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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Jun 17. 2023

유럽이 처음이면 이태리는 어떨까요 (1)

콩감자네 이탈리아 여행기 2-1편 (음식편)




스무 살 성인이 되며 곧장 소방서에 들어가, 세상을 소방서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주변 동료들의 이야기와 경험은 늘 새로운 자극이었고, 학생 생활이 끝난 어른의 삶이 무엇인지 그렇게 조금씩 배워나갔다.


다행스럽게도 내 곁에는 좋은 분들이 많았기에 건강한 몸과 마음을 자연히 만들어갈 수 있었다. 조금씩 가치와 신념이라는 것이 생겨나며 성숙해졌고, 그 속에서 여행이라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유럽 여행을 꿈꾸게 되었지만, 직장인에게 그런 긴 여행은 쉽지 않은 법. 제주도와 일본 정도로 만족해야 했고, 그 역시도 어린 내겐 충분히 감사할 만큼 행복한 경험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3살, 육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한 해가 흘러 24살, 한창 코로나가 심할 무렵 전역을 앞두며 휴가 80일 정도를 말출 느낌으로 한 번에 사용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전역을 3달 정도 앞당긴 꼴이었다.


전역을 하게 되면 곧장 소방서로 복직해야 했던 터, 80일 정도는 자유로이 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어딜 떠나도 충분할 시간이 내게 선물처럼 생겨난 것 아닌가!


때마침 콩자씨도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콩자씨와 유럽, 그것도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었다.




콩감자의 첫 유럽


우리에겐 거의 신혼여행과 같았다.


둘 다 장거리 출국이 처음이었기에, 옷부터 숙소, 식당, 관광지, 투어, 항공편 등등 함께 고민하고 준비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왜 신혼여행 준비 때 싸우는지 대충은 알게 되었다. ㅎㅎ)


그중 가장 많은 시간을 고민한 것은, 단연 여행할 나라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군대에서 허락해 준 최대 체류 기간은 2주였고, 여러 나라를 옮겨다니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 나라에만 있기에는 유럽 초행길 우리에게 다소 아쉬울 것만 같았다.


네이버와 다음 카페를 수소문해보니, 대부분 첫 유럽 여행으로는 서유럽 3국을 추천했다.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로 가는 코스가 가장 인기 있었고, 거기에 영국을 추가하는 분들도 꽤 있었다.


구성은 참 알차고 좋아 보였지만 역시 발목을 잡은 것은 이동거리. 나라 간 이동으로 체력을 빼기에는 우리의 금쪽같은 시간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이탈리아 브이로그를 보게 되었다.



여기구나!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물 위 도시 베네치아, 중세시대 마을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피렌체, 교과서에서나 본 듯한 곳으로 가득 채워진 로마, 알프스가 펼쳐져 있는 돌로미티,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바다로 꼽힌 포지타노.


한 나라에서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유럽 초보자 콩감자에겐 더할 나위 없는 곳이지 않나. 또 한 나라 한 도시에서 왕복으로 비행 편을 선택한다면, 항공권 또한 선택폭이 넓고 비교적 경제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볼거리가 참 많았다. 대부분의 세계문화유산 급 유적은 각 국의 수도에 있는데, 도시국가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탈리아에는 예전 국가의 수도만 몇 개나 될까. 자연히 어느 도시를 가도 풍부하고 특색 있는 볼거리를 접할 수 있었고, 여러 나라를 오간 수준의 재미를 느끼기에도 충분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유럽 여행은 오랜 고민 끝, 이탈리아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피렌체 공화국 국기




맛있습니다


여행에 취미를 붙여 한창 콩자씨와 놀러 다닐 무렵, 제주도에서 처음 접한 고기국수는 꽤나 큰 감동이었다. 중면을 고기가 가득한 사골 국물에 넣을 생각을 하다니, 대구 토박이 감자에게 여행의 이유를 잔뜩 불어넣어 주었다.


고기국수 말고도 보말 칼국수와 몸국, 제주도식 두루치기와 갈치•고등어•딱새우 회는, 여행에서 볼거리 외에도 행복감과 다양성을 느낄 수 있음을 깨우쳐주었다.


그렇게 여행 속 먹부림은 필수가 된 우리에게, 이탈리아 여행은 오죽했을까. 음식 하면 이탈리아 아닌가, 거를 타선 없는 풍부한 먹거리가 있는 곳이었기에 엄청난 기대를 안고 떠나게 되었다.


치얼스


피자와 파스타의 원조를 느끼고자 단단히 기대했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당초 과분할 정도로 듬뿍 담긴 크림과 끝없이 늘어나는 치즈를 기대한 것과 달리, 과하지 않아 담백하고 신선하며 재료 본연의 맛이 두드러지는 그런 맛이었던 것이다!


까르보나라는 파스타 생면의 맛과 계란 맛이 두드러져 담백하며 깔끔했고, 피자는 상큼한 토마토의 맛과 신선하면서 풍부한 향이 느껴지던 치즈, 또 화덕 특유의 구수한 향이 잘 어우러져 부담 없는 그런 개운한 맛이 느껴졌다.


로마 Tonarello
로마 Bonci pizzarium


양들에게서 금방 짜낸 젖으로 만든 치즈와, 햇살을 가득 받은 토실한 토마토. 모두 이탈리아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재료들이다. 그런 재료들의 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조화롭게 묶어놓은, 그런 맛들의 향연이었다.


엽떡과 불닭에 익숙한, 자극적인 음식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던 우리 삶에 겸손이라는 변화구가 들어와 꽂힌 느낌이었다.


베네치아 수소 젤라또


젤라토도 그랬다. 레몬맛은 진짜 레몬을 먹는 느낌이었고 제철 과일 맛들 모두 그대로의 맛이었다. 물론 꾸덕꾸덕 특유의 젤라토 식감은 맛을 제쳐두고도 최고였지만, 신선하다 못해 건강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맛이 심심하다거나 부족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극적인 음식들로 잠들어 있던 내 미각을 깨워, 느끼지 못하던 맛들을 즐기도록 해준 듯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만율이 낮고 최장수 국가로 불리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나 보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서, 나고 자란 재료로 음식을 아주 맛있게 해 먹는. 이것이 진정한 맛있음이 아닐까.


과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만큼에서 적당히 여유를 가질 줄 아는 그들의 문화가 투영된 것 아닐까 싶었다. 밥 한 끼로도 그곳의 문화를 조금은 들여다보며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콩자씨의 말을 빌려, 그들은 굉장히 자유로워 보였다. 근심 걱정 없이 살 것만 같은 특유의 여유로움은, 그들의 음식에도 숨길 수 없을 만큼 잔뜩 묻어있는 듯했다.


아는 맛이 무섭죠. 거의 공포 영화였습니다.




아니. 진짜 맛있습니다.


역대급 음식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여행을 이어가다, 하나같이 모든 음식이 물려버려 한식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운이 좋게도 감자씨는 크게 물리는 일 없이 맛있게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물리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정말 정말 맛있는 음식들을 중간중간에 만났었기 때문일 것이다.


발사믹 스테이크 (피렌체 아쿠아알투)


발사믹 소스가 가득 발린 이 스테이크는 굉장히 자극적이면서도 깔끔했다. 한 입만 입에 넣어도 콩감자 모두 눈이 동그래지는 맛이었다. 소고기 자체도 맛있지만 소고기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맛이었다.


아마 이 맛은.. 피렌체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칫하면 물릴 수도 있는 발사믹 특유의 새콤함을, 비밀의 마법을 뿌려 더 맛있게 만든 느낌이었다. 이 하나만으로도 사실 피렌체에 방문해도 될 만큼 최고의 맛이라 평가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트러플 파스타 (피렌체 Osteria pastella)


치즈가 발려 굳어진 그릇에 오일을 뿌리고 불을 내, 녹은 치즈를 파스타에 버무려 송로버섯을 통으로 썰어 올려주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다 못해 살짝 꼬릿 한 치즈의 향이 짙어졌고, 크게 씹히는 트러플의 풍미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알던 최고의 치즈 맛의 한계를 뚫어준 맛이었다. 치즈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의 맛과 향을 담아낸 파스타였다. 송로 버섯을 통해 느껴지는 고급스러움 덕에, 더욱 음식에 빠져 있을 수 있었다.


티본스테이크 (피렌체 Ristorante Romantico il Paiolo)


토스카나 지방의 넓은 들에서 행복하게 풀을 뜯어먹으며 살아가는 소는, 한우와 비교해 굉장히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한다. 한우의 아름다운 마블링을 즐기며 치익 치익 구워 먹는 그 맛에 대적할 만한 고기를 만나버렸다.  


근육질 토스카나 소를 충분히 익혀 먹는다면 질겅질겅 몇 시간을 힘겹세 씹어 먹어야겠지만, 레어 정도로만 구워 먹는다면 말이 달라진다.



비주얼부터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콩자씨 선정 이탈리아 최고의 맛이었던 만큼, 압도적인 풍미와 식감을 자랑했다. 가격도 놀라울 만큼 합리적이었기에 이마가 아프도록 탁! 칠 수밖에 없었다.


통통한 덩어리를 예쁘게 썰어 한 입 베어 물면, 엄청난 수분감이 감돌며 부드럽게 녹아버린다. 적절한 식감에 완벽한 겉바속촉은, 콩자씨와 힘겹게 이겨 나온 군대 시절과 열심히 일해온 지난 시간들에 모든 보상을 돌려받는 듯한 감동을 줬다.


미숙한 나의 표현력으로, 음식들의 가치를 이렇게 한정 짓기가 아쉽다. 진짜 맛있었다.






주변에서 처음으로 유럽을 꿈꾸고 있거나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께 적극적으로 이탈리아를 추천해주고 있다. 여행을 취미 삼아 다닌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탈리아 말고 다른 유럽 국가를 다닌 적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확실한 무언가가 이탈리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나의 첫 유럽 여행이 이탈리아였다는 것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추럴하고 클래식하게, 소박하지만 확실하게.


한국에서 기대한 자극적이고 본격적인 음식은 거기 없었다. 맛집이라고 찾아간 곳에는 온통 신선하고 자연스러운 맛들로 가득했다. 그런 음식들을 마주하니, 내 생각 속 기대에 잡혀 나도 모르게 소중한 순간들을 놓쳐왔음을 알게 됐다.


소방서에서부터 시작된 어른으로서의 삶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었다. 멋진 경험을 해보고자,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 보고자 내일만 너무 내다봤음을 새삼 생각했다.


여행을 취미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해 오던 와중,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탈리아에서 배운 대로 생각해 보었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도 내가 즐기고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특별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나만의 고민거리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새로움을 찾아 떠나, 지금 것의 감사함을 배워 돌아오는 일.


여러분도 유럽이 처음이라면 이탈리아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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