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자식들 키운다고 내 자식을 놓쳐버렸네. 내 아이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엄만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정년을 앞둔 초등학교 교사, 친구가 한 말입니다. 아들이 우울증이라며.
친구는 어려운 일이 생겨도 늘 무슨 수가 있을 거야, 방법을 찾으면 된다던 슈퍼 울트라 긍정 파입니다. 친구를 보면저렇게 할 수 있는 게 부럽고 나도 저럴 수 있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그날 친구의 마음이 어떤지 알겠어서 올컥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상담을하고 있었지만 정작 내 아이가 중독에 빠진 걸 나중에 알게 됐고 그때 그런 감정을 느꼈어서.
'어쩌다 이런 일이,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라고 시작된 질문은 점점 부풀어 올라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내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 데'로 커져갔습니다. 완벽한 엄마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여겼는데, 이제 와서 '정말 최선을 다한 거 맞아'라고 다그치고 있었습니다. 그래봤자 소용없다고. 누구나 한계는 있는 거라고. 고개를 가로저어도 좀처럼 자책감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때 알았더라면 달랐을까. 그때 너나 나나 그게 최선이었어."
자책감의 뿌리는 '엄마는 아이에게 무조건 잘해야 한다.''엄마는 완벽해야 한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살면서 겪게 되는 이런저런 사정에도 불구하고'엄마라면 마땅히 ~ 해야 한다'는 핵심 믿음은 그대로였습니다. 오히려 잘못을 뉘우치고 적당히 책망하면 될 일도자신을 비난하고 자기를 부정하곤 했습니다. 이게자해自害란 건 알았을 땐 이미 상처투성이였죠.
자책하고 자해하지 않으려고 그 뿌리, 핵심믿음을 고쳐 쓰기로 했습니다.내 상처에 내가 약을 바르고 손수 싸매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죠.
'엄마는 처음'이라 잘 몰랐던 거고, 어리고 미숙해서 그런 거라고. 다잘해야 한다는 억지를 부렸던 거라고.
앞으로쓸데없는 생각에 휘둘리지 말고, 엄격한 세상의 잣대로 자신을 생채기를 내지 말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자책감을 주는핵심믿음을 다시 설정하는데 도움을 준 작가가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소설가 박완서와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펄벅. 두 여성작가입니다.
박완서는 교통사고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벌을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잘난 아들을 두고 기고만장했던 교만에 대해 신이 내린 벌이라고. 펄벅도 정신지체아 딸을 '달래 지지 않는 슬픔'이라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와 <자라지 않는 아이>를 읽으면서 아들이 도박병에 빠지기 전 심정지로 중환자실에 있었을 때, 도박이라는 난치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들이 참척의 고통과 달래 지지 않는 슬픔을 어떻게 감내해 냈는지 궁금했습니다. 더 깊이 알고 싶었습니다.
책을 품고 읽고 난 뒤 제 짐작으로 이렇게 생각했죠. 엄마의 자책감을 글로, 통곡대신 글로흘려보낸 게 아닐까. 그래서 버틸 수 있었겠구나. 속에서 차오르는 말이 글을 밀어내토하듯 썼으리라.
나는 작가도 아니고 글쓰기에 대해 배운 것 하나 없지만 그냥 닥치는 대로 끄적거렸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글은 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죠. 고마운 일이었죠. 나에게 글을 써보는 게 좋겠다던 지인들의 말이 무의식에서 잠들어있다 빙산 위로 빼꼼 기지개를 켰나 봅니다. 쓰고 나면 마음이 편해졌고 문제들 사이에 자그마한 틈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문제에 딱 붙어서 안간힘을 썼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차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잘못해서가 아니라 네가 지금 힘들어서 그런 거야. 자책하지 말고 정신 차려.'
'모자란 게 정상이야, 완벽한 엄마는 없어, 엄마는 신이 아니잖아.'
엄마의 자책감.자식의 고통마저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엄청난 착각, 교만이었을까요. 마치 神이라도 된 양 굴었던 것은 아닌지. 내 자식에 관한 한 나는 神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차츰 자책감에서 벗어나자 저의 기도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신에게 달라며구하는 것자체는 그대로 변하지 않았지만달라고 하는 알맹이는 바뀌어 있었습니다.'해결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손'을 달라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