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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Dec 03. 2018

저는 아이스크림폰을 씁니다.

편리의 기준을 나에게 두고 싶습니다. 제게 편리는 마음의 편안함입니다.

편리의 기준을 나에게 두고 싶습니다. 제게 편리는 마음의 편안함입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습니다.

 2009년부터 김태희 아이스크림폰으로 불렸던 자그만 슬라이드폰을 쓰고 있습니다. 은행에 체크카드를 만들러 갔던 날, 은행원은 문자를 보냈으니 확인해달라고 했습니다. 문자에는 앱 설치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보여주자 은행원 눈동자에 지진이 일었습니다. 당혹감 어린 얼굴로 저와 휴대전화를 번갈아보더니 “참..참..유..유니크 하시네요”라고 했습니다. 그대로 써왔을 뿐인데 변하지 않은 것을 다른 것, 오래된 것을 신기한 것, 오히려 새로운 것이라고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오래 된 것을 쓰기 때문에? 최신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아니요. 휴대전화를 꺼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부담스럽고 몰려드는 관심이 부끄러워 얼굴이 후끈해집니다. 반응은 비슷합니다. ‘어머나!’ 놀람, ‘왜?’ 호기심 또는 추긍, ‘아이고’ 측은함도 가끔 있습니다.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기 지칠 때도 있습니다. ‘그냥’ 써왔을 뿐인데 사람들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나 봅니다.


튼튼합니다.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휴대전화가 고장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 기능에 문제가 없고 사용자가 불편함,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 계속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사람들은 묻습니다. 불편하지 않느냐고? 글쎄요, 저는 멀쩡한 것을 두고 새것을 취할 때 마음 한켠 생겨났을 불편함이 더 컸을 것 같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면 안 쓰고, 덜 쓰고, 오래 써야 하는 거잖아요. 오히려 묻고 싶습니다. 스마트폰은 정말 편리한가요? 스마트한가요?


스마트한가요?

있죠, 스마트폰은 제 휴대전화에 비해 크고, 무거워서 가지고 다니기 불편해요. 전기는 얼마나 많이 먹는지 보조 배터리까지 필요하다죠. 충전기는 필수품. 어디를 가든 화장실보다 플러그 위치를 먼저 찾더군요. 제 휴대전화는 충전 한번이면 하루, 이틀도 끄떡없습니다. 스마트폰의 고도화된 기능은 인정합니다. 컴퓨터나 다름없죠. 화질 높은 사진도 찍을  있고요. 값도 그만큼 높고. 그런데 있죠. 세상에 공짜는 없다더니, 다양한 편리를 주는 대신 스마트폰이 우리에게서 뺏어가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랄지, 관계랄지, 풍경, 감각. 제가 보기에 스마트폰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잊게 해요. 덕분에 보이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일상의 온기는 줄어들었죠.


속도를 선택하다.

스마트폰은 확실히 속도를 당겼어요. 빠르게 찾아보고, 확인하고 바로 응답해야 하는 시대. 우유부단하고 생각 많은 저는 그 속도가 버거워요. 제 속도와 시간, 온기를 지키고 싶어요. 전화와 문자, 기본에 충실한 아이스크림폰은 저를 재촉하지 않아요. 사회의 속도에 따르지 않으려면 저항력이 필요하잖아요. ‘그 속도가 싫다’고 말할 용기가 부족한 저에게 아이스크림폰은 든든한 방어막이 돼주죠.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안하는 게 아니라 피쳐폰이라 못하는 거라고 하면 귀찮은 질문을 피해갈 수 있거든요. 글을 쓰다 보니 명확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아이스크림폰을 쓰고 있는 건 고장이 없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제 속도를 방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요. 사진, 지도, 기프티콘 같은 대용량 문자를 받으면 파일이 깨지는 문제가 발생하지만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요. 제가 새로운 속도를 찾을 때까지 지금 쓰고 있는 아이스크림폰이 고장 없이 버텨주었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사회의 속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시스템
6년 전, 대학 마지막 학기를 다닐 때 일입니다. 학교도서관 입구 학생증으로 이용자를 확인하던 기계가 스마트폰을 들이대야만 하는 기계로 바뀌었습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저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경비아저씨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별도의 확인절차를 거쳐야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일방적인 행태에 무례함을 느꼈습니다. 새로 도입된 시스템은 비효율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쓰는 학생들도 앱이 구동되지 않거나, 휴대폰이 꺼졌을 때는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문제없이 유지되던 시스템을 거둬내고 새로운 시스템은 구축하는 데는 비용이 발생했을 뿐 아니라 이용자 확인절차에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하게 됐습니다. 사회의 속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시스템은 이처럼 무례하고 무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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