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복

하루와 이틀 사이의 기록

by 김민수

어디를 가나 일이 많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두고 ‘일복이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꼭 틀린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그 ‘복’이 그리 반갑지 않을 때도 있다.


어제 하루를 돌아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를 열었다.

묵상과 독서, 방 정리를 하고 나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식전에 교회 화단의 화분들에 물을 준다. 화분이 많다 보니 20분은 족히 걸린다. 단순히 물을 주는 일이지만, 그 시간은 늘 생각이 자라는 시간이다. 보고, 관찰하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하루의 윤곽이 서서히 잡힌다.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말씀을 준비하는 일이다.
지난주부터 붙들고 있던 ‘관찰은 힘이 세다’는 주제로 다음 주 설교를 준비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설교를 준비한다고 하면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목회는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한 주가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다. 더구나 주일에 만난 성도들의 얼굴과 삶이 아직 생생한 월요일 새벽이야말로,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지 가장 또렷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001.jpg 마가목- 싸앗이 자연발아함


해가 뜨기 전, 다시 화분에 물을 준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지혜다.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물을 주어야 흙이 딱딱해지지 않는다.
봄이 되니 화분 곳곳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올라온다. 어제의 주인공은 마가목과 으름덩굴이었다. 지난 가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씨앗을 묻어두었는데 혹독한 겨울을 지나 싹을 틔운 것이다.


마가목은 곁에 두고 지켜보고 싶어 작은 화분으로 옮겼고, 으름덩굴은 크게 자랄 기세라 더 넓은 화분에 옮겨주었다. 으름덩굴은 한 그루에 암수 꽃이 함께 피지만, 짝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본가에 있는 으름덩굴과 짝을 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그 둘을 이어주고 물을 흠뻑 주었다.


지난해 심은 체리는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다.
올해도 그러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데, 밤사이 꽃망울이 올라왔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그 작은 봉오리가 세상을 향해 열렸다.
기특하다.
올해는 체리를 맛볼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지만, 그 가능성만으로도 마음이 밝아진다.


002.jpg 체리꽃- 오늘 아침에 피어난 꽃

본가에서는 작은 화단의 잡초를 뽑았다.
머위와 함께 자라던 긴병풀꽃이 어느새 화단을 점령해버렸다. 결국 그것들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그 아래에서 수많은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들깨, 참취, 제비꽃… 누가 심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올라온 생명들이다.

으름덩굴 새순에는 진딧물이 가득했다. 새순을 잘라내며 문득 온몸이 근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아래에는 떨어진 열매에서 싹튼 으름덩굴 새싹들이 빽빽하게 올라와 있었다. 그중 몇을 골라 교회 화분에 옮겨주었다. 홀로 있던 으름덩굴에 짝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여기까지가 오전의 일이었다.


점심은 오랜만에 딸들과 함께 외식을 했다.
왕갈비탕, 김치찌개, 불고기백반, 된장찌개. 다 합쳐 5만 원 정도.
이 정도면 집에서 해 먹는 것보다 오히려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손수 만드는 기쁨도 있지만, 오후에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계단 스위치가 고장 나 있어 교체를 시도했다.
전기를 만지는 일은 여전히 긴장된다. 어린 시절, 스파크가 튀며 떨어진 기억 때문이다. 얇은 고무장갑을 끼고 작업을 시작했다. 하나는 무사히 교체했지만, 두 번째는 선이 달랐다. 마지막 선을 잇는 순간 불꽃이 튀었다. 다시 시도했지만 또 불꽃이 튀고, 펜치까지 튕겨 나갔다. 결국 포기하고 절연테이프로 마감했다.

장갑을 벗으니 손에 땀이 흥건했다.
고무장갑을 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잠시 서서 감사기도를 드렸다.


0033.jpg 으름덜굴 꽃


이어서 옥상 방수 작업을 했다.
전체 공사를 하려 했지만, 재료비가 크게 올라 부분 방수로 방향을 바꿨다. 이미 한 번 해본 일이라 요령이 있었다. 문제된 부분을 걷어내고 다시 작업했다. 그 사이 화단에서 뽑아온 풀로 시아노 작업도 하고, 화분 흙을 뒤집고, 해바라기씨도 심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오후 4시 30분, 몸이 땀으로 젖었다.


교회로 돌아와 다시 화분에 물을 주고, 계란껍질을 부수고, 으름덩굴을 돌봤다. 그리고 몸이 아파 심방을 받기 어려운 권사님께 편지를 썼다. 치료를 계속할지, 멈출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분께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두 장의 편지에 마음을 담아 우체통에 넣고, 자녀들과 함께 읽어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밤 9시 30분, 비탈길을 올라오는데 무릎이 아프다.


어느새 나이가 이렇게 되었다.
씻고 책을 조금 읽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다시 4시에 일어나 교회로 향했다.
어제까지 봉오리였던 체리꽃이 활짝 열려 있었다.
마가목은 자리를 잡았고, 옮겨 심은 참취는 조용히 자라고 있다.
으름덩굴도 조금씩 기운을 찾고 있다.

004.jpg 으름덩굴 새순

지금은 아침 8시 15분.

오늘은 금식이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조금 더 맑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나는 어디를 가나 일이 많은가.
생각해보니 이유는 단순하다.
일할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일이 아무리 많아도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고,
보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교회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너무 바쁘게 살 필요는 없겠지만,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는 삶, 그것이 결국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보이는 일을 따라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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