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3박자, 그러나 사뭇 다른 한국과 서양의 춤
요즘 음악 생성형 인공지능을 갖고 재미있게 노닐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만들어 두었던 노래들을 음원으로 만들어 듣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래된 악보에서 최근의 전자 악보까지 제 손으로 펴낸 노래들을 한곡 한곡 음원 작업을 해 봤습니다. 아직 다 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시간 나는 대로 작업한 결과가 대략 120곡 정도 되네요. 노래 장르도 다양했어요. 가곡, 가요, 성가곡, CCM, 동요, 연주곡 등등. 노래들은 폴더를 만들어 성격에 맞게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뒤에 더 시간이 생기면 10곡 정도씩 묶어서 앨범처럼 꾸며볼까도 하는데, 뭐 제 주업은 아니기에 남는 시간 틈을 내어 조금씩 진행해 볼까 합니다.
그런데 음원 작업을 하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만든 노래 중 3박자 계열이 은근히 많았습니다. 보통 우리가 접하는 음악들 대부분 2박자나 4박자 계열이 많은데 왜 내 노래 중에선 은근 3박자가 많을까? 궁금증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또 여기저기 검색하고, 자료를 뒤져 봤습니다.
정확한 수량적 연구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구 음악과 현대 대중음악 대부분이 4박자 계열입니다. 그리고 월드 뮤직에서도 우리와 같은 3박자 계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매우 드문 사례뿐이었고,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도 2박자 계열의 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서양의 3박자는 18세기 후반 들어서 음악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왈츠(Waltz)는 독일어 단어 ‘발첸(Walzen)’에서 파생되는데, 그 뜻은 ‘구르다’, ‘돌다’입니다. 이 춤은 18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바이에른 지방의 농민들이 추던 '렌들러(Ländler)'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렌들러라는 춤은 남녀가 서로 손을 잡고 빙빙 원을 그리며 도는 형태입니다. 그 모습으로부터 왈츠란 단어가 자리를 잡았고, 이후 왈츠의 제왕 요한 슈트라우스가 이 장르의 멋진 작품을 선보이면서 유럽 사교 음악의 꽃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사실 처음부터 왈츠가 각광을 받던 것은 아니었고, 슈트라우스 집안의 공로가 없었다면 여전히 천한 것들이 몸을 비비며 추어대는 상스러운 춤이란 이미지를 벗어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무튼 이후 3박자 계열의 왈츠는 유럽 사교음악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됩니다.
반면 한국의 3박자 계열의 음악은 유럽의 그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입니다. 음악적 문헌은 아니나, 3세기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나 4~6세기 고구려의 고분벽화, 고려시대 가요 등에서 보이는 한국 전통음악은 3박자 계열임을 충분히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수십 명이 줄을 지어 땅을 밟고 손과 발을 맞추어 놀았다”는 기록이나, 고구려 무용총에 보이는 긴소매의 무용수들이 어깨를 들썩이는 듯한 품새는 2박보다는 3박에 가까운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살어리(3) 살어리(3) 랏다(2), 청산에(3) 살어리(3) 랏다(2)"로 대표되는 고려 시대의 가요의 운율 역시 3박자의 틀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묘하고, 기가 막히게도 이 나라 사람들은 3박자에 꽂혀 살고 있는 셈입니다.
보통 음악인류학적으로 2박은 직립보행과 행진 등에 기초한 매우 보편적인 음악 형태입니다. 사람은 서서 걷습니다. “왼발, 오른발” 그러면 자연스럽게 2박이 됩니다. “하나 둘, 셋넷!”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럿이 함께 행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2박이 필요합니다. 3박이 되어 버리면 직진진행이 어렵습니다. 턴으로 하고 구부리고 돌아가는 포인트가 3박에선 반드시 있게 됩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월드 뮤직이 2박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겁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만 3박이 대세가 된 걸까요? 되지도 않게 음악인류학과 해당 유관 연구논문을 몇 개 뒤져보니, 몇 개의 이유를 그럴듯하게 찾아내놓았긴 했습니다. 먼저 ‘언어 리듬’입니다. 한국어의 음절 구조와 억양이 이분박보다 삼분박과 친화적이라는 견해입니다. 두 번째는 ‘무속·주술적 리듬’ 전통입니다. 반복·순환·트랜스 유도에 삼분 분할이 효과적이어서 3박자가 대세가 되었다는 추론입니다. 세 번째는 ‘노동 리듬과 신체 동작’입니다. 농경 노동의 호흡·동작 주기와의 적합성 때문이라는 점이고, 네 번째가 ‘동아시아 음악권 내 독자적 발달’을 듭니다. 뭐 한국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그 무엇이 있었다는 이야기죠.
이 가설 중 저는 언어 리듬에 눈이 많이 갑니다. 교착어인 한국어, 그리고 말의 장단으로 뜻과 감정을 전달하는데 특화된 우리말의 특징이 2박보다는 3박에 더 친화적이지 않았을까 추론해 봅니다. 그런데 이 부분 더 깊게 파보려다 이제 언어학까지 건드려야 하는 상황인지라 예서 잠시 멈출까 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논의만으로도 사실 논문 하나 이상의 내용이긴 합니다.
암튼 그 후 전 왈츠와 우리 3박자 음악을 더 깊게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다 재미있는 차이 하나를 또 찾았는데, 서구의 왈츠는 정박이고, 즉 3박자이긴 하나 각 1박이 둘로 쪼개지고 정확한 포인트로 강-약-약을 반복하는 형태를 취해 매우 수학적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박을 수행하는 주 신체기관은 발입니다. 즉 발로 이루어지는 스텝으로 정확히 정박으로 3박을 밟으며 회전운동을 병행하며 춤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한국의 3박 계열 전통 춤은 발은 대부분 붙어있습니다. 떨어진다 하더라도 같은 지점에서 발의 위치만 상하로 조정될 뿐입니다. 한국 전통 춤의 시작은 발이 아니라 어깨입니다. “덩실덩실”이란 의태어도 발보다는 어깨, 즉 상체의 움직임에 더 집중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1박을 3박으로 쪼개며 정확한 시간 맞추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기는 매우 독특한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춤은 시간을 자유롭게 당기고 뿌리면서 활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서양의 왈츠가 수학적이고 디지털적이라면, 한국의 전통춤은 유체적이고 아날로그적이라 할 수 있겠죠.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요? 제가 거칠게 추론한 언어의 리듬 때문일까요? 언어가 각 문화권 별로 다른 호흡법을 가져오고, 그것이 음악과 춤에게 까지 영향을 미친 걸까요? 아, 생각보다 이 주제 넓고, 깊고, 심오합니다. 여건만 되면 시간을 내어 좀 더 연구해서 뭔가 가닥을 맺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 주제야 말로 음악학, 역사학, 문화학, 종교학, 음성학, 무용학, 인지과학까지 연계되는 전형적인 다학제적 접근이라 하겠습니다.
아무튼 제 음악에서도 3박자 계열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음악이야 말로 매우 본래적이고, DNA적이며, 생리적 현상에 가까운 문화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듭니다. 뭐 이것도 학습과 교육에 의한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저는 학교에서 받은 무척 제한적인 음악 교육, 그것도 주로 서양음악 위주의 교육을 받은 것이 전부이거든요. 제 주변의 거의 대부분의 음악이 4박자 계열이었을 텐데, 왜 제가 만든 음악에는 이리도 3박자가 많은 걸까요? 이 매우 사사롭고 소소한 질문 하나가 더 많은 연구 주제를 강요받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