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캐슬 Aug 26. 2023

일본여자친구가 멘헤라였던 건에 대해-그녀의 말못할 비밀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가부키초의 토요코 키즈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과거의 나에게는 멘헤라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대부분은 '멘헤라'라는 말을 모를 것이다. SNS으로 인해, 과거보다 빠르게 일본의 신조어가 우리나라로 넘어오곤 한다. 과거의 모에나 츤데레, 얀데레, 오타쿠 등등에서부터 최근의 멘헤라가 있는데, 당연하게도 바다를 건너다 보니 일본에서의 의미는 희석되거나 더 일본 스럽게 해석되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멘헤라는 귀엽다거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정도의 매력으로 해석되는 것 같다.




일본에서의 멘헤라는 멘탈이 안 좋거나 우울증, 성격장애 등이 있는 속성을 의미한다. 10~20대의 여자아이들이 가정폭력이나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해 멘헤라가 된 경우가 많고 자존감이 낮다 보니 반대로 외모를 잘 가꾸어서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고스로리의 드레스를 선호하며, 외형은 최대한 인형처럼 꾸미는데 당연스럽게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눈에 뜨인다. 인형같은데 마음까지 약하니 내가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을 자극하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의 일본에서도 츤데레나 얀데레 등이 유행을 탔던 것 처럼 최근은 멘헤라가 유행하나보다. 일본은 처음에 안좋은 의미의 단어라도 인기나 돈이 된되면 점점 양지로 올라온다. 오타쿠가 사람들에게 안좋게 알려진 것도 범죄자와 관련이 있었고 비난의 용어였다가 이제는 무언가에 빠져있는 취미 정도로 해석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면에서 아노(ano, あの)라는 가수는 멘헤라를 캐릭터로 하여 일본 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시부야에서는 그녀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각종 버라이어티에서 아노의 진짜 성격은 무엇인지에 대해 대화를 하거나 그녀의 어둡고 특이한 리액션을 방송한다. 촬영을 하다가 법규를 날린다던지, 음식방송에서 맛없다고 말해버린다. 흐름을 봐서는 멘헤라를 MZ세대를 대표하는 모습으로 생각하나보다.




일본 가수 아노



하지만 실제 멘헤라는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멘헤라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하라주쿠에서 밥을 먹다가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더니, 한국인이냐며 먼저 말을 걸었다. 몇 달 뒤에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갈 것이라며 한국어를 모르니 친구가 되어달라고 했다. 일본 여행에서 이렇게 친구를 만드는 경우는 흔하지 않고 예쁘장한 외모의 그녀였기에 나도 싫지는 않았다. 그녀는 나의 모든 행동을 보면서 '역시 한국남자! 친절해!'를 외쳤다.




가게를 나올 때 문을 잡아주거나, 지하철역에 바래다주는 모든 것에서 한국남자는 친절하다며 감탄했다. 그럴 때마다 모든 남자들이 이렇지 않아?라고 물어보았는데 그녀는 일본남자는 전혀 문을 잡아주지 않는다며 한국 남자가 최고라고 말했다. 아마도 한국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와 헤어지고 남은 일정을 마친 나는 호텔에 돌아가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그 때, 그녀에게 라인으로 전화가 왔다. 새벽 1시쯤 되는 시간이었다. 일을 하는 중인데 심심하다고 했다. 새벽 1시에 일을 하는 직업이라면 몇 개가 있겠지만, 긴자의 고급클럽이나 카바쿠라, 걸즈바 등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런 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 조금 달랐다. 그런 종류의 직장이라면 새벽 1시에 심심할 틈이 없으며, 라인이면 몰라도 전화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편의점이나 24시 음식점, 호객 등은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 중이라도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다. 해당 시간에는 일만 해야한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무슨 일을 하길래 이 시간에 일을 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소X란도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그 당시의 나는 소X란도가 무엇인지 몰랐다.



"소X란도? 소X란도가 뭐야?"

"그거 하는 일이야."

"그거? 그거가 뭐야."

"남자를 기쁘게 해주는 일"



순수하게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일본을 잘 모르는 나를 놀리는 장난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155cm 정도의 굉장히 작은 체구였고 갓 고등흑고를 졸업한 지 수개월 정도 지난 아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쪽 세계에 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낮에 만났던 평범한 사람이 알고보니 풍속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순수하게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왜 그런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저 거짓말이라고 믿으며, 그녀의 말에 맞장구 쳐줄 뿐이었다. 그녀의 말을 믿기보다는 얼마나 부캐를 연기할 수 있는 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겉모습과 내 상식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믿지를 않자 그녀는 진짜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자신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작했기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거나, 하고 싶은 일은 없지만 돈을 벌고 싶어서 시작했다거나, 원래 하던 일에서 이쪽을 소개받아서 넘어왔다 등의 말을 했다. 그렇다면 원래 하던 일이란 무엇인가 말인가...




그녀는 고등학생 때부터 불법 걸즈바 같은 곳에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상의를 탈의하고 남성들과 술을 마시거나 대화를 하는 일이었는데 가게 사장님을 속이고 고등학생 때부터 일을 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구찌백을 사기 위해서였다. 내가 묻지 않아도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하나둘씩 풀어냈다. 당연히 나는 믿지 않았다.




삐---------------



그런 시답잖은 대화를 믿어주는 척 20분여 정도 통화를 이어갔을까. 핸드폰 너머로 강한 경고음이 들려왔다. 아니, 경고음이라기보다는 강한 알림 소리와도 같았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지만 20분여간 그녀의 말을 들은 터였기에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했다. 그랬다. 그녀는 처음부터 거짓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오빠, 나 갔다 올게"




그녀는 짧은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쿄의 어둠 속 빛: 가부키초의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