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보러 파리로

-호크니

by GIL

나는 출장을 올 때마다 항상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놀았(었)다. 새벽부터 출근하고 야근하면 더 늦게까지 놀고, 마지막날 비행기 타기 전 몇시간이라도 있으면 또 싸돌아다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출장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 마지막 남은 기 마저 탈탈 털어가서일까, 아니면 40대로 접어들어서일까. 조금이라도 더 침대에 누워있고 싶고 밤 늦게도 못 돌아다니겠고, 피곤하고, 지친다. 그저 빨리 한국에 가고싶은 마음 뿐. 싸가지 없는 본사 애들이랑 미팅하고 나서 너덜너덜 해진 마음으로 놋북이랑 자료 잔뜩들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나는 파리가 싫다. 사람들의 우월감도, 더럽고 냄새나는 거리도, 길막힘도 너무 싫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한방은. 파리는 예술의 도시라는 것.


Boulogne

마지막 날, 뭘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전시만은 좋으니 전시를 보기로 했다. 예약을 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워크인으로 일찍 가서 대기를 했다.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운좋게도 30분 정도 기다리고 들여보내주었다. 각오를 단단히 한 것 치고는 럭키


Hockney

호크니야 워낙 유명하지만, 엄청난 전시라기에 좀 기대를 하고 간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보니 역시나다. 거장도 이렇게 맨날 그리는데, 내가 뭐라고 맨날 이렇게 게을러 터진걸까 반성하게 만드는 전시, 그리고 천재가 왜 천재인지 알게 하는 전시였다. 발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은 것 뿐만 아니라, 그림 또한 굉장히 많았다. 특히 자신이 살고있는 곳의 자연을 그린 그림들은 평범한 소재와 사인펜부터 아이패드까지 다양한 재료로, 하루도 빠짐없이 빼곡히 채워간 작가의 성실함과 대범함, 비범함은 깊은 존경심을 갖게 만든다.

초기 아이패드 드로잉은 조금 별로여서 그레그래 누구나 못하는게 하나정도는 있겠지 했는데... 갈 수록 이사람 진짜 가지가지 잘하네 싶었다. 그래, 질투를 넘어 경외심이지.

풍경까지 구경하고서는 1층의 식당으로 갔다. 열심히 읽다보니 물이랑 커피 세트가 있기에 시켜보았다. 그것도 좋았는데 식당 창가에 공작새가 놀고 있고, 정원에는 무라카미다카시의 조각이 있다. 이런 풍경이 가능하군요


날이 너무 좋아서 조금 걸었다. 아름다운 정원


현실이 너무나 비루하므로 현실을 잊기 위해 이 전시 보러 온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호크니 전시보러 파리 오는거, 생각보다 멋지지 않나…?


야근할 다음주를 생각하면 벌써 피곤하지만, 그건 다음 주의 나에게 살포시 미루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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