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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끼미 Oct 24. 2024

마르코의 토마토 파스타

한동안 흑백요리사 때문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프로그램에 푹 빠져 살았는데. 프로그램 종영 후, 우승자인 나폴리맛피아의 인터뷰 영상을 보다가 그가 나폴리에 산 세월이 1년 반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 순간 내 세계관 르르맨션.나폴리에서 나고 자란 완벽한 검머외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잖아!


내 완벽했던 흑백요리사 세계관을 무너뜨린 것에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나폴리맛피아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또 웃기는 짬뽕임.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그는 그 곳에서의 삶이 엄청 좋았나보다. 그 짧았던 나폴리 유학에 여전히 과몰입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동질감 느꼈다면 나 좀 오바인가. 아무튼 나는 그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교환학생으로 독일에서 8개월 정도 살았는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추억을 꺼내 먹으며 산다. 8개월, 1년도 채 안되는 기간이라 머쓱하긴 하지만. 내 어린 시절 한 편의 추억이 진하게 묻은, 언제 떠올려도 그리운 곳이니까. 나는 독일 내 마음의 고향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개월 밖에 안살았다고 말을 덧붙이면 다들 코웃음을 치지만, 아무렴 어때 내 마음이니까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하자.


교환학생을 갔던 당시 나는 독일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못했던 지라, 어서든 자주 깍두기가 되었다. 언어가 마음대로 안되니, 사람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 글로벌하게 즐기리라 다짐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외국인들 속에 자꾸 쭈굴해지고 마는 . 초라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 초라한 마음에 지지 않으려고, 학기 초엔 무리하게 이 파티 저 파티 기웃거렸다. 그렇게 파티에 다녀오고 나면 마음은 더 허해졌다.


언제부턴가 방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의 하우스 메이트 마르코는 그런 내가 신경이 쓰였던 지 나를 시시때때로 다이닝룸에 불러냈다. 마르코는 우리 또래 같지 않게 아줌마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오지랖도 넓고, 잔소리 하길 좋아하고. (청소에 얼마나 깐깐했던지, 조금이라도 그의 기준에 못 맞췄다간 귀에 피딱지 않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독일인보다 분리수거에 대한 기준이 엄격했으니 말 다 했지.)


그는 매 끼 파스타를 해먹는 진정한 이탈리안이었는데, 항상 내 몫까지 넉넉하게 요리했다. 1유로 짜리 브라우니 따위로 식사를 대신하겠다는 나를 식탁에 앉히고, 제대로된 끼니를 챙기는 게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설교하며 토마토 파스타를 내어주곤 했다.


 토마토 파스타는 그가 가장 자주 하던 요리. 그의 요리 중 레시피가 가장 단순한데 제일 맛있었다. 마늘 세알을 대충 썰어 살짝 노릇해질 때까지 올리브유에 굽고, 그 기름에 토마토 퓨레를 볶는다. 신선한 바질 두어 개를 손으로 대충 찢어 2~3분 정도 토마토 퓨레와 같이 끓이면 소스는 완성. 그는 토마토 파스타 항상 나비 넥타이 모양의 파르팔레 면을 썼는데, 숟가락으로 팍팍 떠먹을 수 있는게 롱 파스타와는 또 다른 매력.


그와 나란히 앉아 토마토 파스타를 시간이 좋았다. 있고 따뜻했던 기억. 지금에 와 돌아보면, 토마토 파스타는 마르코의 애정 표현이었. 사람들하고 안 어울리고 자꾸 방에 혼자 있는 내가, 독일의 추운 겨울에 도통 적응 못하고 자주 골골 대는 내가 못내 걱정 됐던 거다. 그래서 밥 먹자는 핑계로 날 자꾸 방에서 꺼 거지.


우리는 파스타를 먹으며 서로 어떤 곳에서 살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가족은 어떤 사람들인지, 별의별 이야기를 했다. 그 식탁에서의 시간을 매개로, 우리는 친구에서 식구가 되었던 것 같다.


학기 중 언 여행 가서는, 얼른 집에 가서 마르코의 토마토파스타를 먹고 싶단 생각 들길래, 이제 독일 집이 진짜 내 집처럼 느껴지나 보다 싶었다. 힘들 때  엄마 된장찌개를 그리워하듯, 마르코의 파스타를 떠올리게 될 줄이야.  나한테 그 파스타는 독일 생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파스타가 종종 생각난다. 특히 지치는 날엔 더더욱. 밖에서 몸도 마음도 데인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가 추천해줬던 그 토마토퓨레와 파르팔레면을 서 파스타를 해먹는다. 마르코가 컴컴한 방에 누워있던 나를 꺼내 파스타를 해먹였듯, 이젠 내가 나에게 파스타를 대접한다. 그러면 이 코딱지 자취방과 복작복작한 도시의 고민에서 잠시 멀어지고, 옛날 그 꼭대기 층 파란 얼룩무늬 식탁에서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 같.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보다 독일 생각을 덜 하고, 마르코와도 연락이 끊겼지만. 여전히 토마토 파스타를 먹으며 독일에서의 삶과 그를 추억한다. 이번 주말에도 해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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