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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Aug 04. 2024

사신과 세이렌의 이야기 (08화)


사신이 말하는 동물병원에 처음 방문한 날


어두운 새벽의 한가운데에서 눈뜬다. 내가 눈을 뜨면 언제나 리브가 곁에나를 반겨준다. 최근 들어서는 활동양이 예전만 못한 거 같지만, 그래도 마룻바닥에 들러붙어서 꼬리만큼은 열심히 반겨준다. 그렇게 도끼눈 뜨고 나를 올려다보는 리브를 보면 마치 처음 사랑받아본 사람처럼 아직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리브 잘 잤어? 너 귀가 조금 불편하나? 새로운 수의사 선생님이 너 귀가 조금 안 좋대. 내가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너 관리해 주던 선생님께 이것저것 더 요청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해야 는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못 하잖아. 내가 이렇게 수다쟁이인걸 세상사람들은 영원히 모르겠지? 어때 넌 내가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 같아?” 리브는 바닥에 앉아있던 내 무릎 위에 턱을 올리고 다시 나를 올려다본다. 마치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나를 위로하고 있는 거 같다. 난 리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오늘 산책하고 빗질하자. 오늘 동물병원 가서 진찰받는 날이야. 너도 좋지?” 산책이란 말에 리브는 벌써 상황을 파악하고 현관으로 나를 안내한다. 난 익숙하게 리브를 데리고 새벽 산책을 나선다.


새벽의 공원은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지 못한다. 기에 산자라고는 나밖에 없다. 나 이외에는 모두 죽은 자뿐이다. 비교적 외진 위치의 공원은 내가 선택한 최적의 산책장소이다. 음산하게 피어나는 분위기는 산사람은 누구도 거부하는 듯 새벽이슬에 여기저기 젖어있었다. 우리는 매일 이 짧은 산책로를 걷는다. 사실 리브에게는 좋지 못하다. 리브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궁금해한다. 여기저기 새로운 장소에 가면 냄새를 맡아가며 두 눈을 반짝인다. 단지 나와 함께하기 위해서 이 어두운 길을 걷는 것이다. 한때는 도우미분을 고용해서 리브의 산책을 맡길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난 이기적인 마음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리브 나보다 다른 누군가를 따르게 된다면, 그때는 난 진짜 버텨낼 힘이 없을 거 같아서였다. 그렇게 이기적인 나를 매일 마주하며 단 한순간도 사랑할 수가 없었다.


“아 또  빠져버렸네.” 나는 나지 혼잣말을 하고는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사실 이 시간에 여기에 오는 사람은 아마 죽은 자이거나 죽고자 하는 자뿐일 것이다. 그런데 소희 씨는 왜 이 시간에 공원에 있었던 거지?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 이런 어둠을 밝혀주려고 강림한 건가? 나도 모르게 떠오른 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생각들에 진저리 치며 산책을 마무리했다.


나는 오랜만에 외출에 조금 불안해지는 걸 느꼈다. 평소에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밖에 나가지 않는다. 사실 인터넷만 되면 뭐든 집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필요하면 자산을 관리해 주는 변호사님이 집에 방문해 주신다. 할머니가 각별히 아끼던 아들 같은 분이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주기적으로 집에 들러서 내 상태도 봐주시고,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도 처리해 주신다.  그리고 운동선생님도 있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호신술을 가르치고 싶어 하셨고, 나의 요구에 따라서 선천적으로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분이 운동선생님이 되셨다. 


"리브야 어쨌든 이거다 너를 위한 거야. 알았지?" 잠시 리브를 쓰다듬어주고는 어색하게 외출준비를 다. 이 시간에 밖에 나가는 게 얼마만일까? 소에는 집안에서만 머물며 무슨 병이라도 걸린 듯 집을 청소한다. 집은 할머니가 계시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이다. 새로 들어온 것도 없고 나 몰래 사라진 것도 없다. 모든 물건은 그대로이다. 없어진 것은 사람뿐이다. 마당과 정원은 보통 주말 관리를 한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소나무의 가지를 쳐주기도 하고, 마당을 청소한다. 정원에서 꽃에 물을 주고 있다 보면 이따금 담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나의 우주는 이 집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저들은 아니겠지? 비행기를 타고 세상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비행기는커녕 트라우마로 자동차도 타지 못한다.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발작이 일어나서 바로 포기해야 했다. 난 하루 안에 걸어서 갔다가 다시 걸어서 돌아올 수 있는 곳에만 갈 수 있다. 그게 내가 최대로 누릴 수 있는 세상.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든 감옥에서 산다.


다행히 소희 씨 병원은 내가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난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서 입에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다. 리브는 이 어색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 고장 난 것처럼 어쩔 줄 몰라했지만, 정작 골목을 걷기 시작하자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난 리브의 눈을 보면 안다. 리브는 지금 나를 걱정하면서도 매우 행복한 상태이다. 어릴 때는 이 정도로 밖을 안 나가지는 않았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난 더 사람들을 피했다. 그러나 막상 오후의 따듯한 햇빛을 받으며 거리를 걸으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쩌면 나를 그 감옥에 가둔 것은 나 자신일까? 내가 만든 이 감옥을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병원 앞에 도착했다.


병원에 들어가서 접 데스크 앞에 섰다. “어서 오세요. 저희 병원은 처음이세요?” 난 익숙하게 핸드폰에 메모장을 켜서 메모를 작성했다. [제가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메모로 말씀드려요. 오늘 처음 방문입니다. 필요한 서류 주시면 작성하겠습니다.] 내 핸드폰의 메모를 읽던 간호사분은 당황한 듯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를 작성하고 잠시 대기한 후 진찰실로 안내받았다.


진찰실에 들어서자 소희 씨가 앉아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소희 씨는 내가 보았던 그 어떤 겨울의 눈보다 하얗고, 그 어떤 새벽의 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이 밝게 빛나면 빛날수록 나는 더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가는 걸 느꼈다. 소희 씨는 나를 보더니 야기를 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제가 좀 더 자세히 진찰을 해보려고 해요. 시간이 조금 걸릴 거 같은데 찮으시죠?"


난 병원에 들어서면서부터 조금씩 숨이 막혀가는 거 같았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희 씨는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그것이면 충분한 거 아닐까? 마치 내가 소희 씨와 특별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고 착각는 것일까? 그 순간 나는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행복해하던 나 자신이 참을 수 없었다. 난 행복해하고 있었다. 행복하게 일어나, 행복하게 밥 먹고, 행복하게 오늘 이 길을 걸어서 여기에 와있다. 난 행복했다. 그게 너무 오래간만에 느끼는 것이어서 난 그 행복에 취해있었다. 난 점차 정신이 붕괴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고개를 들었을 때, 난 소희 씨 눈을 보았다. 그 동정하는 눈빛에서 내 자존심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내 답을 기다리던 소희 씨 다시 말을 걸어왔다. "조금 안색이 안 좋아 보이세요. 저희 고객 대기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조금 쉬시면 검사 끝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검사결과는 시간이 조금 걸리니 나오는 대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 이후는 그냥 말하고 싶지가 않다. 검사가 끝난 리브를 데리고 집에 왔다. 난 그렇게 며칠을 앓아누웠다. 난 바보 같았다.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가장 보여주기 싫은 상대에게, 그것도 너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 자책감에 나는 무너졌고, 그렇게 꼬박 이틀을 앓아누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역시나 나를 살려주는 건 리브다. 리브가 며칠째 산책을 못하고 있는 게 너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서 새벽산책 나섰다. 그렇게 새벽 산책을 하고 난 후에야 나의 마음도 조금씩 자리를 찾아갔다.


새벽길을 걸으며 난 핸드폰에 전원을 켰다. 사실 배터리가 없어서 자동으로 꺼질 때까지 난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충전된 핸드폰에 전원을 켜자 밝은 빛을 내며 나를 반기듯 알람이 울렸다. 생각지도 못하게 문자가 몇 통 와있었다. '?' 난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내가 며칠 만에 핸드폰을 본다고 연락 따위가 와있을 리가 없다. 너무 당황해서 핸드폰을 한참이나 노려봤다. 무려 3통이나 문자가 와있었다.


[저번에 봤을 때에는 귀 쪽이 안 좋아 보였는데 자세히 검사해 보니 큰 문제는 없었어요. 생각보다 관리가 잘된 거 같아요. 각종 검사도 크게 이상 없이 나왔지만 아무래도 노견이다 보니 먹는 사료를 조금 신경 써야 할거 같은데 혹시 어떤 사료를 급여하시나요?]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병원에서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까요? 하루동안 답장이 없으셔서요. 저희가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참고하고 싶습니다.]


[저기 이런 식으로 시하 안 된다고 생각합니. 이틀이나 연락이 없으ㅛ]


머릿속이 하얘졌다. 소희 씨에게 연락이 올 거라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뭐라고 해야 하지? 마음은 급해졌고 내 사고는 정지되었다. 난 행복하면 안 된다. 그냥 소희 씨가 살아있다는 사실만 알면 다. 소희 씨도 다른 수의사 선생님 던 대로 한 달에 한번 집에 방문을 해서 리브를 봐주시면 된다.  더 이상 집 밖에 나갈 자신이 없어졌으니까. 나는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다잡고 답장을 했다.


[바로 락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지금 확인을 했어요. 제가 아직 밖에 나서는 게 쉽지가 않아서요. 혹시 저희 집에서 리브를 진찰해 주실 수 있나요? 그전에 리브를 봐주시던 수의사 선생님을 위해서 꾸며놓은 방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말고 저희 집으로 들어와서 봐주실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조건은 전부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문자를 보내고 마나 지났을까? 답장이 왔다. 정말 답장이 왔다.


[. 어갈게.]


음? 들어온다니. 왕진을 해주신다는 말이겠지? 바쁘실 텐데 너무 자주는 아니어도 한 달에 한번 정도 방문해서 리브를 봐주시면 다. 그래.  선생님처럼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왕진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대문 앞에 서있는 소희 씨를 마주했다. 맞다. 소희 씨는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들어왔다. 내 맘에도. 내 집에도.



[ 09화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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