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던 해연이, 믿음직했던 해연이, 고맙다 해연아!
훈련 준비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해연의 휴대전화가 아침부터 요란스럽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전화를 끓고 들어온 녀석의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피난대피인원 파악 문제로 녀석과 크게 다투고 아직도 녀석과 풀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나란 이는 못났다.’
당시의 나는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차라리 내가 신경을 안 쓰는 게 녀석에게 도움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기도, 녀석과 사소한 오해를 풀 정도의 여유조차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부족한 잠과 극심한 감정기복으로 바닥이 어딘지, 바닥이 있기는 한 것인지 조차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해연의 전화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녀석은 나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할 정도로 할아버지를 매우 좋아했다.
녀석에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나도 어른께서 굉장히 멋진 분이 구나라 생각될 정도였으니
피난대피인원확인은 해연이 혼자 하기 어려울 듯하여 준비는 해연이가 했지만
집계와 확인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이가 함께 하기 위해 업무 논의를 마치고 있던 터여서 다들 해연이에게 가보는 것이 좋겠다 이야기했다.
하지만 녀석은 완고했다.
훈련이 끝나고 가겠다 한다.
주위에서 여러 번 만류하였지만 녀석은 완고했다.
나도 걱정은 되었지만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녀석이 고맙고, 걱정스러웠다.
중간, 중간 호운이에게 녀석의 상태를 들었다.
평상시와 같다 했다.
다행이다.
저녁 6시가 되었고 훈련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가상의 화재가 발생되었고, 이에 따라 각자의 집결지로 모였으며, 인원 대피 현황은 속속 집계되었다.
다소 혼선이 있었지만 해연이가 준비한 피난대피인원 현황 집계 프로그램은 완벽하게 자기 소임을 다했다.
아니, 준비한 해연이가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것이지 하하하
‘훗날, 해연이의 피난대피인원 현황 집계 프로그램은 자신을 탄생시켜 준 해연에게 작은 보답을 하게 된다.‘
해연은 훈련 뒷정리를 마치고 서둘러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갔다.
녀석이 내심 자랑스럽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이튿날 녀석에게 SNS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녀석은 씩씩하게 대답해 주었고 잠깐의 통화로 이어졌다.
"해연아! 고생했다. 끼니는 안 거르고 있지?"
"예, 제가 끼니를 거르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싫어하시잖아요!" 녀석 다운 말이다.
"그래, 잘 보내드리고 이따 보자"라 했다.
녀석과 나는 그렇게 풀어졌다.
어쩌면 해연이 할아버지가 내 손녀와 잘 지내야지, 이봐 젊은 친구! 하시며 손을 내밀어 주신건지 모르겠다.
해연이가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출근했다.
"잘 보내드렸어?"라고 했더니 녀석이 나를 쳐다보며
"오빠가 선배 정말 멋있대요"
"야! 무슨 뜬금포 없는 소리야, 너 어디 아파, 아프면 더 쉬었다와"하니 녀석이 웃는다.
거리도 거리였지만 당시의 나는 누군가를 위로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내 역할을 하고자 했다.
아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해연아! 못 가서 많이 미안하다."라 했더니 녀석은 오신다고 했어도 못 오게 말렸을 껄요라며 웃는다.
거리가 얼마나 먼데, 어디서 어디를 오겠다는 거냐며, 너스레를 떤다.
이렇게 녀석과 또 한 번의 다툼과 화해를 했다.
우리 앞에 몇 번의 다툼과 화해가 남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몇 번의 다툼과 화해가 있더라도 나에게 녀석은 나의 자랑으로,
믿음직한 친구로, 사랑스러운 동생으로 내 곁에 있어줄 것이다.
이렇게 부족하고 못난 오래비라도 계속 곁에 남아있어 줄 거지? 해연아!
혼내고 나무라지만 항상 네가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럽다.
소설 속, 드라마 속 멋진 선배이기도, 동생들을 지켜주는 멋진 형이기도 오래비이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너희에게 배우고 도움받는 선배라 많이 부끄러워
그렇지만 항상 최선을 다할게!
네가 많이 고맙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