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
2023년 12월 다시 한번의 각막이식 수술을 받고 요양과 복직을 하게 되면서 다소간의 부득이함과 다량의 게으름으로 인해 잠시 작품 등재가 중단되었음을 사죄드립니다. 항상 존재 여부에 대해 이견이 많은 독자분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 다시 시작합니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고요한 물을 거울삼는다."
또다시 각막이식 수술을 했다. 각막이식을 할 때면 의사 쌤에게 수술 중에 일어날 수 있지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나 같은 경우 수술받는 데 베테랑이기 때문에 듣지 않고도 이미 많은 부분 알고 있어 듣기 전부터 두려운 마음이 성장기 어린이보다 잘 자라고 있는 와중에, 쌤에게 확인사살을 받으면 마치 204cm의 거구와 UFC링에서 마주하고 있는 느낌의 아득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그 거구를 멀리 밀어내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며 '두려워하고 겁낸다고 해서 수술이 더 잘되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 보지만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이 자기 최면이 성공할 확률은 굉장히 미미하다. 나에게도 그 미미한 확률은 어김없이 작용하여 수술 전, 후의 과정은 통증과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는 아주 바람직하지 못 한 상황으로 전개되기 일쑤이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 말씀에 순종하여 약 잘 먹고, 안약 잘 넣으면서 안정을 취하다 보면 어느새 제법 회복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회복되어 가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기에 이 시점에서 나는 즐거움이 가득해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좀 우울모드로 돌아서는 일이 많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저녁에 겪는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로 복직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복직! 그 단어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심장이상과 공황장애를 가져왔던 단어인가?!(사실 그 숫자는 얼마 안 될 것 같다.) 더욱이 나의 복직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사팀도 나 이상으로 골치가 아파지는 듯하다. 부서에서도 잘 활용할 수 있고, 나도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어야 되다 보니 인사팀과 내가 아무리 토의하고 상의해 봤자 결론은 일단 그전에 있던 부서로의 복귀! 익숙한 곳에서 다시 적응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상호 간의 합의에 의해 나는 다시 휴직 전에 속해 있던 부서로 돌아오게 되었다.
1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휴직을 하였지만 사람들도 제법 많이 바뀌고 부서는 같지만 팀은 달라져서 실상 나의 적응은 맨바닥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팀장님을 비롯한 팀원분들이 다들 좋은 분들이어서 업무도 단출하게 배정해 주고 이래저래 도움도 많이 주려고 하시는 덕분에 제법 가벼워진 마음으로 출근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직장 생활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복잡 다난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왠지 잉여로워진 듯한 나의 포지션을 느끼며 자존감이 지하로 들어가는 공사를 시작해 버린 것이다. 사실 주변의 누구도 나에게 그런 말을 꺼낸 적은 없으나, 나 스스로가 왠지 작아지는 느낌. 예전의 나와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부족한 나의 현재에 대한 씁쓸함으로 회사 가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렇게 한동안을 모래주머니 찬 발걸음으로 출퇴근을 하다가, '내가 이러고 있는다고 바뀌는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실제로 내가 쩌리이고 찌그러져 있는 게 나의 본분이라 해도 굳이 그 상황에 취해서 마음까지 쭈그리가 되어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지금 상황이 제법 괜찮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주변에 다 좋은 분들이 계시고 배려도 잘해주시니 이 얼마나 좋지 아니한가? 그리고 업무가 단출한 이때에 자존감을 하락시키고 있을게 아니라 '나 스스로의 역량을 기르고 있자. 나의 새로운 결심이었다. 그 후로 바쁠 때는 찾아보기 힘든 업무 관련 자료도 여기저기 인터넷을 헤엄치며 살펴보고 요즘 세상에 발맞추기 위해 GPT 같은 것도 사용법을 익혀두고, AI로 할 수 있는 것들도 살펴보면서 출퇴근하는 발걸음에 달려있던 모래주머니를 조금씩 가볍게 만들어 나갔다. 아니, 나가고 있다.
복직하고 3개월 정도의 시간을 지나며 새삼 깨달은 것은, '역시 옛말 틀린 게 없구나. '이다. 세상만사 마음먹기 나름이라더니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차분이 가라앉히고 나니 새삼 주변이 바뀌는 듯한 느낌. 다시 한번 그 진리를 깨달았다. 응? 누가 그걸 모르냐구? 하하하. 맞는 말씀. 세상 대부분의 진리는 모르는 사람보단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특징인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자주 생각하고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니려나 싶다. 세상 뛰어남이란 걸 찾아볼 수 없는 나도 가끔은 이렇게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는 걸 보면 생각하고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도 매일 출근길에 새롭게 다짐을 해본다.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