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고향 노들섬
사람은 자신이 오래 머무는 공간에서 정체성을 느낀다. 직장에 있으면 직장인, 병원에 있으면 의사 혹은 간호사. 학교에 있으면 학생이었다. 그렇다면 집과 카페를 전전하는 나는 뭘까? 내게는 정체성을 느낄만한 공간이 없었다.
간혹 지인들은 이런 내 상황을 부러워했다. 상사 눈치 볼 걱정 없고, 출퇴근길에 지옥철을 경험할 걱정도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 생활이 짧으면 낭만이겠지만, 길어지면 안정감을 잃는다는 거였다. 더군다나 그림이 수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하는 작업이 취미인지, 아니면 예술 활동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직업 정체성이 자주 흔들렸다.
공간의 필요성이 커질 때쯤, 글 쓰는 플랫폼 ‘브런치’에서 작업실을 제공한다는 공고문이 올라왔다. 무려 한강이 보이는 한강뷰 작업실이었다. 인원은 심사를 거쳐 선정된 12명의 작가였고, 기간은 3개월 동안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결과 발표 당일, 아침부터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이곳저곳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늦은 오후쯤 되었을 때, 기다리던 전화가 울렸다. 모집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이었다. 그렇게 생애 첫 작업실을 얻었다.
작업실은 노들섬 안에 있는 ‘노들서가’였다. 1층은 서점을 운영하고, 2층은 작업실이었다. 노들섬은 원래 출입이 되지 않던 곳인데, 이번에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처음 문을 열었다. 내가 사는 원룸에서 작업실까지는 보통 40분이 걸렸다. 6호선 지하철을 타고, 삼각지역에서 내린 다음 버스로 갈아타면 도착했다. 거리가 가까운 편은 아니지만, 매일 아침 작업실로 가는 그 길이 지루하지 않고 좋았다.
노들섬을 소개할 때면 매번 말머리에 ‘저의 두 번째 고향이에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고향은 한 사람의 뿌리가 되는 곳이고, 언제 가도 마음이 편안한 곳이다. 내게 노들섬이 그랬다. 그곳에는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과 작가라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업 성과도 좋았다. 네이버 그라폴리오가 주최한 공모전에 당선되어 매주 목요일마다 일러스트를 연재했다. 더불어 동료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열었고,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노들섬에 머물면서 ‘작가’라는 정체성이 단단해졌다.
한강 위로 노을이 지면, 작업실 빈자리도 하나둘씩 늘어났다. 나는 근처 편의점에서 저녁을 먹거나, 1층으로 내려가 노들서가 직원분들과 함께 먹었다.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을 식구라 했던가. 사실 나를 채운 건 이 공간이 주는 유용함보다 사람들과 함께한 따뜻한 밥 한 끼가 더 컸다.
작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은 곧바로 버스를 타지 않고 조금 걸었다. 노들섬에서 신용산역까지 정류장 수는 적었지만, 생각보다 거리는 꽤 길었다. 나는 그 구간에서 보는 야경을 좋아했다. 한강이 흐를 때마다 일렁이는 불빛이 좋았다. 빌딩에서 흘러나온 그 빛을 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 열심히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림이 직업이 된 이후로는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하루가 늘 아쉬워서다. 그런데 요즘은 달랐다. 아쉬움과 조급함보다 내일이 주는 기대가 더 컸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있다는 평범함이 좋았다. 그리고 그 평범한 일상을 주는 노들섬이 내게는 안식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