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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라마 5세와 현대화: 서양의 영향
흥미롭게도 태국 자료들은 요일별 색깔이 현재의 형태로 정착된 것이 쭐라롱껀 왕, 즉 라마 5세(รัชกาลที่ 5, 1868-1910) 시대라고 명확히 밝힙니다. 이 시기는 태국이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근대화 시기였습니다. 태국의 근대화를 이끈 라마 5세는 태국을 '문명화된 국가로 만들기 위해 관습과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요일별 색깔 역시 현대적으로 재정립되었습니다.
원래 힌두 전통의 색깔은 매우 복잡했습니다.
예를 들어 목요일 신의 몸은 '노란빛이 도는 녹색'이나 금색이었고, 금요일 신은 '안개색'이나 구름의 색 혹은 흰색에 가깝게 묘사되었습니다. 이런 미묘한 색깔들을 대량 생산되는 현대적 의복이나 깃발에 적용하기 어려웠기에, 라마 5세는 이를 명확한 주황색(สีแสด)과 파란색(สีฟ้า) 등으로 규격화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토요일입니다.
태국의 전통 점성술 문헌인 '땀라 피차이쏭크람(ตำราพิชัยสงคราม)' 등에 기록된 창조 신화에서는 시바 신(พระอิศวร)이 10마리의 호랑이를 가루 내어 보라색 천(ผ้าสีม่วง)으로 감싸 토성 신(พระเสาร์)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화적으로는 보라색이 근본인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검은 색이 언급이 되는 이유가 있지요.
첫번째로는 토성은 점성술적으로 '어둠, 고통, 인내'를 상징하며, 힌두 원형에서도 검은색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과거 태국인들은 토요일의 색을 검은색 또는 매우 어두운 보라색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과거 천연 염색 기술로는 밝은 보라색을 내기가 쉽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 검게 변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검은색과 보라색이 엄격히 구분되지 않고 혼용되었습니다.
라마 5세 시대에 일어난 변화는 없던 보라색을 만든 것이 아니라, "검은색을 배제하고 보라색을 공식 국가 표준으로 확정"한 것입니다. 이유는
첫째, 서양인들이 검은색을 불길하게 여긴다는 점을 고려해 토요일의 색을 신화 속 원형인 보라색으로 바꿨습니다. 둘째, 복잡한 색깔들을 더 명확하고 국제적인 색으로 단순화했습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아는 7가지 색깔 체계입니다.
4. 라마 6세: 왕실에서 국민으로
라마 6세 시대에는 더욱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라마 5세가 체계를 정립했다면, 그의 아들인 라마 6세는 이를 '교양 있는 시민'이 갖춰야 할 예절이자 국가적 정체성의 일부로 장려했습니다. 그는 태국만의 독특한 전통을 강조하며 국민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기 위해 왕실의 전유물이었던 복식 에티켓을 대중에게 권장했습니다. 이때부터 요일별 색깔이 왕실의 전통에서 전 국민의 관습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5. 라마 9세와 노란색: 현대의 부활
20세기 중반 이후 이 전통은 다소 약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푸미폰 국왕 즉, 라마 9세의 즉위와 함께 극적으로 부활했습니다. 라마 9세는 1927년 12월 5일 월요일에 태어났기에 월요일의 색인 노란색이 그를 상징하는 색이 되었습니다. 2006년 즉위 60주년 행사 당시 수백만 명의 태국인이 자발적으로 노란 셔츠를 입으면서 이 전통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고, 이후 월요일마다 노란색 옷을 입는 문화가 완전히 정착되었습니다. 라마 9세가 70년이 넘는 재위 기간 동안, 특히 그의 생일인 12월 5일이 국경일이자 아버지의 날로 지정되면서, 노란색은 단순한 요일의 색을 넘어 국왕과 국가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습니다.
태국 정부는 아버지의 날을 상징하는 꽃으로 ‘덕 풋타락싸(ดอกพุทธรักษา, 칸나 꽃의 일종)’를 지정했는데, 이 꽃이 노란색이라는 점도 의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꽃의 이름에 '부처가 보호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 성군으로 추앙 받던 왕의 이미지와 노란색이라는 시각적 요소가 완벽히 결합된 사례이기도 합니다.
다행인지 현재의 국왕인 라마 10세 역시 월요일생이라 노란색은 여전히 '국왕의 색'으로서 강력한 위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