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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거움을 내려놓는 연습

by 박가을



중환자실에 있을 때 내 침대 양옆으로

4~5명의 환자가 누워 있었다.


오른쪽 옆 아저씨는 목구멍에 심은 호스를 통해

죽을 먹어야 했다.

이마저도 간호사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아 보였다.


먹기, 걷기, 마시기, 싸기, 움직이기, 말하기 등

당연하게 여겼던 기본 행위들은

중환자실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나를 포함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들이었다.


이들 속에서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여기 있는 사람 중 과거에 성공했거나

부자였거나 존경을 받았거나

명예와 지위를 누렸던 사람들도 있겠지?’


인생이 평온할 때 ‘나’의 존재가 튼튼하고

내 삶이 견고한 줄 알았다.


하지만 죽음과 고통 앞에서

한 인간의 존재와 인생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사라질 수 있음을 체득했다.


중환자실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인간 자체의 가벼움과 인생의 허무함을 통감했다.


삶의 시작과 마지막은 가벼운데

왜 우리는 사는 동안 그토록 무겁게 살아갈까?


‘그래야만 한다.’라는 당위성 때문에

인생을 무겁게 대한다.


나 역시 가벼운 것을 스스로 무겁게 만들어

고통을 자처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남녀의 사랑과 삶을 통해서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가벼움을 추구하는 남자 ‘토마시’는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무거움을 추구하는 여자 ‘테레자’를 만나면서

사랑의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갈등한다.


토마시는 의사 직업을 버리고

테레자를 따라 시골로 내려간다.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말한다.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원인이야.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나 때문이야.

당신의 임무는 수술 하는거야!”


이에 토마시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임무라니, 테레자,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책을 읽으면서

[세상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라는 진리를

깊이 깨닫는다.


어두움과 밝음, 기쁨과 슬픔, 긍정과 부정,

선과 악, 행복과 불행, 미와 추, 차가움과 뜨거움.

이러한 두 측면은 결국 모두 하나로 드러난다.


인생을 살아가는 일은 기적처럼 특별한 일이지만,

꼭 엄청난 의미가 있는 일도 아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한낱 작은 먼지 같기도 하고,

안에 소우주를 품을 만큼

고귀한 존재이기도 하다.


인생은 짧게 느껴지기도 하고

길다고 느낄 때도 있다.

사람은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복잡하다.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일도 맞고,

운명의 흐름에 내맡기면서

가뿐하게 사는 일도 옳다.


지금 내 삶의 무게는 가벼운가? 무거운가?

인생은 한순간 피었다가 지면서 날아가 버린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양초처럼

아름답게 불타는 것이다.


오늘도 삶의 무거움을 내려놓는 연습을 반복한다.

우리는 오직 한 번만 살다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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