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망 Jan 13. 2024

한국에 가서 살 수 있을까


한국에서 5주 간의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지 열흘이 되었다. 새해를 맞고 한국을 떠나면서 굳게 먹은 마음은 벌써 조금씩 흐려지는 듯하다. 하지만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던 한국행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아니, 잊지 않아야 한다. 한국을 떠나기 이틀 전인 새해 첫날 남편과 걸으며 나의 결심을 이야기했다. 


"뉴질랜드로 돌아가면 한국에서 직장을 잡을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알아볼래."


쉽게 꺼낸 말은 아니었다. 수년 전부터 해왔던 이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일 뿐이다. 한국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 남편은 한국에서 사는 데 크게 거부감이 없었기에 부모님을 걱정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먼저 이런저런 방법을 제시했었다. 정말 고마웠지만 솔직히 그땐 내가 더 부정적이었다. 한국에서 경력이 단절된 사십 대 여자가 직장을 잡는 건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갈 이유는 부모님 하나지만 한국으로 가지 않을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우리는 이미 이곳에서 우리 삶을 쌓아 올렸다.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했다. 내 아이들이나 마찬가지인 우리 강아지들, 고양이들의 삶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한국행에서 나는 절실히 깨달았다. 지금 엄마, 아빠에게 필요한 건 일 년에 한 번 몇 주간 돌아와서 당신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딸이 아니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후딱 와서 도와줄 수 있는 딸이라는 것.


한국에 가서 엄마, 아빠와 함께 제주도와 푸껫을 다녀왔다. 제주도에 간지 이틀 만에 아빠는 감기에 걸렸고 엄마는 아빠 곁에 붙어있어야 했다. 치매인 아빠가 혹여 혼자 밖으로 나갈까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푸껫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그렇게 물을 좋아하던 아빠는 물에 발 담그는 일조차 하기 싫어했고 휴양지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투어를 몇 개 신청해서 해봤지만 덥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앉을 곳만 찾아다녔다.


나도 그런 아빠를 많이 신경 썼지만 그래도 모든 돌봄은 엄마의 손에 달려 있었다. 엄마는 아빠에게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었고, 그런 아빠는 엄마를 많이 의지했다.




그런 엄마,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결론은 한 가지였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꼭 같은 도시에 살지 않아도 좋다. 매주 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엄마가 필요할 때 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서만 살아도 충분하다.


심각하게 이야기를 꺼낸 나에게 남편은 서운해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거냐며, 덜컥 직장이 잡히기라도 하면 어쩔 거냐며.


나와 남편은 생각이 달랐다. 나는 과연 한국에서 직장을 잡는 게 가능할지 모르는 문제이니 그냥 알아나 보겠다는 마음이었지만, 남편은 그러다가 덜컥 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건지가 문제였다. 한참을 이야기했지만 답이 없는 문제였다.


뉴질랜드에 돌아와서 몇몇 친구들, 지인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 모두 내가 부모님을 걱정하는 모습을 봐왔기에 조언도 해주고 응원도 해주었다. 남편도 내 말에 수긍을 한 듯, 한국으로 가는 준비에 관한 이야기를 슬쩍슬쩍 꺼내기도 하지만 아직은 고려해야 할 것도, 알아봐야 할 것도 너무 많다.


하지만 어떤 길로 가더라고 후회하는 게 삶이라면 그래도 덜 후회하는 길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한국 온 지 2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