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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토지, 최참판댁 가는 길

부산역에서 하동군 평사리 최참판댁까지

by 꿈꾸는 철이

오늘은 평사리 최참판댁 가는 날이다. 기차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중식당에서 나와서 지하철 부산역으로 향했다. 마음이 급하니 발걸음도 빨라졌다. 부산역에 도착하여 서면 방면으로 교통카드를 체크하고 으로 들어갔다. 부산지하철 1호선을 타고 부전역에 도착하여 1번 출구를 나와서 5분여를 걸어서 기차역 부전역에 도착했다. 기차 출발 20분 전으로 약간 여유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한 점심을 충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식사대용으로 다이제스티브초코와 음료를 구매하여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순천행 무궁화호 기차가 를 환영하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승객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두 량이었다. 기차에 탑승하기 전에 플랫폼의 벤치에 앉아서 음식을 먹었다. 기차가 출발하기 2분 전에 탑승했다.


기차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예매할 때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는데, 실제로는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무궁화호를 오랜만에 타서 그런지 약간 여색하면서도 정겨다. 기차는 출발예정시간인 13시 24분에 정확히 직이기 시작했다. 사상역, 구포역 등을 경유하면서 빈자리는 채워졌다. 이후 창원역, 진주역 등을 거쳐 하동역에 오후 4시 4분에 도착했다. 평사리의 최참판댁을 가기 위한 버스를 타러 하동역 인근의 하동버스터미널로 걸어갔다. 평사리 가는 버스는 5시 10분에 있어 한 시간가량 기다려야 했다.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 보니 버스 탑승 후 50분 정도 소요 됐다.


버스터미널에는 간식 등을 살 수 있는 편의점이 없었다. 식당도 보이지 않았다. 하동 터미널에 기본적인 편의시설이 없음을 알고 나서 평사리에 가면 저녁식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로 숙소에 전화를 했다. 숙소에서는 오후 5시 30분 이후에는 인근식당에서 식사를 못 할 수도 있으니 하동읍에서 밥을 먹고 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터미널 내에 간판은 없으나 식당같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버스 기사들게만 식사를 제공하지 일반인들에게 음식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밥 먹을 수 있도록 부탁했다.


그분이 버스시간이 몇 시냐고 물었다. 내가 버스시간을 말했더니, 리에 앉으라고 말하며, 끓여 놓은 게 동탯국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감사합니다고 말하며 의자에 앉았다. 밥, 동탯국, 멸치볶음, 깻잎김치, 배추김치, 연근 조림, 파래무침 등이 나왔다. 동탯국은 담백했고, 멸치볶음은 고소했다. 깻잎김치, 배추김치 등 반찬이 정갈하고 맛있었다. 파래 무침만 밥이 없어서 남기고 밥과 국, 모든 반찬을 남김없이 먹었다. 몇 년 전에 충남 당진의 한 식당에서 식사 후 오늘같이 남김없이 먹고 나서 빈 그릇을 사진 찍어서 구글 지도에 올렸더니 조회수가 거의 만회가 되었다고 밥을 차려준 분에게 말했더니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식비를 지급하면서 감사의 마음도 함께 전하고 나왔다.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나왔더니, 평사리를 경유하여 쌍계사로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요금이 100원이어서 공짜로 타는 기분이었다. 버스안에는 도시의 시내버스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이 있었다. 물품 등을 놓을 수 있도록 스텐으로 만들어진 직사각형의 틀이었다. 지역적 특성과 탑승자들의 필요를 반영한 편의장치로 보였다. 작지만,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버스 안에는 세 명밖에 없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사람이 적고, 편의시설이 없을 때처럼 허전함이 느껴졌다. 버스가 읍내에 도착하자 성인들과 청소년들이 열댓 명 탔다. 빈자리는 한 두 자리만 남았다.


나는 버스 안의 사람들을 살펴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안해 보였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내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는 입으로 무엇인가를 움쭐거렸다. 나는 그분이 보고 있는 핸드폰 쪽으로 눈을 슬쩍 옮겼다. CNN을 보며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분은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외국어를 배우는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버스에서 내리는 학생들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다음에 내리는 청소년도 내리면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다. 버스에서 내리는 어른도 인사를 한다. 그동안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참 아름다운 하동이 느껴진다.


터미널에서 탑승한 지 20여 분 만에 최참판댁 정류장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주변을 살폈다. 소설 토지에서 최참판댁이 소유했던 널따란 평사리 들판이 펼쳐져 있다. 들판의 오른쪽 끝자락에는 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 너머는 섬진강이다. 들판이 풍요로울 수 있는 것은 생명수인 섬진강이 있기 때문이다. 하동이라는 명칭도 섬진강이 기준이다. 하동(河東)은 섬진강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평사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초입을 지나서 조금 걷자 큼지막한 박경리토지문학비가 광개토대왕비 같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는 길가에 농산물 판매소, 전통복 판매가게, 카페, 식당 등이 있었다. 더 오르자 소설의 배경이 됐던 마을이 실감 나게 조성되어 있었다.


숙소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6시경에 숙소에 도착했다. 부산 부전역에서 1시 24분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출발하여 4시간 30분 정도만에 도착하였다. 체크인하고 방에 짐을 놓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숙소의 옆문을 통해서 대밭옆 산책로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우측으로 규모가 큰 기와집이 보였다. 들어가 보니, 소설의 최참판댁이었다. 사랑채라고 쓰인 표지판에 소설의 내용 간략히 기재되어 있었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가서 둘러보았다. 최치수가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이다. 그곳을 나와서 안채를 보고 있는데, 관리자가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서둘러 나왔다. 어둑어둑한 길을 따라 숙소 향해 걸었다.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해져 있었다. 나는 뒤로 돌아 서서 평사리 들판을 바라봤다. 섬진강과 지리산 줄기로 둘러 싸인 평사리들판은 어둠이 덮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불빛들이 밤하늘의 은하수같이 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토지 위에 수천 년간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빛이 내 눈에 비쳤고, 내 마음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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