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bitation을 '삶터'로 번역하게 된 사연
2017년부터 띄엄띠엄 번역 작업을 하다 보니 이번이 네 권째다. 세 번째 원고를 넘기고 교정도 하지 않았는데 네 번째 책을 받았다. 내용이 너무 좋아 바로 번역에 들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면 바로 대선 정국에 들어갈 테고, 이 와중에 헌법 개정 등 온갖 정치적 논의가 벌어질 것이다. 이 책이 그런 논의에 상당히 도움이 되겠다 싶어 서둘렀다. 출판사 대표 역시 시의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아마 3월이면 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제목은 'The Habitation Society'다. 과거 산업사회를 이끌던 시장 경제와 대량 소비 시대는 끝났지만, 새로운 사회와 경제 체제를 규정할만한 패러다임은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habitation'을 중심으로 새롭게 만들어 나갈 사회와 경제를 규정한다. 문제는 'habitation'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였다.
사전이나 다른 문헌을 찾아봐도 habitation은 '주거' 아니면 '거주' 뿐이다. 두 단어 모두 너무나 건조하다. 좀 더 폭넓고 당위적인 의미를 갖는 단어가 필요했다. 문득 낚시터가 떠올랐다. 연이어 빨래터, 활터 등의 단어가 이어졌다. 모두 특정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기반시설이 완비되어 있는 곳이다.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서로 돕고 정보를 나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반시설이 완비되어 있어야 하고, 모두가 서로의 삶을 돕고, 챙겨주는 곳, 바로 삶터라고 할 수 있을 듯했다.
검색해 보니 이미 많은 곳에서 '삶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나 사회 분야 전문 서적에서는 그리 많이 쓰이는 것 같지 않았다. '삶터 사회', '삶터 경제' 등의 단어가 익숙해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 구체적인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책이 나오면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삶터'라는 단어를 쓰게 된 이야기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부디 멋진 디자인으로 나와 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