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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Aug 11. 2024

사신과 세이렌의 이야기 (10화)


사신이 말하는 동거 첫날밤의 이야기


이른 아침 울리는 인터폰 소리에 나는 의아했다. 인터폰 속 화면에는 소희 씨가 서있었다. “왕진을 이 시간에 와주시는 건가? 사전에 조율이 안되었는데.” 일단 나가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다. 그것이 실수였다. 난 문을 열어줘서는 안 되었다. 내가 그 문만 열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 앞에서 마치 자기 집인 양 여기저기 구경하 다니는 이 참사 막을 수 있었겠지? 리브는 신이 난 듯 그녀를 끌고 집안 여기저기탐험한다. ‘리브야 넌 그렇게 소희 씨가 좋니?’ 그녀는 마치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다만 그 결과가 오늘 이 순간이라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내가 미쳤나 보다.


내가 잠시 딴생각에 빠져있을 때 소희 씨는 할머니방의 문을 열고 있었다. 난 황급히 그녀를 따라서 방에 들어다. 들어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직도 할머니의 온기가 방그대로 남아있는 거 같다. 한쪽 구석에는 할머니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그리시던 그림이 이젤 위 캔버스에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난 매일 이 그림을 보면서 그림의 완성본을 상상한다. 머리가 없는 두 남녀가  그림이다. '두 사람은 무엇을 하는 걸까?' 할머니의 마지막 유작이 된 이 그림은 아직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다.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공개해야 하지만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


열린 커튼 사이 창문햇살이 들어온다. 아침 시간의 이 공간은 알알이 결정화된 빛들이 방안을 가득 메운다. 마치 거대한 빛의 수족관에 들어온 듯 방안은 그 빛으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그 빛을 모두 받아내는 소희 씨가 서있다. 이 공간에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이 방에 누군가가 함께할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신기해하는 그녀를 바라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나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에 산다. 그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행복해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다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소희 씨가 할머니방을 천천히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며 난 이기적 이게도 그녀를 잡고 싶어 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 어떤 치료도, 약도, 상담도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서있는 이방의 전경이 나게 말한다.  사실 이기적인 사람이다고.


내가 잠시 지난 십수 년 동안 멈춰있던 변화를 겪고 있는 중에 소희 씨는 어떻게 알았는지 손님방을 찾아내고는 방안의 침대에 앉아보며 만족해하는 거 같다. “저 그냥 이 방으로 할게요. 괜찮죠? 조건은 다 맞춰주신다 했으니 제 요구사항은 곧 정리해서 말해줄게요.” '응? 요구사항? 이미 난 오늘의 급격한 변화에 지쳐있었지만 무슨 요구가 더 쏟아질지 사뭇 걱정이 되어 웃음이 났다.'


"다행이야. 널 다시 만나서." 리브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소희 씨를 보고 있다. 어릴 때 보았던 모습 그대로이다. 모든 걸 삼킬듯한 칠흑 같은 머릿결에 깊은 눈동자는 잠시만 보고 있어도 영혼을 빼앗길 거 같다. 사실 리브는 소희 씨에게 돌려줘야 했다. 첫날만 지나면 난 리브를 소희 씨에게 돌려주려 했다. 하지만 그 첫날 난생처음으로 악몽을 꾸지 않고 편히 잠들 수 있었다.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리브가 없으면 난 버틸 수 없을 거 같다고 믿었다. 그래서 리브를 소희 씨에게 돌려줄 수 없었다. 난 그대로 학교를 자퇴해 버렸다. 그렇게 소희 씨에게서 도망쳤다. 다시 공원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난 알고 있었다. 이제는 리브를 돌려줘야 한다는 걸. 다행히도 우리는 리브를 같이 돌볼 수 있게 되었으니 내 인생에 이런 행운 더 이상 있을 수 있겠나.


“전 출근해야 해서 나가볼게요.” 난 출근하는 그녀를 붙잡고 내 결심을 건넸다. "카드를 주는 거예요?" 카드받아 드는 그녀의 눈에서 잠시 기쁨이 스친다. 나는 그녀의 기쁨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그때 난 생각했다. 난 말할 수 없으니 모든 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난 이 간단한 사실을 깨닫고는 마음이 단단해졌다. ‘난 말할 수 없으니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나는 이제부터 하나씩 소희 씨에게 나를 보여주기로 했다.


저녁시간이 되기 전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물론 밥을 먹고 들어올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까. 어떤 걸 좋아할지 모르니 무난하게 한식으로 준비한다. 퇴근하며 들어오는 소희 씨는 식탁을 보더니 말없이 앉는다. 밥을 먹는 소희 씨 표정이 무표정하다. 맛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난 혼자 먹던 식탁에 둘이 앉아 있는 이 상황이 어색하기보다는 신기하다. "뭐 잘 먹었어요. 한번 하면 계속해줘야 하는 거 알죠?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밥을 먹자마자 이 말을 내 가슴에 찔러 넣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식탁 아래서 기다리던 리브도 그녀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다. 난 어이가 없어서 그 닫힌 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렇게 오늘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난 이층에 있고 소희 씨는 일층에 있다. 사실 같은 공간이라고 보기도 민망하다. 하지만 묘하게 설렌다. 그녀가 함께하는 집은 공기의 무게부터 시작해 떠다니는 향기마저 다르다. "같은 지붕아래에 산다는  이런 이구나." 항상 곁에서 잠들던 리브를 오늘밤은 소희 씨에게 겼지만 외롭지 않다. 그렇게 우리의 첫날밤은 깊어다. 늘의  순간이 속까지  바라는 건 욕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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