 걸린다. 그래, 어쩌면 엄마를 마지막으로 볼 기회일지도 모른다.


류노스케는 그런 말을 했지. 자살하는 사람은 왜 자살하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고. 아빠도 어쩌면 나도, 이유를 모른 채, 그저 세포 어딘가에 이식된 그 체계에 따르는 게 아닐까. 이유도 모른 채 자살하는 것과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른 채 관속에 누워 죽음의 기운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러나 삼십 분 밖에 남지 않은 지금, 내 몸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마치 나에게 어떤 결단을 촉구하는 듯하다.


참으로 기묘하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엄마는 뇌동맥류로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병원의 긴급한 메시지를 받은 순간에도 나는 내 심장이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을 느꼈다. 마치 내 감정은 이미 기능을 멈춘 듯했다. 그저 멍하니 그 소식을 바라보았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무력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엄마가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다. 엄마에게 달려가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 걸 알지만,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고통과 슬픔을 느껴야 할 상황에서 나는 그저 텅 빈 눈으로 그 사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빠처럼 15층으로 향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쩌면 가장 손쉬운 선택일지 모른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천천히 버튼을 눌렀다. 15층. 엘리베이터는 고요하게 나를 그곳으로 끌어올렸다. 차가운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마치 남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멍한 표정, 그 속에 담긴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는 복도를 걸어 나갔다. 바람이 서늘하게 나를 감쌌다. 복도의 끝에 다다라 난간에 올라서니, 아래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어딘가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렸고, 멀리서 사람들의 소음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모든 소리는 마치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인 듯, 나와는 무관한 세상의 소리처럼 들렸다.


엄마는 지금 응급실에 누워있다. 엄마의 얼굴이 잠시 아른거리긴 했지만, 그 이미지조차도 흐릿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엄마와의 연결을 끊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고통스러워해야 마땅할 이 순간에, 나는 편안했다. 마치 모든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프로그램된 기계처럼, 나는 그저 해야 할 일을 수행할 뿐이었다.


바람이 점점 더 강해지며 나를 밀어내듯 불어왔다. 눈을 감고, 나는 그 바람에 몸을 맡겼다. 차가운 공기가 내 몸을 감싸 안으며, 나는 서서히 앞으로 기울었다. 그 순간, 관이 있는 방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떠올랐다. 비어 있는 방에 덩그러니 놓인 관, 그 속에 누울 나를 기다리는 그 모습이 스산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췄다. 내 발끝이 난간을 벗어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흩어지듯 사라졌다. 관 속의 나, 그리고 난간 위의 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지며, 마침내 막이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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