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8장 - 지혜는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말은 멈췄고, 논쟁은 끝났다.
욥은 이제 친구들과 더 이상 입씨름하지 않는다.
고통에 대한 항의도 내려놓고, 그는 조용히 묻는다.
“그럼 지혜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
깨달음의 자리는 도대체 어디인가?”(28:12)
사람들은 산을 뚫고, 깊은 지하를 파고들며 금속을 캐낸다.
광맥을 찾아 어둠 속에서도 등불을 켠다.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밝혀내고, 세상의 이치를 탐색하며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려 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 모든 수고와 계산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자리에 감추어져 있다.
“인간은 그 값어치를 모르네.
산 사람들의 땅에서는 보이지 않지.”(28:13)
욥은 더욱 깊이 묻는다.
“깊은 물에게도, 바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지혜는 그 어디에도 없다.”
“깊은 물이 말했네.
‘내 안에 없어, 그건.’
바다가 말했네.
‘나 한 테 없어.’”(28:14)
지혜는 붙잡히지 않는다.
단순한 정보도, 논리적 해명도 아니다.
신비로 감추어진 그것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열린다.
"하나님은 알고 계시네, 지혜로 가는 길을.
그분은 아시네, 그것이 있는 곳을."(28:23)
욥은 마침내 깨닫는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는 것을.
“보아라!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 그것이 지혜다.
나쁜 일에서 떠나는 것이 깨달음이다!”(28:28)
‘지혜’를 뜻하는 히브리어 חָכְמָה(호크마, ḥokmāh)는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통찰과 분별을 주는 지혜다.
장인의 기술, 지도자의 통찰, 경건한 삶의 태도를 모두 포함하는 이 말은
이론이나 분석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살아가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혜는 설명될 수 없고, 오직 끝없이 묻고 걸어가는 자에게 단면을 드러낼 뿐이다.
그것은 확신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욥은 지금,
말과 논쟁, 항의와 해명 너머에서 지혜의 우물가 앞에 서 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신비 앞에 잠잠히 머문다.
지혜는
정의의 외침보다 더 깊은 곳에 있고, 말보다 느린 걸음 속에서 자란다.
그 지혜는
하나님의 깊이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깊이를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자에게 열린다.
지혜는 말보다 앞서지 않는다.
오히려 기다림 속에서 스스로 드러난다.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마른 목을 적시는 우물물처럼 스며온다.
그 우물가에 오래 머무는 이에게,
지혜는 속삭인다.
“와서 마시라.”
욥은 자신의 고난이 단순한 원인과 결과로 설명되지 않는
하나님의 신비한 통치의 일부임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지혜로 가는 길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가 겪는 부조리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음이 당연하다.
욥의 고통은 단지 고통 때문이 아니라,
‘이유 없는 고통’ 앞에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지혜를 인간이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깨달음은 친구들의 전통 신학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자리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떠올리게 된다.
죄 없는 자가 고난을 받고, 그 고난을 통해 많은 생명이 구원받는다.
지혜는 인간의 기술이나 이성이 도달하는 정보의 총합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차원의 것이며,
인간은 그것을 ‘얻기보다’, 경외 속에서 받는다.
양명수는 말한다.
욥의 영성은 인간의 이성과 노력으로 도달하는 결과가 아니라, 은총 속에 부여받는 선물이라고. 결국 지혜는 ‘얻는 것’이 아니라 ‘건네받는 것’이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리 파고들어도 그 자리 앞에 설 수 없다.1)
그러나 욥은 이와 전혀 다른 자리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럼 지혜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
깨달음의 자리는 도대체 어디인가?”라고 묻는 것이다(28:12).
권지성은 말한다.
욥은 자신이 믿어온 하나님의 정의와, 눈앞의 현실이 너무도 달랐기에 고통스러웠다고.
지혜는 깨진 마음, 부서진 몸을 통과해 도달할 수 있는 자리라고.
그렇기에 지혜는, 이론이나 교리보다 더 깊은 곳—삶이 무너진 자리에서,
비로소 들리는 하나님의 속삭임이라고.2)
욥은 깨닫는다.
세상을 꿰뚫는 이성이나 분석으로는 지혜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은과 금을 캐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지혜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사람은 그 앞에 겸손히 서야 할 뿐이다.
알면 알수록 더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우리는 모른다는 것.
아니, 다 알 수 없다는 것.
우리의 인식은 유한하고,
그 유한함은 하나님의 무한하심 앞에서 경외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
욥의 영성은 바로 그 지점에 이르렀다.
삶을 통제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경외함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지혜는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 속에 드러나는 삶의 방향이다.
무지를 자각할 때 비로소 열리는 하나님의 비밀이다.
김회권은 단언한다.
이 세계는 죄와 벌의 법칙이 작동하는 공간이 아니라, 죄 없는 자가 고난받는 그 십자가의 부조리함 속에서 은혜가 작동하는 세계라고. 법칙이 아니라 은혜가 왕 노릇하는 세상, 욥이 바로 그 세계 앞에 도달한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고통을 품고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자리에.3)
욥은 그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까닭 없이 무너져 내린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을 뻔했지만,
다시 경외심을 회복하고 있다.
진정한 지혜는 신비의 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자의 발걸음이다.
해명을 포기하고, 이해를 내려놓은 자의 마음에 살며시 깃든다.
지혜란
해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왜?’라는 물음을 품고 살아가는 용기다.
그리고 그 위에, 은혜는 내려앉는다.
주:
[1] 양명수, 『욥이 말하다』, 복 있는 사람, 2022, ‘지혜를 찬양하다’ 발췌 요약. P.165.
[2] 권지성, 『특강 욥기』, Ivp, 2019, ‘지혜는 어디에서 찬을 수 있는가’ 발췌 요약. p. 185.
[3] 김회권, 『하나님 나라의 신학으로 읽는 욥기』, 복 있는 사람, 2023. 발췌요약 P.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