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에게 내 글을 첨삭받는다면?
https://youtu.be/ze_sKQA-yJY?si=N3SM8It2OGhGU60T
김영하 작가의 최신작인 『단 한 번의 삶』을 소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이 글은 김영하 작가의 산문 첨삭 과정을 담은 영상을 소개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의 첨삭 방법을 담은 영상의 내용을 AI에 담아보고 싶어서다.
첨삭 자동화 과정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무지 간단하다. 생성된 프롬프트와 내 글을 함께 챗GPT든, 클로드든, Gemini든 보여주고 첨삭을 요청하면 된다. 시험을 위해 3가지 AI가 어떻게 내 글을 번역, 아니 첨삭하고 교정하는지 실험해 봤다.
왜 이런 글, 아니 이론 프롬프트와 가이드를 제작한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글을 김영하 작가의 시선으로 검토하고 첨삭해 보자는 것이다. 물론 짧은 몇 분 내외의 영상만으로 김영하 작가의 스타일을 완전히 담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글쓰기 첨삭의 핵심은 담겼을 거라고 보고 시도해 보는 것이다.
결과는 나도 모른다. 과거에 작성한 아무 글이나 하나 가져와서 첨삭을 도모해 보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과거에 작성한 글 한편 정도는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다면 일단 글 한 편이라도 쓰자.
(먼저 아래 글은 3년 전쯤, 발행한 에세이다. 이 글을 사용해서 첨삭 과정을 실제로 진행해 본다.)
나는 왜 쓰는가.
글 쓰는 작가라면, 아니 글을 쓰는 그 누구라 하더라도 이 질문에 자주 직면하게 된다. 질문에 맞서고 싶지만, 비교적 허약한 체질 탓인지 고개를 숙이고 만다. 따라서 나는 질문에 항복하거나 회피하는 자세를 취할 뿐이다. 그게 내가 던질 답의 전부다. 이 세계는 맞서기에는 곤란하다. 욕심을 내려놓고 나름의 대답을 내려놓아봤자, 어차피 만족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 걸까? 글을 통해서 어떤 소득을 얻으려고 하는 걸까?
소득은 없다. 아니 모두가 정의한 소득이란 건 오직 나에게만 통용되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그럴 거라고 미리 단정 짓는 게 내 한계일지도 모른다. 자신감을 상실한 말투가 난무한다. 말 자체가 사라진다. 세상의 말들은 모두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중에서 내가 찾으려는 ‘왜’가 한 가지쯤은 존재할까?
글은 자기 자신과 벌이는 전투다. 한 번 뛰어들면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죽든 살든 방법은 거의 없다. 오직 결단만이 유효해질 뿐이다. ‘이유는 찾지 말고 써라!’라고 강압적인 말투가 먼저 다가온다. 여유가 있어서 한가하기 때문에 나는 이유를 찾으려는 게 아닌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 없이 그저 우연한 확률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듯이 글도 그냥 우연하게 쓰는 것이다. 세상은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나타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도중 눈앞에 갑자기 모기 한 마리가 시야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질기고 질긴 가을 모기인 것이다. 모기는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내 눈앞에서 선회 비행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대체, 왜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본 순간조차 없을 것이다. 오직 그 세계에는 본능, 직감대로 행동하는 것만 가득하다. 나는 이렇게 건방진 판정을 내린다. 모기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며 심지어는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못할 거라고.
모기는 우연히 나타나서 필연적으로 목숨을 잃게 됐다. 나에게는 운이 좋았고 모기에게는 운이 아주 나빴다. 모기는 본연의 목적인 흡혈에 성공하지 못하고 인생의 막을 조기에 내리게 된 것이다. 나는 모기보다는 다소 신격화된 위치에서 모기의 생을 관찰하며, 모기의 생이며 나에게 남은 생의 의미 따위를 공상한다. 그리곤 모기의 생을 끝내버렸다. 하지만 내가 모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했다.
나는 모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모기가 아닌 대상으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모기의 생을 내 생각의 범주로 해석할 뿐이다. 그 세계는 나에게 있어서 단순히 살아있거나 죽었다는 상태로서만 파악될 뿐이다. 나는 어디까지 ‘왜’를 이해하려고 어디까지 의미를 확장하는가?
나는 모기의 생에 대해 논한다. 그들의 생과 사를 증거 하는 순간의 의미로서 자격을 얻는다. 나는 아직 자격을 상실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살아서,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내 목숨을 휘둘리지 않는다. 당분간은 비교적 자유롭게 지낼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생각 따위도 가짜일지도 모르지만.
글이란 건 결국 자유인가. 나는 왜 글을 쓰면서 자꾸만 자유를 논하게 되는가. 자유를 박탈당해서 인가,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인가. 자유를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손을 펴도 쥐어도 자유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먼지만 내 손 안에서 빙그르 돌다가 빈 공간에서 허물어질 뿐이다.
챗GPT, 클로드, 제미나이의 첨삭 결과는 지면상 아래 노션 페이지에서 참조하자. 노션 페이지에는 3가지 인공지능의 첨삭 피드백, 첨삭 결과를 볼 수 있고 3가지 인공지능의 첨삭을 비교한 결과도 있으니 참고하자. 그리고 팟 캐스트 음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래는 김영하 작가의 첨삭 스타일을 NoteBookLM이 팟캐스트로 제작한 음성이다. 이것도 틈나면 들어보자.
그리고 이런 프롬프트를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다면, 서점에서 『챗GPT, 글쓰기 코치가 되어 줘』를 살펴보자.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4539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