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잊지 못할 그날, 제주 4·3

동백이 떨어진 자리

by 이도

제주의 4월은 유난히 아름답다.
붉은 동백의 기척이 섬 전체에 생의 감각을 일깨우고, 유채꽃이 돌담 너머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며, 저마다 제 계절을 드러낸다.


흔히 제주의 봄은 설렘의 계절로 기억된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단지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머물 수 없다. 이 섬의 봄은 피어나는 찬란한 계절인 동시에, 스러진 것을 가장 선연하게 떠오르게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주의 4월은 단순한 절기(節氣)가 아니라, 미처 애도되지 못한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기억의 계절이다.

내게 제주 역시 그런 곳이다.
어린 시절 나고 자라 고향과도 같은 정서를 품은 곳이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따스해지는 장소다. 그러나 그 풍경의 이면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먹먹함이 함께 있다. 어떤 장소는 그 자체로 기억의 용기(容器)가 된다. 유년의 체온과 지나간 시간의 잔향, 끝내 지워지지 못한 슬픔이 함께 침전되는 곳.


그리하여 제주의 봄은 내게도 늘 양가적이다. 따스하고 눈부신 계절이면서도, 동시에 상실과 그리움을 불러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봄은 회복과 귀환의 시간이다.
메마른 가지 끝에 다시 생이 스미고, 얼어붙은 땅 위로 연약한 것들이 밀려 올라온다. 그러나 모든 회복은 동시에 어떠한 비가역성을 환기한다. 다시 피는 꽃을 바라볼수록,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또한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사방에 생명이 차오를수록 결핍은 더욱 또렷해지고, 환한 햇살 속에서도 그리움은 길게 드리워진다.


그러한 봄의 정조 속에서 제주 4·3은 결코 과거형으로만 머무를 수 없는 이름이오, 여전히 정명(正名)되지 않은 이름이다.

오랫동안 ‘사건’이라 불러왔으나, 이 명명은 지나치게 중성적이며 역사적 참극의 윤리적 무게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1947년 3월 1일의 발포를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의 무장봉기와 그에 뒤이은 진압, 그리고 1954년까지 이어진 국가폭력의 과정 속에서 제주는 학살과 침묵의 섬이 되었다. 그러나 이 비극은 오랜 세월 왜곡된 언어 속에 유폐되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진실을 말할 언어조차 빼앗긴 채 침묵을 강요받아야 했다.

참담한 비극성은 희생의 규모에만 있지 않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 죽음들이 오랫동안 공적(公的) 애도의 질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죽음은 있었으나 애도는 금지되었고, 희생은 있었지만 명명은 보류되었으며, 기억은 있었으되 발화는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억압 속에서 4·3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침묵을 내장한 트라우마의 구조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침묵은 망각이 아니다. 그것은 공포의 연장이었고, 말하지 못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은 채 더 깊이 잠복하여 세대를 넘어 전이된다.


그래서 제주 4·3은 단지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기억과 애도의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누가 기억할 권리를 갖는가. 무엇이 역사로 남고, 무엇이 여전히 주변부에 머무는가. 진상조사보고서의 채택과 국가의 공식 사과, 특별법 제정과 개정은 분명 중요한 진전이었다. 국가가 스스로의 폭력을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는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성취의 지점에서 또 다른 역설이 발생한다. 이른바 기억의 관료화(官僚化)다. 국가는 허용 가능한 방식으로만 과거를 기억하려 하고, 사회는 매뉴얼화된 애도 속에서 불편한 질문들을 서둘러 봉합한다. 추념은 반복되지만,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는 생략되곤 한다. 국가폭력의 역사는 법적 절차만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보상과 사과는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4·3이 남긴 것은 단순한 손해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남겨진 균열이기 때문이다.


4·3은 이미 해결된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를 비추고 있는 질문이다. 국가폭력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왜 평범한 이웃들이 쉽게 낙인찍혔는가. 우리는 지금, 그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 나아가 4·3의 의미는 단지 과거를 추모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와 공존의 감각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기억은 박제가 아니라 경계여야 하고, 추념은 의례가 아니라 감각의 회복이어야 한다.

제주는 여전히 정명(正名)의 과제를 안고 있다.

사건, 항쟁, 학살이라는 서로 다른 이름들은 이 역사의 복합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이념적 해석 이전에 무고한 삶들이 파괴된 대참사였다는 사실이다. 이름을 바로 세우는 일은 과거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왜곡된 호명 속에 가려진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제주의 봄은 찬란하고도 슬프다.

이 역설을 온전히 바라보는 일이, 동백꽃처럼 붉게 스러져 간 이들의 넋에 뒤늦게 가닿는 위로일 것이다.


바람의 집 /이종형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4월의 섬 바람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가
바람의 집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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