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오브 마이 라이프
카페는 사람들로 붐볐고, 창밖으로는 도심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한 여자와 소개팅을 하고 있었고,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내 경험담을 신나게 늘어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거 본 적 있어요? 북극곰이 콜라 마시는 건요?" 내가 농담을 던지자,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TV 광고에서나 보죠. 그래도 세상 어딘가에선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것보다 더 기묘한 일들이 일어나곤 해요. 제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요?" 내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녀도 흥미를 보이는 듯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내가 덧붙였다. "아, 그리고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좀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그맣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편하게 말해요."
그렇게 서로 말투를 바꾸고 나니, 나는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말이야, 전부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야. 순도 100퍼센트 사실이니까 믿어도 돼. 내가 이야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잖아. 뭐 그냥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만 하면 되겠지만, 어쨌든 절대 지어낸 건 아니야. 이게 언제 벌어진 일이냐면... 내가 면접만 108번 떨어진 놈이거든. 억세게 재수가 없었지. 거참,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말이 길어졌네, 이해해 줘. 내가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땄는데도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연속으로 108번 내리 떨어졌다니까. 그러다 마지막으로 109번째 회사에서도 실패하면 정말 한강 다리로 가자고 결심하고 두 눈 딱 감고 면접 보러 갔는데, 글쎄 그 일이 터진 거야. 평생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할 괴상한 광경이 벌어진 거지.
세상에, 108번이나 면접에서 떨어지니까 자신감이 완전히 바닥났어. 마치 쥐새끼만도 못한 기분이더라고. 나중에는 내 문제가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왔어. 친구들이랑 모의 면접도 여러 번 해봤는데, 떨어질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 거야. 근데 냉혹하게도 나는 여지없이 떨어졌지. 면접장에만 들어가면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입을 열어도 말이 제대로 안 나와서 마치 벙어리가 된 것처럼 어버버거리기 일쑤였어. 머릿속은 진공처럼 텅 비어버리고, 스스로가 깡통처럼 느껴졌지. 완전히 머저리가 된 것 같았어, 면접장만 가면 모든 게 무너졌으니까.
그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109번째 면접장을 찾았는데, 그날 분위기는 정말 특이했어. 면접장은 강남 근처 고층 빌딩 13층에 있었지만, 도착하자마자 마치 조선시대 과거 시험장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 바닥은 대리석 대신 거칠게 다듬어진 돌바닥이었어. 돌바닥 위엔 큰 붓과 화선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어. 그리고 문진도 준비되어 있었지. 그 광경은 옛 경복궁 안에서 벌어질 법한 과거 시험장 그 자체였어. 서슬 퍼런 심사관들이 곧 들이닥칠 것 같은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어. '아니,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 같은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면접 109번 본다고 이런 황당한 상황까지 경험하다니', 정말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어.
그런데 더욱 황당한 장면이 펼쳐졌어. 사람 키보다 더 긴 칼을 들고 지엄하게 서 있는 근위 대장 같은 놈들이 무표정하게 나를 노려보는 거야. 그들은 숨소리만 들려도 당장 목을 치겠다는 듯했어. 차가운 금속 소리가 적막을 가르고, 그 긴 칼날은 빛마저 베어버릴 듯이 날카롭게 번뜩였지.
얼떨결에 확인해 보니, 내 이름이 한자로 적힌 채 깃발에 펄럭이고 있더라고. 순간 이게 몰래카메라인 건가 싶었어. 면접을 108번씩이나 연거푸 떨어지니까 이젠 별 험한 꼴을 다 당하는구나, 동네 망신이 전국구를 넘어 세계적인 망신으로까지 치닫게 되는구나 싶더라고.
뭐, 어쩌겠어. 그날은 나한테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어. 돌아갈 자리는 더 이상 없었지. 이번에도 실패하면 정말로 모든 걸 끝내야겠다고 작정했으니까. 그래서 절박한 마음으로 내 이름이 적힌 깃발 밑에 앉았어. 차가운 돌바닥 위에 말이야. 빌딩 13층에 이런 무대를 만들어놓은 이유도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품평회 할 여유는 없었어. 마지막이라면, 이곳에서 끝을 내자는 마음뿐이었지.
그런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 시험장엔 나 혼자뿐이더라고. 뭔가 이상했어. 면접장에 혼자 들어가는 일은 극히 드물거든. 게다가 가로 세로로 최소한 30명은 족히 앉을 만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데, 시간이 다 되도록 아무도 안 오는 거야. 뭐, 단 한 사람 뽑는 면접이라도 경쟁자들이 참석을 안 하면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가는 거 아니겠어? 쓸데없는 소리만 안 하면 이번엔 비극을 끝낼 수 있겠구나 싶었지. 이제야 제대로 기회를 잡았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어.
나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자리에 앉았어. 뭐를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백일장이든 면접이든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지. 조금 기다리다가 지루해질 때쯤, 저 멀리서 검은 실루엣이 천천히 다가왔어. 아주 느린 걸음으로, 마치 예술적으로 느리게 무언가가 엉금엉금 기어 왔지. 그 형체가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려웠어.
나는 저 느림보 같은 놈이 대체 뭘 하려는지 지켜보기로 했어. 마치 전당포에 저당 잡힌 물건을 찾아가는 것처럼 무기력하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지 궁금했지. 성질이 났지만, 그냥 지켜보겠다고 마음먹었어. 이게 정말 나를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건가, 면접 108번 떨어진 게 소문이라도 난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 존재는 꾸준히 기어 와서 결국 면접관 자리에 앉았어. 면접관이라고? 면접관은 말이야, 마치 동물원에서나 볼 법한 거북이, 그래 거북이라고! 웃긴 것은 콧구멍에는 플라스틱 빨대가 꽂혀 있었다는 거야. 콧물을 아이처럼 질질 흘리는 모습이 기괴했지.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 그 녀석을 노려봤어. 그 순간 녀석이 내 약점을 알고 있다는 듯이 냉정한 표정으로 입을 껌벅이기 시작했어.
“삐약~ 삐약~”
아니 저건 또 뭐야? 거북 등딱지 위에 병아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어. 노란 병아리가 가운데 도도하게 서서 삐약삐약 거렸지. 거북 등 위에 병아리,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주위의 근위 대장들이 일제히 나를 압박했어. 내게 어디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한 기세로. 나는 그저 벌건 얼굴로 거북의 말을 들어야만 했어. 면접에 꼭 통과해야 했으니까.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었지.
“네 녀석이 앉아 있는 거기 앞에 화선지 보이지? 거기다가 써. 최근에 읽은 시 중에서 생각나는 구절을 필사해 보라고”
네? 콧구멍에 빨대를 꽂은 거북이가 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 시를 필사하라고? 아무리 요즘 필사가 유행이라지만... 앵무새도 아닌 거북이가, 등에 병아리를 취미로 앉혀놓은 괴물이, 그러니까 그 뭐냐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처럼, 오래 살기로 유명하다는 그 영험한 거북이가 나한테 최근에 읽은 시 중에서 생각나는 구절을 필사하라고 다짜고짜 명령하는 거야.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갑작스러운 횡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어. 나가려고 몸을 비틀자, 갑자기 무사들이 내 목에 칼을 들이댔지. 숨소리조차 크게 내면 바로 목이 날아갈 거라고. "왜 내가 이 따위 필사를 해야 하지? 면접이잖아!"라고 외쳤지만, 그 순간 거북이는 더 큰 소리로 개처럼 으르렁거렸어. 나는 발악하며 거부하려 했지만, 무사들이 점점 더 가까이 칼을 목에 댔어. 결국 나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어. 목을 깊이 파묻고 눈을 감으니, 마치 내가 거북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더라.
“책 안 읽어? 평상시에 시도 안 읽는 거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이 시대에, 문학적 감수성 하나 없는 무색무취의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거야? 면접을 보러 오면 보통 최근에 읽은 시나 문학작품 한 편 정도는 생각해 두고 오는 게 기본 아닌가? 이런 기본조차 준비 안 해온다고? 왜 그 질문에 대답이 막히는 거야? 머릿속에 뭐라도 담겨 있다면 이런 질문에 주저할 이유가 없잖아. 회사에 너처럼 이력서는 번지르르한데, 정작 내용은 텅 비어 있는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
"문학적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건 창의력과 사고의 깊이가 없다는 걸 의미해. 시를 읽고, 그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조차 없다면, 회사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상상력과 유연한 사고를 발휘하기 어렵다고. 회사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을 이끌어갈 인재가 필요한데, 그런 감수성조차 없는 사람이 어떻게 팀을 이끌 수 있겠어? 겉만 번지르르하고 내실은 없는 사람은 결국 회사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지. 준비 없이 대충대충 사는 태도는 이 시대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군. 입사하면 인공지능이 모든 걸 대신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인간과 비슷한 유형이군 그래.”
“저는 저 자신에게 꽤 자부심이 강한 놈입니다. 물론 저는 책을 읽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꽤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죠. 그런데 그게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이 아니라, 자기 계발서입니다.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책들 말이죠. 다른 사람보다 제가 몇 배는 더 많이 읽었을 겁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권은 꼭 챙겨 봅니다.”
“됐어. 어영부영 넘어가려 하지 말고, 어디 무슨 책을 읽었는지 그리고 느낀 점을 써 보게.”
내가 그래서 말인데, 그 거북 인간, 아니, 그 면접관이 왜 저렇게까지 우스꽝스럽게 보였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어쩌면 내가 무슨 마법에 걸린 것도 같고, 아니면 점심에 마신 음료에 뭐가 잘못된 게 있었는지,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 내가 할 일은 자리에 앉아서 허풍 떠는 것뿐이었지. 저 포동포동한 거북이를 앞에 두고도, 난 자만심에 빠져 있었어. '여기서 내가 뭘 해야 하지?' 같은 생각보다는 '내가 얼마나 똑똑한지 보여주자'는 쓸데없는 자부심. 그래서 한숨을 푹 쉬면서, 109번째 면접도 이렇게 망하는구나 싶으면서도, 입에서 희극배우처럼 발성이 터졌어. '나를 광대로 만드실 거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셨네요. 카메라는 잘 나오고 있나요?' 하고 말이야.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그냥 자신을 방어하려는 태도로 일관했지.
면접관은 잠시 깊은숨을 내쉬며 고심하는 듯했어. 그는 엄숙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더라. 주위를 압도하는 기세였어. 그 순간, 그는 천천히 손짓으로 나를 가까이 부르더니, 귓가에 속삭였어.
“넌 불합격이야.” 면접관이 내 귀에 저주하듯 속삭였어. 순간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멍하니 그를 바라봤지. 그러다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떼며, "아,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어.
그래서 나는 약간 당황한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면접관에게 얼떨결에 인사했어. 그리고 나가려던 순간,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지. 순간 당황스러워서 주변을 둘러보니 면접관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더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어. "하, 그래도 의미 있는 하루였네." 쿨한 척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어.
"그래서 결국 면접은 어떻게 됐어?" 소개팅 상대자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나는 약간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당연히 불합격이었지. 거북이가 그렇게 말했다니까." 그러면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근데 말이야, 다음 면접에서는 어떤 동물이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되지 않아? 두루미가 면접관으로 나와서 날갯짓으로 합격 도장을 찍어주는 거 아니야?" 여자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이젠 정말로 취업에 성공하고 말 거니까, 이제 동물은 그만 만나고 싶어. 다음 면접에서 코끼리라도 한 마리 나와서 '네 지난번 면접, 기억나냐?' 하고 물어보면 곤란하잖아." 나는 피식 웃으며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여자의 눈빛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가 일어날 것임을 느꼈다. 고개를 숙이고 큭큭 웃던 그녀가 어깨를 들썩거리다, 뭔가 숨 쉬는 게 문제가 생긴 건지, 부르르 떠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더 갸름해졌지만, 입가 양쪽에서는 붉은 피가 슬며시 흘러내렸다. 그러더니 가지런히 모아두었던 양손 끝에서 손톱이 날카롭게 돋아났다.
나는 놀라서 의자에서 넘어질 뻔했다. '이건 또 뭐야?' 하고 외쳤지만, 이미 내 앞에는 소개팅 상대가 아닌 여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마치 둘이서 자리라도 바꿔치기하듯이. 그녀는 여우로, 여우는 여자로... 그리고 여우 같은 몸동작으로 장난스럽게 나에게 다가오더니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거북이가 아니라 진짜 여우랑 면접 봐야 할지도 모르겠네? 준비 잘해둬." '이번엔 정말 제대로 미친 꿈이라도 꾸는 건가?' 싶었지만, 주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각자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마치 면접장에서 조용히 퇴장했던 것처럼 계산을 마치고 카페를 나섰다. 그리고 109번째 면접은 절대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