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이 말하는 사연-2
오늘처럼 나의 새벽은 언제나 리브와 함께이다. 사실 리브는 유기견이었다. 리브는 내가 죽고 싶었을 때 나를 구해주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의 하루일과 중에서 대부분은 내가 필요 없는 일들이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고, 내가 없어도 누구도 불편하지 않으니까. 유일하게 내가 필요한 곳은 리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리브를 만났던 때가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학교를 더 이상 가기 싫어진 어느 날, 나는 할머니 몰래 집 주변을 배외했었다. 그 시절에는 항상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까 초긴장 상태였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총 3번의 골목길을 지나 건널목 한 번을 건너고, 마지막으로 저 멀리 문방구가 보이면 도착이었다. 나는 총 3번의 골목길을 지나 건널목은 건너지 않고 왼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오래된 철물점이 있었다. 거기서 한참을 서서 농기계에 펴있는 거미줄을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날도 철물점 주인에게 들키지 않게 한쪽에 숨어서 가장 커다란 거미줄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미줄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걸 바라볼 때가 가장 좋았다. 거의 매일 이 거미줄을 보러 오지만 한 번도 거미를 본 적은 없었다. 딱 그날을 빼고는.
그날은 거미줄을 관찰하느라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까지도 나만의 세상에 빠져있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나방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드디어 나방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초집중 상태가 되어서 나방을 관찰했다. 처음에는 날개 한쪽이 거미줄에 걸린 것이다. 그냥 툭툭치고 빠져나오면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방은 당황했는지 더 크게 날갯짓을 했고, 그 순간 나방의 날개는 거미줄에 더 얽혀 구속되고 있었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단단히 구속되어 갔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거미가 천천히 나방에게 다가갔다. 난 그 순간 의문이 들었다. 난 나방일까? 아니면 거미일까? 아니 질문이 틀렸다. 난 나방이 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거미가 되고 싶은 걸까?
난 그때 알고 있었다. 난 거미가 되고 싶다. 거미가 입을 열어 나방을 먹어치우듯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 거미는 그저 살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나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나도 살고자 하는 것뿐이다. 정말 모르겠다. 나도 이렇게 입을 닫고 살다가는 언제가 그 죽음의 기운이 나를 먹어치울지도 모르지. 그러면 내가 나를 먹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대신 누가 나를 먹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리브를 만났다. 그 당시에도 제법 덩치가 큰 개였다. 난 평소라면 진저리를 치고 도망갔겠지만 그날은 달랐다. 왠지 리브가 나를 먹어줄 거 같았다. 저 덩치라면 엄청나게 많이 먹겠지? 난 리브에게 다가가 나의 왼쪽 팔을 내밀었다. 녀석은 많이 배고파 보였으니까. 하지만 리브는 내 팔을 핥아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감각이었다. 촉촉하고 따뜻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리브가 내 팔을 핥아주었을 때, 무엇인가 팔에서부터 심장을 타고 내 고장 난 머릿속을 헤집는 거 같았다. 녀석은 그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살려주었다.
난 주머니에 있던 소시지를 꺼내서 나의 팔대신 내어주었고, 리브는 한입에 꿀꺽 삼켰다. 그때 어떤 여자아이가 다가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에게 화를 냈고, 난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리브를 키울 생각은 없었다. 떠나는 나를 녀석이 계속 졸졸 따라왔지만 나는 절대 키울 생각이 없었다. 길을 따라 집으로 가기 3번째 전의 골목길 앞에 섰을 때 나는 더 이상 리브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 문제는 내가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데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애꿎은 손짓발짓으로 아무리 리브를 설득해 보아도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놀자는 뜻이라고 생각했는지 더 힘차게 꼬리를 흔들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난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뛰었다. 하지만 개보다 빠를 순 없었다. 달리고 달리다 마지막 골목길에 다다르기 직전에 난 넘어지고 말았다. 몇 초간 흘러갔던 찰나의 시간들이 기억난다. 할머니에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미웠다. 미웠지만 말하지 못했다. 말하면 할머니가 나를 버릴 거 같아서였다. 넘어지면서 짚은 손바닥이 아스팔트에 갈려 선홍빛 빗살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바람결에 날리는 서늘한 피냄새가 지하실의 오래된 쇠파이프 냄새 같았다.
이 정도 아픔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어서 난 울지 않았다. 다만 순간적으로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짧은 비명을 내지른 것뿐이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난 나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난 소리 칠 자격이 없다. 그것뿐이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아니 리브만이 있었다. 난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내 목소리의 어둠이 닿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는 사실을.
[ 03화로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