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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사 Sep 04. 2024

부서짐과 복구 사이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우리 모두 영웅


중단된 삶/ 프리스턴 대학교를 갓 졸업한 스물두 살의 주인공 술라이커 저우아드, 급성 골수성 백혈병 암진단을 받음.


기적/ 4년간의 치료 끝에 완치판정.


생존 이후의 삶/ 홀로 24,140km에 이르는 자동차 여행. 투병기간 블로그와 연재 칼럼으로 알게 된 독자와 만남.




<엉망인 채 축제>에 대한 내용을 최대한 짧게 요약했습니다. 400쪽이 넘는 회고록을 단 몇 줄에 담을 수는 없음에도.

살아남았으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주인공. 질병으로 망가지고 부서진 삶을 복구하는 과정이 감동적이고 아름답다고 느습니다.


생존 확률 35%의 암과 복률을 알기 힘든 도박중독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중독과 회복 사이를 견주면서 읽게 되더군요. 중단된 삶과 생존 이후 회복의 사이, 간극을 어떻게 메꿔가는지 눈여.


주인공이 언론인으로 사회 첫발을 내딛으려고 해서 그런지 솔직하고 대담 글. 꼭 내 맘 같은 구절이 나올 때마다 밑줄 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소설 같은 이야기와 마음을 뗄 수 없는 박진감과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어쩜 그녀가 하는 말 족족 제 말 같아서 신기했습니다.


"치유란 과거에 남겨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치유란 앞으로도 항상 내 안에 살아있을 고통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되, 고통의 존재를 외면하지 않고 삶을 고통에 빼앗기지 않는 일이었다." 396.



예고 없이 찾아온 질병으로 예상과는 다른 삶을 살 때 그녀가 말도 도박중독,  결이 같아 놀랐습니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얻은 교훈으로 살아가야 단단해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 말.


"나는 병으로 인해 자의식을 버리고 겸손해졌으며 많은 교훈을 얻었다. 자기도취적이던 스물두 살의 내가 암진단을 받았을 받지 않았더라면 수십 년이 지나서야 깨칠 수 있었을 교훈이다. '세상은 모든 사람을 쓰러뜨리지만 많은 이들이 쓰러진 곳에서 더욱 강해진다.' 헤밍웨이의 이 말은 우리가 새롭게 얻은 교훈에 따라 살아갈 때에만 진실이 된다." 301.



미국 전역을 돌다 마지막으로 교도소 면회한 사형수가 주인공에게 던진 질문 질문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전부 없던 걸로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처음 그녀대답은 "모르겠다."였죠.

여정 끝에 질문을 곱씹은 술라이커 저우아드의 대답은 처음과 달라졌습니다. 마지막 단락에 이렇게 적고 있어요.


"아뇨, 나는 내가 아팠던 시간을 지울 생각이 없어요.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겪어야 했던 그 모든 고통을 없었던 일로 하지 않을 거예요." 433.




가던 길은 중단되었고 많이 부서졌습니다. 그걸 만회하거나 복구하기 쉽지 않지만 자신의 문제와 직면하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회복자'가 되고 '회복의 길'에 들어선 죠. 뒤돌아보면 넘어질 테고 무 먼 앞을 내다보면 좌절될 테니, 그저 발아래를 살피고 한 번에 한걸음만 떼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회복은 익숙한 과거를 벗고 다시 사는, 부활復活이네요.


"회복은 우리를 병에 걸리기 전 상태로 복원시켜 주는 편안한 자기 관리 같은 것이 아니다. 회복이라는 말이 암시하는 것과 달리 결코 예전의 나를 되찾는 일도 아니다. 회복은 익숙한 내 모습을 영원히 버리고 새로 태어난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298.


소장도서




부서짐과 복구 사이 고통을 어떻게 처리했느냐중요합니다. 부서진 것 그대로 되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형태로 다시 만들어합니다. 그대로가 아니라 완전히 딴 걸로. 된 곳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단도박을 하니 과거 한 때 화려했던 모습으되돌리고 지만. 인정받던 옛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겠지만. 미련이 남아있어서 그쪽 일을 알아보는 아들을 보니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아들도 자신의 처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근근이 살면서 회복활동을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남들만큼'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는 걸. 환자에겐 병을 치료하는 게 급선무니 병을 다스리며 살아야 한다는 걸. 일보다 회복이 우선순위, 그게 맞죠.



부서짐과 복구 사이, 고통을 딛고 일어선 사람은 영웅 될 자격이 있습니다. 도박중독과 회복 사이, 도박충동과 금단현상, 습관이 된 거짓말에서 벗어나 부서진 삶을 복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웅입니다. 뭔가를 이뤄내는 성공의 신화가 아니라 잃어버린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회복의 신화. 갬아넌의 가르침대로 가시 끝에 장미가 피어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가시와 같은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가는.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우리 모두 영웅입니다. 회복신화가 쓰여지고 있는 중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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