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려 정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려 다 봤다. 나무계단과 돌계단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무 계단을 한 계단 두 계단 걷기 시작했다. 중년의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정하게 걷고 있다. 여성의 얼굴빛이 밝고 애교가 넘쳐 보였다. 앞서 가는 남성에게 손을 내민다. 그는 웃음 띤 얼굴로 여성의 손을 잡고 앞에서 끌어 준다. 중간에 쉬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머리가 히긋히긋한 어르신이 양손에 스틱을 잡고 조심스레 계단을 오르고 있다. 한쪽 발이 아픈지 걸음이 불편해 보이는 분도 한 손에 잡은 스틱을 짚어 가면서 계단을 오르고 있다. 계단을 오를수록 쉬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계단 끝자락에 가면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모두들 얼굴이 밝아 보인다.
끝이 보이지 않는1442계단
높게 솟은 봉우리에는 구름이 걸려 있다. 구름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춤을 춘다. 봉우리 끝에 걸려있는 짙은 구름이 천지에 내려앉으면 호수를 볼 수 없다. 봉우리에만 계속 걸려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오르고 또 오른다. 봉우리 아래쪽으로 눈길을 돌렸더니 길게 뻗은 완만한 연녹색의 능선이 펼쳐져 있다. 계단 주위에는 키 작은 야생화들이 노랑꽃밭, 분홍꽃밭을 무리 지어 만들어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고, 시원한 바람의 날갯짓은 발걸음에 힘을 더한다.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중장년으로 보이는 분들이 많으나, 청소년과 노인분들도 상당히 있다.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걷는다. 백두산은 명산을 넘어 영산이다. 우리 한민족에게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도 그렇다. 고조선, 고구려와 발해부터 현재까지 우리 민족은 수천 년 동안 백두산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기에 백두산은 동경의 대상이다. 중국에서는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발생지가 백두산과 만주로 한때는 신성한 지역으로 접근도 못하게 했다. 백두산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령한 산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온다. 또한 정상 부근까지 자동차로 올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방문이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백두산 천지를 보려는 사람들
한참을 올라왔다. 아직도 산봉우리 끝에는 짙은 구름이 걸려 있다. 옆으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멀리서 눈에 들어왔다. 전망대 인듯하다. 천지를 전망할 수 있는 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천지 날씨가 수시로 바뀐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이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정상에 도착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천지를 전망하기 위해 안전바옆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천지를 전망할 수 있는 틈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솟아 오른 봉우리들 안쪽으로 옅은 구름에 감싸인 거대한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아야 천지 둘레가 보이는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금방이라도 산봉우리에 걸려있는 짙은 구름이 내려와 호수를 숨길지도 모른다 마음에 먼저 눈과 마음에 담았다. 사진과 동영상도 찍었다.
얇은 구름옷 입은 신비로운 백두산 천지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천지를 향해 버튼을 둘러댔다. 천지 풍경과 자신들의 기념사진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나는 시야를 더 넓게 펼쳤다. 하늘과 구름과 봉우리와 바람과 천지(天池)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빙둘러보며 아름다움을 눈과 마음에 새겼다. 호수 반대 방향인 산 아래쪽도 한 폭의 그림이었다. 길게 늘어선 능선은 싱그러움을 품은 야생초 정원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천지(天池) 표지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표지석 앞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옆쪽을 보니 또 다른 표지석이 있었다. 사람들이 덜 붐볐다. 표지석 옆에 서서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려오려고 몇 걸음 걸었는데 좌측에 표지판이 보였다. 중국어와 영어로 "등정에 성공하다니 정말 멋있다! 해발 2,470미터"라고 쓰여있다. 이렇게 높은 산 정상에 거대한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니 신비로울 따름이다. 백번 와야 두 번 천지를 볼 수 있어서 백두산이라고 할 만큼 천지를 보기 어렵다는데 한 번 와서 바로 봤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지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하산이다. 내려갈 때는 돌계단이다. 계단을 올라올 때 힘들어서 남성의 도움을 받았던 여성도 내려갈 때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녀는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 클로즈업하고 있다. 내려가는 사람들의 가벼운 발걸음과 당당한 뒷모습에서 '나는 천지를 본 운 좋은 사람이야 '라고 하듯이 뿌듯함이 느껴진다. 올라올 때와는 다른 아름다운 풍경화가 앞에서 맞이해 주고, 돌계단옆에 핀 야생화꽃들이 환송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