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지 니미부트르
논씨 니미붓(นนทรีย์ นิมิบุตร, Nonzee Nimibutr): 태국 영화의 불멸한 혁신가
태국 영화의 부흥자이자 태국 영화계의 전설
1962년 논타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단순한 흥행 감독이 아니라,
산업·미학·정체성이라는 세 층위에서 태국 영화를 다시 설계한 인물이다.
흔히 ‘태국 뉴 웨이브(Thai New Wave)’의 선봉장으로 불리는 그는,
1997년 데뷔작 '2499 อันธพาลครองเมือง'
(Dang Bireley’s and Young Gangsters, 댕버럴리와 그 일당들)을 통해
사실상 붕괴 직전이던 태국 영화 산업에
새로운 상상력과 투자 논리, 그리고 관객의 신뢰를 되돌려 놓았다.
30년의 세월 동안 그의 작품은
언제나 태국 문화의 깊은 뿌리를 응시하면서도,
그것을 박제하지 않고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번역해 왔다.
이 칼럼은 논씨 니미붓을 ‘성공한 감독’이나 ‘기술적 혁신가’로만 소비하지 않고,
그의 개인사·시기별 미학·산업 전략·윤리적 시선,
그리고 최근까지 이어지는 행보를 통해,
왜 그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이름'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이야기다.
25년 그의 친구로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지만
그의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은 거의 없다.
별 이유는 없고 친구이야기는 항상 뭔가 어색하다.
우리는 그를 애칭인 '우이'라고 부른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으니 '피 우이'라고 부른다.
지난 번에 '쁘랍다'에 관한 글을 써 보았더니
이번엔 '우이'에 관한 글도 써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의 영화작업 30년을 그의 친구로써
한번쯤 정리해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고
최근에 약간 뜸해진 연락을 이렇게나마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때는 피우이와 영화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나름의 기대로 항상 기다려지는 축제였는데 그마저도 우이가 잘 오지 않으면서 요 몇년은 잘 볼 수도 없었다.
그 사이 내가 태국 방문을 하였을 때 그의 딸과 함께 식사를 했던 것이 마지막이었나 싶다.
논씨 니미붓, 피우이!
내가 이 정도는 알고 있어!
이 글은 그래서 학술적이지도 않고 전문적이지도 않다. 그냥 내가 알고 있는 논씨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 주면 좋겠다.
다분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들려드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