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9세에 돌아보니 참 활활 타오른 시간이었어
2025년 8월.
아, 올해도 8월이구나. 나는 지금 여기까지 왔다. 만 39세, 여자, 지금은 무직. 엄마와 푸들 토토, 외할머니와 살고 있다. 이십 대 후반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꼬였다,라고 말하기는 단정적이지만 또 열심히 살았지만 아직 이룬 게 없고 정해진 일도 없으니. 코로나가 온 해부터 전직해 올해 3월부턴 학원 수업(‘강사’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도 않고 부끄럽다.)을 안 했다. 마침 수술받을 일이 있었고 무사히 마쳤다. 계속 이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므로 쉬고 다이어트하며 지금까지다. 아, 다이어트는 제대로 했다^_^ 그동안 찐 살을 8~9kg(자궁 근종 제거 수술받으니 4kg는 빠졌다) 뺐다. 다시 학원 일도 하려곤 했다. 지난 달에 한 학원 파트 수업을 하기로 했지만 갑자기 수업하다 질려 2주 만에 급히 말하고 정말 말 그대로 '뛰쳐 나왔다'. 대표님, 원장님 좋은 분들이어서 일한 비용도 받았다, 죄송해 받을 생각도 안 했는데.
내 이십 대 때, 서른아홉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쓰니 와닿는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결혼해 편히 살고 싶었고(결혼을 잘하면 편하겠지, 생각했다.) 미래는 늘 막연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회사는 다니고 (대학생 때 그랬듯) 남자 친구를 사귀어 결혼해야지, 직장은 다니며 일하다 만나야지, 하는 생각으로 삼십 대를 보냈다. 이직도 많이, 직업을 여러 번 바꾸며(삼십 대에는 인쇄 회사 사무직, 사보 에디터, 출판 기획 편집자, 학원 샘-을 했다.) 연애를 했고 솔로가 되면 또 만날 노력을 하며(마음이 맞던 한 언니와는 하루에 세 번 모임에 나가기도 했다. 별 일 안 생겼다.) 진심 다해 만남에 열성적이었다. 삼십 대의 십 년 동안 자주 남자 친구들이 생겼고 결혼을 생각했던 남자도 몇 있다(모두 다, 그들과 결혼 안 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안쓰럽지만 부족했던 사람도 있었고 ‘사랑’이라는 본질에서 먼 만남도 있었다).
이번엔 ‘일’에서 날 성찰해 본다. 난 정말 ‘좋은 여건’의 일을 ‘제대로’ 하려고 했었나? 중견 기업이었던 인쇄 회사 사무직(1년은 넘게 일했다. 이직이 잦았던 내가 그래도 제대로 한 해의 사이클을 보낸 곳이다.), 하고 싶었던 출판 분야(네 곳의 출판사를 경험했다.)에서 일하며 책을 만들며 최선을 다한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커리어를 구상하며 뻗어 나가기에 큰 관심도, 열정도 없었다. 출판 책임 편집자는 한 책이 출간되기까지 모든 과정에 말 그대로 ‘책임’ 지며 담당하는데 사실 편집장까지 하기는 부족하다고 처음부터 날 알았다(그다지 독서를 즐기지 않는다. 보통 사람입니다.) 흥미가 있어 편집자 일을 해보았을 뿐. 그래도 서른이 넘어 도전했고 그 직무를 경험한 내가 좋다. 인쇄 회사에서 일하며 출판사에 다니고 싶단 생각을 했는데, 사실 책을 만드는 과정이 적성에 크게 맞지는 않았다. 두 번째 출판사에서 그나마 오래, 1년은 넘게 일했는데 언제나 맘이 쫄리면서, 괴롭게 일했다. 코로나가 온 그 해 여름, 세 번째로 이직한 출판사에서 내 능력이 역부족이라고 잘리며 나왔다(지금 생각하면 능력 부족을 인정하고 그곳 입장에선 그럴 만했다. 하지만 청소년을 위한 보드 게임 날원고를 받았을 때, 어떻게 만들지 몰라 눈과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나로선 당연히 힘들었다.) 출판 일을 하기 전부터 생각해 온 노후 대비는 국어 논술 공부방이었다. 어릴 때 좋아했던 국어 과목, 또 논술을 쓰고 대학교에 입학해(중앙일보 NIE 대학생 기자도 했다.) 논술이 편하다 생각해 공부방을 하며 (내 계획엔 이때쯤이면 남편이 있겠지, 했다. 이때 남친은 없고 그 애에게 큰 상처만 남아 있었다.) 편안히, 일하는 스트레스 없이 살고 싶었다. 우선 언젠진 모를, 내가 열 국어 논술 공부방을 준비하기 위해 안산의 한 국어 논술 전문 학원에서 주말 파트 수업을 시작했다. 마침 강사 경험이 없는 사람을 뽑고 있어 지원했다. 국어를 잘 한 나라 자신 있어, 바뀐 국어 과목 안 다양한 분야도, 입시도 전혀 모른 채 당당히 원장님 질문에 대답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에 무식했던 당당함이 부끄럽다. 이제 학원 샘이 되었으니 늘 하던 소모임(동호회) 중에 학원 강사 모임에 들었다. 친구들은 삼 십대 초, 중반을 지나며 모두 결혼해 아이도 다 낳아 지내고 있었다. 친구들과 논 지는 삼십 대 초반 즈음이 마지막으로 그때부터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놀며 지냈다. 늘 연애, 결혼을 생각해 온 나였기에 드는 동호회의 형태가 강사 모임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고등부 주말 수업을 시작하며 설레기도 했고 열심히 했지만 소수반이었기에 이 정도 준비하고 수업하면 되겠지, 하며 지냈다. 그때는 잘 몰라서 그랬지만 더 깊게 수업 준비나 연구를 하기보다 동호회 샘들과 놀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전직해 좋았던 첫 번째, 학원 일을 하니 분위기가 어른들 직장보다 활기 차 좋았다. 강사들은 워낙 다양한 개성의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이라 그럴까? 직장인과 다른 부분은 있었다. 날 이해해 주고 어딘지 편했다. 동호회에서 만난, 친구들처럼 느껴지는 좋은 또래 샘들도 있었다. 갑자기 외로움도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이 일을 하며 좋았던 두 번째, 내신 대비는 힘들었지만 ‘점수’가 나와 좋았다. 시험 본 당일, 아이들 점수가 올랐다며 카톡, 전화로 들떠하는 연락에 기쁘고 나 능력 있는 걸까, 생각하며 보람을 느꼈다. 그래도 아이들을 생각하며 수업을 기획해 짤 만큼 치밀함은 없던 시간(그저 안일했다는 자책만 하기엔 나도 그때는 노력했지만 뭔가 몰랐고 역부족이었을 수 있다.)이었다.
돌아보면 일도 그랬지만 남자도, 정말 내가 매력적이고 좋은 여자니 날 사랑하고 이해하며 실제도 좋은(제대로 된 인성, 벌이를 하는) 남자인,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확신했는진 모르겠다. 사실 속으로 어느 정도 날 알고 있으면서 날 좋게 말하는 그 말들만 담아(직업에서도, 객관적인 싱글 여자로서도) 애써 외면하며 보내지 않았을까, 약간 소심해진다. 일에서는, 학원 수업을 한 지 5년이 되어 가지만 이 일을 계속해 나갈 자신감도, 역량도 없다는 생각이 그 증거다.
앞으로 지난 내 삼 십 대에 거친 다양한 직업과 인상적이었던 사건에 대해 써보려 한다. 이런 삼십 대도 있구나, 서툴어도 재미 있게 읽혀지면 좋겠다. 무엇보다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이 아닌 독자들이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