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모자라고, 부족했지만 나는 여기까지!
민관소방합동훈련이 끝났다.
이제 마지막 남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면 올 한 해가 마무리될 것 같다.
건강증진우수사업장 결과발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국에서 신청한 수많은 사업장 중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이 그리 쉬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었고,
최선을 다하였음에 만족하자라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그리 초조하지도 긴장되지도 않았다.
호운과 해연도 각자의 자리에서 항상 그러했듯이 최선을 다해주고 있었고,
나 역시 잊은 일들을 없는지, 혹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은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우리에게 어느 하루 치열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으랴만 치열함 속에 작은 평화가 있었다면 이때가 아니었을까
더불어 나의 발령 일자도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4년여간 대한민국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물류기지의 안전관리자로 참 아등바등 지내왔다.
여름, 호운과 2년여를, 해연과 1년여를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고, 그 사건사고를 고민하고, 해결하며, 많은 것을 배우기도, 상처받기도 했다.
참 다시 '20년의 그 뜨거운 여름으로 돌아가라 한다면 선뜻 돌아가겠다, 이제 잘할 수 있다 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사건·사고의 소용돌이에서 여름이 내 곁을,
여름이 떠난 자리를 호운과 해연이 지탱해 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떠날 준비를 할 때인 듯하다.
생각이란 것이 참 간사하다.
떠나야 할 때가 되니 떠나고 싶지 않다.
호운과 해연에게 아직 알려주어야 할 것들이 잔뜩 남은 것 같다.
녀석들과 다투기도, 화해하기도, 웃기도, 울기도 하며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하루하루를 버티듯 지내온 지난날들이 아니었던가
인수인계 준비를 하며, 미리 준비해야 할 것과 시급한 과제를 함께 확인하기도,
호운, 해연과 나름의 시간을 보내려 했다.
녀석들 역시 나와 헤어짐(?)이 아쉬운 것이었던지, 잠시 쉬어가고자 함이었는지 곧장 시간을 내어주었다.
신이 나에게 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시간이었고, 소소한 행복이었다.
아, 이상하다.
신이 나에게 허락해 주신 행복은 항상 길지 않았기에,
이번 역시 그리 오래가지 않겠지라 생각하며, 오늘일까? 내일일까?
선물 같은 시간의 끝은 언제일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나의 걱정은 아무런 의미 없는,
호운의 표현을 빌린다면 무쓸모한 것이었다.
때마침 건강증진우수사업장 심사결과가 발표되었다.
결과는 물론 '선정'이었다.
연이어 좋은 소식이 이어졌다.
민관소방합동훈련에 공훈이 있기에 호운과 해연이 소방의 날 표창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4년여 동안 대한민국, 아시아 최대 규모의 물류기지의 안전관리자로서 겉보기에만 화려했던
정작 나에게 아무런 실속이 없던 이 시간들을
내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마냥 책임과 의무만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고, 그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적절한 보상을 받았음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건강증진우수사업장 선정과 두 녀석의 수상 소식에 펄쩍펄쩍 뛰어다녔었다.
호운이와 해연이는 누가 보면 내가 상 받는 줄 알겠다며 핀잔을 주었다.
녀석들이 그렇게 좋으냐고 묻는다.
"당연하지, 이제 내 역할을 다 한 것 같다. 사막의 길 잃은 방랑자가 우물을 찾은 것 같고,
험난한 폭풍우 속에서 무지개를 본 것 같다."
녀석들이 참지 못하고 한 마디 보탠다.
"형님처럼 무뚝뚝하고 업무 지향적인 분이 가끔씩 적응 안 될 때가 언제인지 알고 계십니까?"
"적응 안 될 때가 언제지"
"지금요"
녀석들이 나를 그렇게 보아왔나 보다.
무뚝뚝하고, 업무 지향적이며, 항상 날이 서있는,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내 어깨 위에 올려져 있던 짐을 온전히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뭐, 아무렴 어때 지금의 나는 가장 행복하고, 이 행복을 실컷 느끼고 싶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